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유동화(ABS)란 무엇인가

1999년 6월 24일 H신문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자산유동화법이 제정된 지 10개월이 지났으나 은행이 직접 자산유동화(asset-backed securitization; ABS) 방식으로 부실채권을 처리한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직접 부실채권을 처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한 33조원의 부실채권(5월 기준 무수익 여신) 뿐만 아니라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부실채권 처리를 모두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국민의 세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정확한 지적이기는 하지만,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마저도 떼일 형편에 놓인 부실자산에서 어떻게 현금흐름(cash flow)을 창출하여 자산유동화를 한다는 것인지, 과연 현대판 연금술이라도 된다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자산유동화 실적

1998년 9월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공포된 이래 이 법에 의한 ABS 실적이 1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6월중 성업공사가 금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입한 부실채권과 담보부동산을 대상으로 3천억원 규모의 유동화증권을 국내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한 데 이어 토지공사도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지금까지 사들인 토지와 공사가 할부 매각한 토지의 대금채권 등을 담보로 조만간 5천억 규모의 자산담보부 채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ABS 대상자산도 카드론(98.12 동양카드), 자동차 할부채권(99.1 삼성 캐피탈), 리스 채권(99.3 동양종금), 대출채권(99.3 한미은행)에서 부동산으로까지 점차 다양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BS의 주체(자산보유자) 역시 금융기관에서 성업공사, 토지공사로 확대되었으며, 조만간 중소기업들도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하여 유동화증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중소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면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이를 한 데 모아가지고(pooling) 유동화증권을 발행한다는 스킴이다. 이렇게 되면 돈이 될 만한, 즉 현금흐름이 비교적 괜찮은 자산을 갖고 있는 기관은 거의 예외없이 이를 토대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자산유동화의 의의와 이점

자산유동화란 이와 같이 대출채권, 매출채권 등의 자산을 유가증권 기타 채무증서(유통가능성은 불문함)의 형태로 전환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그러므로 자산유동화를 하려면 ▷자산보유자의 선별된 금융자산의 집합을 대상으로 ▷충분한 현금흐름을 확보한 다음 ▷원리금의 상환과 적시 배당을 보장하는 증권을 발행하되 ▷일정 기준 이상의 신용등급을 받고 ▷자산보유자가 파산하더라도 원리금 지급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아야 한다.

이것을 유동화 대상자산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즉 ▷유동화자산의 선별기준이 있을 것 ▷증권원리금의 상환에 있어 자산보유자의 신용보다도 유동화자산의 현금흐름에 의존할 것 ▷유동화자산은 자산보유자로부터 유동화전문회사(SPV)로 소유권을 이전할 것 ▷자산보유자의 신용불안 사유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절연시킬 것 ▷유동화자산 위에 증권투자자를 위한 담보를 설정할 것 ▷유동화자산은 미리 정한 바에 따라 관리할 것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밖에 ▷신용보강(credit enhancement)을 통하여 원리금 지급이 확실해야 하며 ▷유동성 확보를 위한 보완적인 자금조달 방안이 마련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동화자산의 보충도 가능해야 하며 ▷되도록 공인된 기관의 신용평가(credit rating)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산유동화가 가장 앞서 있는 미국의 예를 보면 ABS는 그 구조화(structuring) 및 발행절차가 매우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이점이 있기 때문에 널리 활용된다.

우선 자금을 조달하는 입장에서는 ABS 덕분에 자신의 신용등급보다 높은 신용등급으로 증권을 발행할 수 있어 그만큼 조달 코스트를 낮출 수 있다. 아직 IMF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여 국가 신용등급이 'A'에도 못미치는 국내 금융기관들로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ABS는 반드시 페이퍼 컴퍼니(SPV) 형태의 유동화전문회사를 두고 SPV에 자산을 양도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게 되므로 대차대조표에서 자산을 덜어낼 수 있고 새로 조달한 자금으로는 신규 사업에 투자 운용할 수도 있다. ABS는 또 다양한 투자수단에 목말라 하는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고수익 상품을 선보이는 장치도 된다.

그렇다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ABS가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온갖 시름을 덜어주는 만능해결사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유동화의 대상자산이 동질적(homogeneous)이어야 하고 충분한 현금흐름이 나와야 한다. 자산관리자로서는 ABS의 노하우가 충분치 않으면 신용보강을 위한 추가비용이 더 들 수도 있다. ABS의 규모가 별로 크지 않다면 상대적으로 부대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될 수 있고, 요즘과 같은 금리 하락기에는 보다 싼 이자를 빌려 고금리의 할부금융 대출을 갚는 사례가 많으므로 유동화 대상채권의 중도상환이 늘어나 스트럭처링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자산유동화와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비교

지금까지 프로젝트 파이낸스에 있어서 채권의 공모발행을 통하여 자금을 조달한 사례는 별로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첫째, 프로젝트에는 많은 리스크가 내포되어 있어 투자자들이 안심할 정도의 안정된 현금흐름이 있는 경우가 드물고, 둘째, 신용평가기관에서도 이를 반영하여 투자등급 이상의 신용평가를 내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모발행은 주로 안정적인 미래의 현금흐름이 있거나 정부의 지원이 보장되어 있는 프로젝트에 부분적으로 적용되었다.

