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카운터와 강단 사이

산업은행 여의도 본점 산은을 떠난 지 3년이 되어오건만 여전히 KDB Man식의 행동을 할 때가 많아서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 이상 근무했던 직장의 '코드 오브 컨덕트'가 몸에 배어 있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한 일은 그것이 새로운 직장과 분위기에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은행에서 일하면서 신입행원 채용할 때 출제위원으로, 면접위원으로 참여했던 경험이 졸업반 학생들에게 취업지도를 할 때 그야말로 "딱"이다. 바라기는 우리 학교 졸업생들이 산은에 많이 들어가 줬으면 하는 것인데 TOEIC 900점 이상을 요하는 산은의 높은 영어수준이 장애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산은에서 몸에 익힌 가족적인 분위기도 새 직장에서 쉽게 적응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연구실을 배정 받고 '방들이' 떡을 돌렸다. 산은에서는 결혼이나 출산을 하였을 때 사무실에 떡과 음료를 돌리고 서로 축하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학교에서는 다들 "웬 떡이냐?" 하며 놀라워했다. 이따금 학생상담을 할 때에도 피자를 시켜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하곤 한다. 산은에 있을 때는 '사다리'를 해서 조금씩 돈을 추렴해서 하였지만 지금은 오로지 교수님이 쏘아야 한다.

산은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재원조달 문제가 학사행정에서는 후순위로 고려될 때가 많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등록금 인상을 둘러싸고 학생들이 시위 농성을 벌이는 일이 많아짐에 따라 캠퍼스에서도 교수들에게 새로운 수익사업을 개발하라거나 산학협동으로 연구비를 조달하라는 압력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본관 무엇보다도 은행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 것은 각종 연수와 캠페인, 유니트 활동을 통하여 체득한 '고객에 대한 서비스 개선'이 학교에서도 그 중요성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그 당시는 마지못해서 할 때가 많았지만 그 덕분에 필자는 지금 큰 갈등을 겪지 않고 해내고 있는 셈이다. 우리 학교만 하더라도 "학생들이 만족하는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 학사행정의 모토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을 대학 서비스의 고객으로 본다는 것인데 동료 교수들의 반응은 처음부터 냉소적이었다. 대부분 국내외에서 학위과정을 마치고 곧바로 강단에 선 분들이기에 학문적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교수의 강의와 논문을 고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학생들이 쉽게 이해하고 원리를 깨우칠 수 있는 범위에서 강의를 하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은행과 대학의 차이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금융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경영이 변모하였듯이 학교의 운영방식도 종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그 만큼 교육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까닭이다. 당분간은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대학입학 정원을 하회할 것이라 하며, 수도권의 대학을 제외하고는 지방대학들은 재정적으로 고전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학생 수가 제일 많은 사립대학이지만 해마다 편입생을 정원의 20% 가까이 모집해야 할 정도로 학생들의 이동이 많은 편이다. 냉난방설비나 도서관 장서, 컴퓨터(요즘은 고시반 학생들을 위하여 신림동 고시학원의 동화상 강의를 틀어주기도 한다) 등에 대한 시설투자를 게을리 하여도 학생들의 불만이 커진다. 이를 위하여 단과대 학장은 기업의 CEO처럼 수입의 범위 내에서 교수를 임용하고 각종 수당이나 지출예산을 자율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은행원이 카운터에서 대하는 고객들은 수신이든 여신이든 은행영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동반자라 할 수 있다. 교수가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대할 때에도 강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동반자관계(partnership)로 생각해야 한다. 은행원이 금리와 수수료율을 가지고 고객을 웃고 울리는 것처럼 교수는 학점을 가지고 학생들을 컨트롤한다. 은행 고객 중에 신용불량자도 나오고 부실기업이 나오는 것처럼 수강생 중에도 결석을 다반사로 하거나 낙제를 면할 수 없는 학생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은행에서는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은행과 고객이 공히 금전으로 환산 가능한 이익을 보아야 일을 잘 했다는 말을 듣지만, 학교에서는 강단에 선 교수가 학생들에게 인격으로나 학식으로나 아낌없이 베풀어야(이것은 도저히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이다) "잘 가르친다"는 말을 듣게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은행의 카운터에서는 수평관계를 지향하는 반면 강단에서는 그 높이 이상으로 교수에게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원숙함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요즘 부쩍 늘어난 흰머리를 보고도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다.
(산은소식 2003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