자산유동화와 은행업무


최근 금융감독원은 枯死위기에 처한 은행의 신탁계정을 살리기 위한 종합처방을 내놓았다. 총 5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국내 퇴직금 시장에서 보험사와의 경쟁상품인 퇴직신탁을 허용하고, 은행 보유 신탁자산과 투자신탁회사의 펀드에 편입되어 있는 부실자산을 원활히 소화할 수 있도록 투기등급(BB+이하) 채권이나 채권담보부 증권(CBO; collateralized bond obligation)의 유동화 과정에서 나오는 후순위 채권에 50% 이상 투자하는 후순위담보채(subordinated bond) 펀드를 허용했다. 후순위담보채 펀드와 6개월짜리 하이일드 펀드에도 이자소득세 50% 감면, 공모주 청약우선권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한국경제신문 1999.12.7자 1면).

위의 기사는 감독당국이 은행권 신탁 운용상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를 보도한 것이다. 우선 퇴직신탁이란 기업이 매달 적립되는 종업원의 퇴직금을 은행 신탁에 맡겨 종업원이 퇴직할 때 받아갈 수 있도록 한 퇴직일시금 신탁을 말한다. 근로기준법상 퇴직금의 원금을 축내는 상품에 투자할 수 없다는 규정(동법시행령 11조) 때문에 퇴직신탁에 특별유보금이나 대손충당금을 적립해 실질적으로 원본이 보전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된다.

그러나 채권담보부 증권이나 후순위담보채 펀드란 무엇인가. 어떠한 기능을 발휘하기에 은행의 신탁계정 운용에 숨통을 터줄 수 있는 秘方으로 등장하게 된 것인가. 또한 이 과정에서 자산유동화(ABS; asset-backed securitization) 기법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각각 알아보기로 한다.

1. 자산유동화(ABS)에 있어서 은행의 역할

위의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자산유동화(ABS) 거래에 있어서 은행은 신탁계정에 보유한 부실자산을 유동화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자산보유자(originator)이다. 대상자산에서 현금흐름을 수취하여 유동화증권의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계속적으로 지급하는 자산관리자(servicer)의 역할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반적으로 은행은 ABS 거래에 있어서 유동화증권의 원리금 지급을 보증하는 신용보강기관(credit enhancer)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대상자산에서 나오는 현금흐름과 유동화증권의 원리금 지급에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이 생겼을 때 그 부족분을 공급해주는(liquidity provider) 기능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은행의 신탁계정은 수탁회사(trustee)가 되어 유동화를 위한 특수목적기구(special purpose vehicle; SPV), 즉 유동화전문회사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거래가 각 참여당사자와 투자자들에게 모두 이롭고 유익하도록 구조화(structuring)하는 금융자문기관(financial advisor)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2. 보유자산을 기초로 하는 ABS 추진

