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역할과 보수

신년 벽두부터 CEO(최고경영자)형 대통령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한 신문사의 캠페인에서 시작된 CEO 담론(談論)은 대통령과 야당총재의 기자회견과 여당 대권후보들의 공약에도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온갖 게이트의 공방전에 매달려 있는 동안 민간 기업의 CEO들은 불철주야로 뛰어다니며 전세계적인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은 경영성적을 올렸다는 데 기인하는 것 같다. 그래서 정치도 CEO에게 맡겨보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CEO에게 기대되는 역할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CEO의 역할이 주목을 받아왔다. "우리 경제가 이나마 지탱하는 것도 유능한 CEO의 노력 덕분"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가운데 잭 웰치 같은 성공한 CEO의 어록이나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가 하면, 상장기업의 주가(株價)가 CEO의 진퇴에 따라 크게 오르내렸다. 또 CEO가 받는 거액의 연봉과 스톡옵션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정치나 기업을 막론하고 'CEO 대망론'이 고개를 드는 것은 21세기의 정보화 사회에서는 제왕(帝王)같은 카리스마가 아니라 이사회(理事會)식의 실질적인 토론을 즐기고 투명성과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실무가형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20세기까지는 정치가와 장군이 위인(偉人)의 반열에 올랐지만 21세기에는 유능한 기업인이 이들을 능가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인 CEO들을 보면 벤치마킹할 만한 훌륭한 덕목을 갖추고 있다. 구체적인 비전을 창출하여 이를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격의 없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즐기며 남다른 추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CEO가 재벌기업의 오너와 다른 점은 이들이 밑에서부터 올라왔기에 그 대상이 거래처이건, 노동조합이건 실질적인 협의와 토론에 능하고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라는 특징을 꼽을 수 있다.

CEO에 대한 보상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유능한 CEO는 그들이 남다른 덕목을 갖춘 만큼 그에 대한 보상도 특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하여 탄생한 은행의 CEO 연봉을 책정할 때 화제가 된 것처럼 우리나라의 CEO는 외국 유수기업의 CEO에 비해 보수가 크게 낮은 것이 사실이다. 외국 기업에서 CEO의 보수를 파격적으로 책정하는 것은 연봉이 얼마라도 좋으니까 주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도록 영업실적을 올리라는 주주들의 주문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CEO를 비롯한 기업임원들에 대한 보수는 주주총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우리 상법상 이사의 보수란 이사가 수행하는 경영활동의 대가(對價)로서 회사로부터 받는 급부를 일컫는다. 이 보수는 월봉·연봉·사택급여·현물급여 등의 형식을 취하는데, 그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그것이 경영활동에 대한 대가로서의 성질을 가진다면 모두 보수가 된다. 그런데 이사가 회사로부터 지급받는 상여(賞與)가 상법의 보수(제388조)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견해가 갈린다. 이사의 보수는 이사의 직무집행의 대가로서 이익의 유무에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반면 상여는 이사가 이익을 올린 데 대한 공로에 보답하기 위하여 지급되는 것으로 회사에 이익이 났을 때에만 이익금 중에서 지급되는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서 양자 모두 주총 결의에 의하여 그 액수가 결정되는 점은 비슷하지만, 그 지출되는 재원이 다르므로 상여는 보수와 별개로 취급되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CEO들은 회사에 이익이 났을 때에만 보수를 받겠다고 자청하고 있다. 예컨대 80년대 초 크라이슬러가 경영위기에 처했을 때 아이아코카 회장이 연봉을 1달러만 받기로 한 것이나, 우리나라에 CEO의 전형을 보여준 주택은행(현 국민은행)의 김정태 행장이 스톡옵션을 받는 대신 연봉은 받지 않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에는 뉴욕시장으로 취임한 블룸버그 전(前)블룸버그 통신 회장이 뉴욕시 재정이 정상화될 때까지 연봉을 1달러만 받기로 하는 등 공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느헤미야 이야기

CEO가 자신의 연봉을 스스로 삭감하는 일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미 2,400여년 전에 모범적인 선례가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벨론(지금의 이라크를 지배하던 강대국)의 공격을 받아 많은 주민들이 이국 땅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성도(聖都) 예루살렘 성은 무너진 채로 버려져 있었다. 이때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시아 궁정에서 고관을 지내고 있던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가를 얻어 예루살렘 성을 수축하고자 했다. 그러나 식민지배하에 있던 예루살렘 성의 백성들은 징세와 부역으로 극심한 생활고에 빠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 빚을 얻느라 전답을 저당 잡히고 심지어는 아들딸을 종으로 팔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느헤미야는 지도층 인사들에 대해 부채 탕감을 유도하는 한편 자신은 유대 총독으로 재임하는 동안에는 한푼도 녹(祿)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舊約 느헤미야서 5장).

이와 같은 느헤미야의 투명하고 솔선수범하는 지도력에 힘입어 주변의 온갖 방해책동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은 훌륭하게 재건되었으며, 이스라엘 땅에서는 오래된 폐습이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 정계, 재계 아니 모든 부문에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그 명칭이 CEO든 무엇이든 간에 이와 같이 구성원들과 비전을 공유하면서 투명하게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