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유동화의 虛와 實

1998년 9월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공포된 이래 이 법에 의한 자산유동화(asset-backed securitization; ABS)의 실적이 1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6월중 성업공사가 금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입한 부실채권과 담보부동산을 대상으로 3000억원 규모의 유동화증권을 국내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한 데 이어 토지공사도 기업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지금까지 사들인 토지와 공사가 할부 매각한 토지의 대금채권 등을 담보로 7월중에 5천억∼1조원 규모의 자산담보부 채권을 발행할 예정이다.

ABS 대상자산도 카드론(98.12 동양카드), 자동차 할부채권(99.1 삼성 캐피탈), 리스 채권(99.3 동양종금), 대출채권(99.3 한미은행)에서 부동산으로까지 점차 다양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ABS의 주체(자산보유자) 역시 금융기관에서 성업공사, 토지공사로 확대되었으며, 조만간 중소기업들도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하여 유동화증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중소기업들이 회사채를 발행하면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이를 한 데 모아가지고(pooling) 유동화증권을 발행한다는 스킴이다. 이렇게 되면 돈이 될 만한, 즉 현금흐름이 비교적 괜찮은 자산을 갖고 있는 기관은 거의 예외없이 이를 토대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자산유동화의 이점과 단점

자산유동화가 가장 앞서 있는 미국의 예를 보면 ABS는 그 구조화(structuring) 및 발행절차가 매우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이점이 있기 때문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우선 자금을 조달하는 입장에서는 ABS 덕분에 자신의 신용등급보다 높은 신용등급으로 증권을 발행할 수 있어 그만큼 조달 코스트를 낮출 수 있다. 아직 IMF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여 국가 신용등급이 'A'에도 못미치는 국내 금융기관들로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ABS는 반드시 페이퍼 컴퍼니(SPV) 형태의 유동화전문회사를 두고 SPV에 자산을 양도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게 되므로 대차대조표에서 자산을 덜어낼 수 있고 새로 조달한 자금으로는 신규 사업에 투자 운용할 수도 있다. ABS는 또 다양한 투자수단에 목말라 하는 투자자들에게 다양한 고수익 상품을 선보이는 장치도 된다. 그렇다고 ABS가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온갖 시름을 덜어주는 만능해결사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유동화의 대상자산이 동질적(homogeneous)이어야 하고 충분한 현금흐름이 나와야 한다. 자산관리자로서는 ABS의 노하우가 충분치 않으면 신용보강을 위한 추가비용이 더 들 수도 있다. ABS의 규모가 별로 크지 않다면 상대적으로 부대비용이 과다하게 소요될 수 있고, 요즘과 같은 금리 하락기에는 보다 싼 이자를 빌려 고금리의 할부금융 대출을 갚는 사례가 많으므로 유동화 대상채권의 중도상환이 늘어나 스트럭처링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제도개선이 요청되는 분야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성업공사가 금융기관들로부터 인수한 부실채권과 담보자산을 조속히 처분하기 위해 ABS에 앞장을 섰던 만큼 유동화 대상자산에는 부동산부터 꼽히기 일쑤이다. 대형 오피스 빌딩, 상가건물 등 막대한 투자자금이 잠겨 있는 부동산을 손쉽게 유동화할 수 있는 금융기법은 이노베이션이 아니라 매직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은 임대료 수입 등 현금흐름이 충분치 못한 경우가 많고 또 부동산경기를 많이 타기 때문에 유동화의 성공률이 낮을 뿐더러 ABS를 하더라도 SPV에 출자를 하거나 후순위채를 인수하는 식으로 자산보유자가 신용 및 유동성 보강의 부담을 안게 된다.

또한 금융기관들이 부동산을 담보로 잡을 때에는 대부분 근저당권을 설정케 하는데 현행 제도상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이 확정되기 전에는 피담보채권과 함께 근저당권의 이전등기를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결국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담보로 한 채권은 아직은 ABS에 부적합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채권양도 시점에서 근저당권을 보통저당권으로 전환하거나, 현행 법제를 보다 융통성 있게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마침 주택저당채권유동화회사법이 시행되어 오는 7월 발족하는 한국주택저당주식회사와 같은 유동화중개회사가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면 주택저당채권의 발행물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두터운 투자자층을 확보할 수 있게 되므로 유동화증권 시장이 활기를 띠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유동화증권은 자산보유자와는 별개의 SPV가 발행주체가 되므로 일반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자산유동화의 신용평가 및 신용보강 수단이 완벽하게 갖춰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신용평가회사가 ABS 평가작업을 벌일 때 관련 검토자료가 양적·질적으로 충분하고 상세해야 한다. 또 대상자산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있고 자산별 특성, 위험성에 따라 전산처리되어 있어야 한다. 만일 유동화 대상자산에 대한 각종 위험성의 평가가 자료의 불충분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이는 투자자들의 손실에 그치지 않고 이제 막 선을 보인 자산담보부 유동화증권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떨어뜨리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기업평가 19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