위의 사례에서와 같이 신탁계정의 보유자산을 유동화하여 재무구조 개선을 도모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우선 현금흐름이 비교적 양호한 국내 공기업이나 우량기업에 대한 대출자산을 모아 유동화증권을 발행할 수도 있고 그것이 외화채권(외화자원 원화대출, 외화대출, 역외 외화대출 포함)인 경우에는 해외에서의 ABS를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1999년도 정기국회에 상정된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이하 "자산유동화법"이라 함) 개정안 및 [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대로 개정될 경우에는 자산유동화계획에 따라 양도(또는 신탁)하고자 하는 채권이 근저당권으로 담보된 채권인 경우에는 자산보유자가 "채무자에 대하여 근저당권으로 담보하는 채권을 추가로 발생시키지 않고 그 채권의 전부를 양도 신탁하겠다"는 의사를 기재한 통지서를 발송한 때에 그 채권을 확정된 것으로 보게 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근저당권부 대출자산을 대거 유동화할 수 있으므로 보유자산을 유동화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자산의 유동화에 대비하여 대출약정서 등에 채권양도를 허용하고 면책조항을 포함시키는 등 여신관련 계약서의 개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각 은행은 BIS 자기자본비율을 개선하면서 유동성도 제고할 수 있는 부실채권과 자산을 유동화하는 방안에 부심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대출채권이든 유가증권이든 원금 회수는 커녕 이자도 받지 못하고 있다면 대차대조표에서 공제(off-balance sheet)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당장 필요한 현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는 것은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부실자산은 현금흐름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를 유동화할 때에는 통상 선순위-후순위채(senior-subordinated bond) 구조를 취함으로써 후순위채를 자산보유자로 하여금 인수케 하여 최소한 유동화증권의 이자 재원으로 충당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원금은 부실자산을 상환받거나 매각함으로써 충당한다. 선순위채의 경우 충분한 담보가 확보되는 셈이므로 투자적격의 높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으며 금리도 정상 채권 수준이다. 후순위채 소지자라 할지라도 경기가 되살아나 부실자산의 가치가 회복된다면 당초 기대했던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번에 금융감독원에서 허용한 후순위담보채 펀드란 금융기관이 보유하는 부실자산을 담보로 증권을 발행한 경우에 자산보유자로서 인수한 후순위채를 주로 투자대상으로 하는 펀드를 말한다. 자산보유자가 도산한 경우에는 변제순위가 뒤로 밀리므로 원리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이 큰 대신 수익률이 높게 마련이다. 이러한 자산은 변제기가 다양하므로 만기 구조를 여러 단계로 하여 발행하게 된다. 본래 다단계 저당채권(collateralized mortgage obligation; CMO)은 조기상환의 위험(prepayment risk)을 줄이기 위하여 다단계 만기 구조를 가진 채권으로 발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대상자산이 채권이나 대출자산인 경우에는 'mortgage' 대신 'bond'나 'loan' 또는 이를 포괄하는 'debt'가 되므로 그 명칭도 각각 "CBO", "CLO", "CDO"가 되는 것이다.

3. 신탁업무 관련

자산유동화법상 은행은 신탁계정을 통하여 자산보유자로부터 수탁한 자산을 기초로 신탁 수익증권 또는 수익증서를 발행하며, 당해 유동화자산을 관리·운용·처분하여 얻은 수익으로 수익증권 또는 수익증서에 대한 수익금을 지급하게 된다(동법 2조 1호 나목).
은행은 또한 투자자로부터 금전신탁을 받아 자산보유자로부터 유동화자산을 취득하고 당해 유동화자산을 관리·운용·처분하여 얻은 수익으로 신탁자에 대하여 수익금을 지급할 수도 있다(동조 1호 다목).

그러므로 은행은 신탁업무와 자산유동화업무의 노하우를 살려 자산보유자와 투자자를 대상으로 ABS를 위한 마케팅을 전개할 수 있다. 예컨대 국내 유수기업의 외상매출채권(receivables)은 유력한 ABS 대상자산이 된다. 또 앞에서 말한 신탁계정의 부실자산을 정리하면서 신탁계정의 자산을 SPV에 매각한 후 당해 유동화증권을 타 기관을 통하여 우회적으로 매입함으로써 수익도 올리고 BIS 비율도 개선할 수 있다. 예컨대 성업공사가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을 매입한 후 유동화증권을 발행하여 기관투자자들에게 판매한 것이 이러한 방식의 자산유동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 보증업무 관련

은행은 일반적인 여신 기능을 통하여 자산유동화 과정에서 최상급 투자등급을 받기 위하여 요청되는 SPV에 대한 신용보강(credit enhancement)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SPV의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을 보완하는 유동성 공여기관의 역할도 한다. 후자는 대상자산이나 SPV의 신용위험 자체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므로 신용보강기관과 차이가 있다. 유동성의 공여는 통상 신용장(stand-by letter of credit)을 발급하거나 신용한도(credit line)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행하여진다.

