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 뱅킹의 법적-경제적 고찰


1. 머리말

주택은행은 한국생명보험과 업무제휴를 맺고 일선 지점에서 대출을 할 때 고객이 사망하거나 1급 장해를 입은 경우 한국생명이 보험금으로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는 "단체신용 생명보험" 상품을 취급하기로 했다.

주택은행은 개인주택자금이나 가계일반자금 대출을 받은 고객에 대하여 보험 가입을 권유하고 보험금액은 대출금 범위 내에서 1백만원 단위로 고객이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연간보험료는 보험금액 1천만원당 36,700원으로 주택은행이 연간 보험료를 받아 한국생명에 납부함으로써 보험의 효력이 발생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단체신용 생명보험이란 본래 1989년말 교보생명이 당시 재무부의 승인을 받아 처음 개발한 보험상품으로서 은행이 계약자, 고객이 피보험자가 되어 생보사에 단체로 일괄가입하는 보험이다. 주택은행은 대출을 받은 고객에게 이러한 보험상품의 판매를 중개할 수 있는가.

이 케이스는 1997년 벽두에 국내 언론들이 한국판 "방카슈랑스" (bancassurance)라고 크게 다루었으나, 주택은행으로서는 새 업무의 취급이 결코 순조롭지 못했다. 그 이유는 현행 보험업법상 재정경제원 또는 보험감독원에 보험대리점으로서 등록하거나 보험중개인으로서 허가 받은 자만이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고(동법 144조, 149조, 150조의2), 은행법에 의하면 은행은 은행업이 아닌 업무를 영위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동법 18조). 즉 당국의 유권해석은 은행이 소정 수수료를 받고 보험상품을 판매하거나 이를 중개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형식논리적인 법해석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은행과 보험의 겸영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에서 방카슈랑스를 인정하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내린 것을 참고삼아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보기로 한다.

2. 방카슈랑스의 의의

방카슈랑스(banque와 assurance의 합성어)는 8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은행의 보험상품 판매가 전체 생명보험 시장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은행과 보험사의 업무제휴는 다음 네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고객이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을 선택할 경우(예: 노후보장 저축) 공동으로 상품을 서비스하는 것, 둘째는 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을 결합(예: 무사고운전 우대적금 가입 고객에게 교통상해 보험증권을 제공)하여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 셋째는 위의 케이스처럼 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을 공동의 유통체계에 의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은행과 보험사가 한 지붕 아래에서 공동으로 상품을 개발하는 것까지 생각해볼 수 있다.

방카슈랑스의 이점은 은행과 보험업의 칸막이를 허물고 상호 업무영역을 확대하여 수익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위의 케이스에서도 H은행은 대출과 연계된 보험상품을 취급함으로써 채무자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대출금을 쉽게 회수할 수 있고, 보험사로서도 은행의 전국 점포망을 이용, 영업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편 정부는 OECD에 가입하기 위해 1995년 11월 보험시장 자유화계획을 발표하면서 1997년 4월부터는 손해보험중개인, 1998년 4월부터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브로커 시장을 완전 개방하기로 하였다. 그밖에 ENT(경제적 수요심사)의 폐지, 국제적인 보험거래의 추가 허용, 재보험의 조기 자유화, 손해사정업 및 보험계리업의 대외개방도 OECD에 약속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보험시장의 개방을 약속한 것은 보험계약자의 보호, 보험사간의 경쟁 촉진, 선진국과의 조화를 기하기 위함이었다.

3. 유니버설 뱅킹의 세계적 추세

1970년 이래 세계 금융시장에서는 정부 주도로 또는 민간 자율적으로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금융기관간의 영역구분이 모호해지거나 철폐되고 있는 것으로 유럽에서는 은행이 증권의 인수·매매, 중개, 보험의 모집·중개, 투자자문, 파생상품 거래, 심지어는 부동산 개발까지 취급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이러한 유니버설 뱅킹 제도는 독일에서 비롯되었는데 1992년 금융시장이 단일화되면서 다른 EU 회원국에서도 독일식 겸업은행(Universal Banks)에 대한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모두 유니버설 뱅킹 제도를 채택하였다. EU의 제2차 은행지침(Second Banking Directive)에 의하여 한 회원국에서 은행 라이선스를 받으면 다른 회원국에서도 본국에서와 같은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은행·증권·보험업무를 모두 취급하는 다른 회원국 은행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국서부터 가장 폭넓은 유니버설 뱅킹업무를 취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EU 역내 은행들이 유니버설 뱅킹 업무를 수행함에 따라 이 시스템은 세계 금융시장의 통합추세에 잘 적응할 수 있고 경쟁력도 발휘할 수 있다 하여 세계적인 기본 모델이 되었다.

4. 미국 은행의 非은행업무 취급

은행이 유럽식으로 증권·보험업무를 함께 취급하는 것이 법 규정상 허용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를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 필요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제도개선이 어렵다면 운용의 묘를 살려 정면으로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은행의 취급업무를 다양화할 수 있게 하는 법기술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본다.