채권을 발행하더라도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SEC Rule 144A에 의한 사모발행이 보다 일반적이었다. 왜냐하면 프로젝트 생산물의 장기 판매계약에 기초한 장래의 외상 매출채권(future account receivables)을 담보로 하는 자금조달 방법은 기본적인 프로젝트 파이낸스의 하나이지만 증권시장의 일반 투자자들이 이 개념에 친숙하지 않아 아직 시장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로젝트 파이낸스와 ABS는 SPV를 도구로 쓰고 장래의 현금흐름(future cash flow)을 금융의 기초로 할뿐만 아니라 둘 다 非遡求금융(non-recourse financing)에 속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ABS 기법이 고도화되고 각종 신용보강 장치가 고안되고 있어 프로젝트 파이낸스에서도 직접금융의 비중이 커진다면 채권의 공모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점차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 해도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현금흐름이 안정적이지 않은 경우에는 이를 적용할 수 없다. 우선 유동화할 수 있는 자산은 현재 현금흐름이 발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차 발생할 것이 확실히 되는 것까지도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반적인 자산유동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기준을 충족하여야 한다.

- 매매가 가능하고 자산보유자의 파산시 파산재단에서 분리(bankruptcy remote)될 수 있을 것
- 자산의 회수 및 지급이 자산보유자로부터 분리될 수 있을 것
- 유동화자산에 대한 채무자의 신용도가 우수할 것
- 자산의 기존 회수실적/현금흐름에 관하여 최근 자료가 있을 것

신용평가기관의 입장에서는 대상자산에 대한 실사를 통하여 기존 채권의 회수가능성, 현금흐름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신용도를 평가하게 된다. 현금흐름이 다소 불확실하더라도 원리금상환을 담보할 자산가치가 충분히 안정적이고 자산의 처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는다면 ABS에 적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유료 고속도로의 통행료 수입, 발전소 건설에 따른 전력판매 수입, 석유화학단지 건설후의 석유화학제품 매출 수입 등이 유동화에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도개선이 요청되는 분야

우리나라에서는 성업공사가 금융기관들로부터 인수한 부실채권과 담보자산을 조속히 처분하기 위해 ABS에 앞장을 섰던 만큼 유동화 대상자산에는 부동산부터 꼽히기 일쑤이다. 대형 오피스 빌딩, 상가건물 등 막대한 투자자금이 잠겨 있는 부동산을 손쉽게 유동화할 수 있는 금융기법은 이노베이션이 아니라 매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은 임대료 수입 등 현금흐름이 충분치 못한 경우가 많고 또 부동산경기를 많이 타기 때문에 유동화의 성공률이 낮을 뿐더러 ABS를 하더라도 SPV에 출자를 하거나 후순위채를 인수하는 식으로 자산보유자가 신용 및 유동성 보강의 부담을 안게 된다.

또한 금융기관들이 부동산을 담보로 잡을 때에는 대부분 근저당권을 설정케 하는데 현행 제도상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확정되기 전에는 피담보 채권과 함께 근저당권의 이전등기를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담보로 한 채권은 아직은 ABS에 부적합한 실정이다. 최근 입법예고된 [資産流動化法 改正法律案]에서는 자산유동화계획에 따라 양도 또는 신탁하고자 하는 채권이 근저당권으로 담보된 채권인 경우에는 자산보유자가 "채무자에 대하여 근저당권으로 담보하는 채권을 추가로 발생시키지 않고 그 채권의 전부를 양도 신탁하겠다"는 의사를 기재한 통지서를 발송한 때에 그 채권을 확정된 것으로 보도록 하여 입법적인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법의 시행에 따라 한국주택저당주식회사와 같은 유동화중개회사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면 주택저당채권의 발행물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두터운 투자자층을 확보할 수 있게 되므로 유동화증권 시장이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동화증권은 자산보유자와는 별개의 SPV가 발행주체가 되므로 일반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자산유동화의 신용평가 및 신용보강 수단이 완벽하게 갖춰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용평가회사가 ABS 평가작업을 벌일 때 관련 검토자료가 양적·질적으로 충분하고 상세해야 한다. 또 대상자산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있고 자산별 특성, 위험성에 따라 전산처리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만일 유동화 대상자산에 대한 각종 위험성의 평가가 자료의 불충분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이는 투자자들의 손실에 그치지 않고 이제 막 선을 보인 자산담보부 유동화증권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