그밖에 ABS에 부수적인 금융(ancillary facility)으로서 은행은 유동화자산의 금리 또는 지급통화와 유동화증권의 금리 또는 지급통화 간의 불일치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하여 SPV와 스왑 거래를 체결하기도 한다. 아무튼 은행은 유동화 대상자산의 신용위험을 예측하기 위한 리스크 분석기법을 개발하고 축적할 필요가 있다.

5. 자산관리자의 업무

은행은 보유자산을 유동화한 경우에도 고객과의 기존 거래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산관리자로서의 기능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SPV로부터 위탁을 받아 수행하는, 이른바 수수료를 받는 'Fee Business'이다.

은행이 자산관리 업무를 수행하려면 유동화자산을 그의 고유재산으로부터 분리하여야 한다(자산유동화법 11조). 이를 위하여 장부를 별도 작성·비치하고 전산처리 등도 구분하여 실시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채권추심 및 원리금지급 사무 등 단순한 자산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아니한다. 유동화 대상자산의 가치를 산정하고 지역분포·채무자의 신용에 따른 신용위험을 측정하며, 양도채권의 만기와 유동화증권 만기의 미스매치에 따른 듀레이션(duration) 계산과 유동화증권의 기한전 상환위험 측정 및 대응책 마련에도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하여는 선진 신용평가회사(S&P, Moody's 등)의 가격산정 모델을 도입하거나 외국 유수의 전문회사와 합작하여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밖에 신용평가회사, 모노라인 보증사 등 ABS 관계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과 투자자들에 대한 정기 보고도 중요하다. 만일 ABS가 해외에서 일어나는 경우에는 국내 채무자로부터의 원리금 수취 및 계리, 스왑 거래, 해외송금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자산관리자의 신용은 ABS의 구조에 있어서 가장 취약한 부문(weakest link)으로서 유동화증권의 신용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6. 기존 금융채 시장저변의 확대

1997년 은행법의 개정으로 모든 은행이 금융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이 ABS 구조화 금융(structured financing)에 있어서 신용보강기관 또는 자산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 당해 유동화증권은 은행 자신이 발행한 금융채와 시장에서 경합될 수 있다. 그러나 유동화증권은 전통적인 금융채와는 그 특성이나 만기구조, 수익률에서 차이가 나므로 오히려 이러한 차이를 활용하여 투자자층의 저변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 기회를 활용하여 새로운 업무를 개발하고 은행 자신의 BIS 비율을 개선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은행의 부실자산을 매각하고 그 대금을 받아 BIS 비율 및 유동성을 개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에 속한다. 그러나 은행이 신규자금으로 국채 또는 이에 준하는 채권을 매입하여 국공채 원리금으로 유동화증권의 원리금을 지급한다면 이는 1단계로 위험자산의 규모를 줄이고, 2단계로 보유자산의 리스크를 줄이고 신용도를 높이는 것이 되어 BIS 비율을 이중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7. 금융자문역으로서 구조화 금융 주도

은행은 고객이 자산유동화를 원한다면 그의 보유자산을 분류·선별하여 현재의 시장여건하에서 원활하게 소화될 수 있는 구조와 조건을 설계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고객의 수요에 맞춰 신용보강기관, 유동성 공여기관, 자산관리자로서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은행이 ABS 구조화 업무를 주도하여 금융감독위원회 등록, 자본금납입 등 SPV의 설립사무를 담당하거나, SPV의 관리·운영 등을 위탁받아 수행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당해 은행의 노하우와 네트워크 능력이 ABS 업무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일례로 주택은행은 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법이 시행되는 것을 계기로 기존 주택대출채권은 물론 최근에 매입한 할부자산을 풀로 하여 이를 기초로 하여 직접 주택저당채권(mortgage-backed bond; MBB)을 발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은 1999.12.6 한경 비즈니스 아카데미에서 강의한 내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