법적인 관점에서는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 및 은행지주회사법 (Bank Holding Company Act of 1956)의 엄격한 규제를 받아 온 미국의 대형은행들이 증권업과 보험업 진출을 위해 이 법의 탄력성 있는 해석을 시도하고 또 금융당국에서도 적극 이를 수용해 온 것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먼저 글래스-스티걸법을 살펴보자. 미국 은행의 증권업 취급을 규제한 제20조의 규정은 '은행이 주식·사채 등의 발행, 인수, 판매를 주로 영위하는 회사와 계열관계(affiliated)를 갖는 것을 금지'한다고 되어 있으므로 만일 동 업무를 주로 영위(engaged principally)하지 않는 자회사는 둘 수 있다는 반대해석이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1987년 미 연방제도이사회(FRB)는 시티코프, J.P. 모건, 뱅커스 트러스트 등의 신청을 받아들여 자회사를 통한 단기의 우량 기업어음(CP), 지방정부가 보증하는 투자등급 이상의 지방채, 1∼4세대 주택으로 담보되는 모기지 담보부 증권, 소비자 크레딧 담보부 증권 등 이른바 비적격 증권(ineligible securities)의 인수·매매업무를 처음으로 인가하였다. FRB는 이어 1989년부터는 소정의 자격요건을 갖춘 국내 및 외국은행들이 외국정부채, 회사채, 전환사채, 보통주, 우선주까지 취급할 수 있도록 그 범위를 크게 넓혔다.

다만, 주로 영위하는 업무가 되지 않도록 FRB는 당해 증권업무에서 얻는 수입이 자회사 총수입(2년간의 이동평균치)의 5% 이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 5% 제한은 1989년 9월 10%로 인상되었으며, 1996년 9월 다시 25%로 상향 조정되어 1997년 3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1987년 당시 FRB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미 증권업협회(SIA)는 은행법 위반으로 연방법원에 제소하고 연방대법원에까지 상소하였으나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Securities Industry Assn v. 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 821 F.2d 810, cert.denied 484 US 1005, 108 S.Ct. 697, 98 L.Ed.2d 649 (1988)).

보험업무에 있어서도 증권업무와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종래 미국의 은행들은 은행지주회사법에 의하여 보험회사를 소유하거나 보험업무를 취급할 수 없었다. 다만, 주의 인가를 받아 설립된 은행(State-chartered bank)만이 당해 주법에 의하여 보험증권을 판매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주가 은행의 보험업 취급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므로 보험업의 지역적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많은 은행들이 1916년에 제정된 연방법(12 U.S.C. 92)을 원용하기 시작하였다. 즉 인구 5천 이하의 지역에 점포를 둔 국법은행(national bank)은 당해 주의 인가를 받은 보험회사의 대리점을 할 수 있었는데 이는 보험회사들이 소도시에 영업점을 두지 않음으로써 야기되는 보험보장의 사각지대를 피하고 은행의 수익성을 제고한다는 명분이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보험업에 대한 규제는 주 정부의 소관사항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은행들의 보험업 진출을 위한 노력이 번번히 좌절되면서 재무부 통화감독청(OCC)은 연방은행법의 이 조항(town of 5,000 authority)을 근거로 국법은행의 보험업무 취급을 폭넓게 인정하기 시작했다. 즉 인구 5천 이하의 소도시에 점포를 둔 국법은행은 이 곳을 통하기만 하면 국내 어느 곳에나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보험업계는 OCC의 월권행위라 하여 소송을 제기하고 플로리다를 비롯한 일부 주에서는 은행의 보험업무 취급을 법으로 금지하기도 했지만, 사법부는 연방법에 관한 한 연방기관인 OCC의 해석을 존중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1996년 3월 연방대법원이 선고한 바네트 은행 케이스(Barnett Bank of Marion County v. Florida Insurance Commissioner, Sup Ct No. 94-1837, 1996 U.S.LEXIS 2161 (1996))는 증권업계가 은행의 증권업무를 마지못해 수용한 것과는 달리 보험업계가 여전히 일전을 불사하고 있어 상세한 고찰을 요한다. 97년 1월 대형 생보사들로 구성된 전미 보험업협회(ACLI)가 OCC 청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전미 보험대리점협회(IIAA)도 재무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로 하였다.

5. 바네트 은행 케이스

플로리다주 오칼라시에 본점을 둔 바네트 은행은 국법은행으로서 인구 5천명이 못되는 벨뷰시 지점에 보험대리인을 고용하고 전국적으로 보험업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플로리다주 보험국에서 '은행 또는 은행지주회사가 보유하는 비은행 자회사가 州內에서 보험업무를 영위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 (Fla. Stat. Ch. 626, 988)을 근거로 바네트 은행에 중지명령을 내렸다. 이에 바네트 은행이 법원에 예비적 집행정지 가처분명령(preliminary injunction)을 구함으로써 이 문제는 법정으로 비화되었다. 1995년 1월 제11지구 연방고등법원에서는 은행측에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1년후 연방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연방법이 주법에 우선하므로 국법은행의 보험업무 취급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미국의 보험업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본래 미국에서 보험계약은 연방규제가 우선하는 통상(commerce) 분야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아 주별로 보험에 관한 법을 독자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44년의 연방대법원 판결(United States v. South-Eastern Underwriters Association)을 계기로 보험업에 관한 연방과 주의 규제권한을 조정하기 위하여 "맥카랜-퍼거슨법" (McCarran-Ferguson Act)이 제정되었다. 이에 의하면 "연방의회의 법은 그 법이 특별히 관여하지 않는 한 보험업을 규제할 목적으로 주가 제정한 법률을 무효로 하거나 해하거나 이를 대치할 수 있다고 해석하여서는 아니된다"(5 U.S.C. 1012(b))고 규정하고 있다.

바네트 은행 사건의 쟁점은 은행의 보험업무를 인정한 연방법과 이를 금지한 플로리다 주법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가, 또 이 경우에 맥카랜-퍼거슨법이 적용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연방대법원은 연방법이 특정 권한을 국법은행에 부여하는 경우 주법에 우선한다는 원칙(pre-emption principle)을 분명히 하면서 연방은행법이 인구 5천 이하의 소도시에서의 보험대리점 업무 취급을 조목조목 규정하고 있는 만큼 맥카랜-퍼거슨법상의 연방법이 보험업에 "특별히 관여"하는 예외 조항에 해당한다고 만장일치의 결론을 내렸다. 연방대법원은 바네트 은행의 패소를 선고한 원심이 1916년 연방법의 입법연혁에 비추어 의회는 본래 보험을 규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던 것과는 달리, 주 정부의 보험 규제가 의회의 입법권한을 넘어서까지 국법은행에 영향을 미친다고 연방의회가 믿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고 판시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의 은행들은 OCC의 허가를 받아 전국적으로 보험판매를 개시한 네이션즈 뱅크의 예에서 보듯이 주 또는 연방 당국으로부터 허가받은 범위 내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국법은행의 보험업무에 대한 "OCC와 주 보험당국의 중복 규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고, 또 보험업계가 제기한 일련의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이 견해를 바꾸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글래스-스티걸법의 개정에 임하여 의회가 은행의 증권업 진출을 허용하는 대신 보험업 취급을 동결하는 입법을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은행업계에서는 1996년 바네트 은행 판결을 계기로 보험업 진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자신들에게 규제를 가할지 모르는 이러한 법안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6.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들어 금융개혁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은행이 제한적이나마 보험상품을 취급하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위의 케이스와 같이 은행이 생보사와 제휴하여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현행법에 저촉된다고 단정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유니버설 뱅킹 추세를 고려할 때 아쉬운 감이 있다. 현실의 이점이 적지 않다면 법·제도의 운용에 융통성을 부여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일단 법조문 자체를 문리적으로 해석하되 내용이 불충분하거나 의미가 모호한 규정은 입법자가 이 법을 적용·집행하는 주무관청에 대해 그 보충권을 부여한 것으로 보는 것이 세브론 케이스(Chevron U.S.A., Inc. v.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467 U.S. 837, 104 S.Ct. 2778, 81 L.Ed.2d 694 (1984). 연방대법원은 환경청(EPA)이 정한 대기오염 기준이 1977년 대기정화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에 대하여 동법을 해석함에 있어 법률에 명시적인 규정이 있으면 입법자의 의사를 따라야 하지만, 법률에 규정이 없거나 있더라도 모호할 경우에는 주무관청인 EPA의 해석이 합리적이고 그 해석에 무리가 없는 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여음) 이래 판례법상 확립된 법해석 원칙이다. 바로 이것이 위에서 소개한 대로 은행감독기관인 FRB나 OCC가 사법부의 지지를 받아 은행들의 비은행업무 취급범위를 꾸준히 확대해줄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험대리점으로 등록하는 것을 보험업무의 감독상 필요한 행정절차라고 이해한다면 일정한 점포시설과 인력을 갖춘 은행이 실비만 받고 제한적인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에 대해 감독당국은 좀더 융통성 있는 해석을 내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OECD에 대한 보험시장 개방 약속을 철회할 수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방카슈랑스를 허용해야 한다면 보험업자의 등록 내지 허가에 관해서도 융통성 있는 해석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한편 은행으로서도 보험상품의 판매수수료로 오인 받을 수 있는 수수료가 아닌 실비보상만 받고 신상품을 취급하는 등 적극적인 업무자세가 요청된다. 은행은 고객기반을 넓힐 수 있는 데다 대출고객의 유고시에 지급되는 보험금으로 대출금을 변제 받을 수 있으므로 회수율 100%의 보험부 대출채권을 보유하는 게 되어 이것만으로도 재무구조의 개선, 신상품 연계개발 등 유형·무형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