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통일대박’
       - 통일논의에서의 골든타임을 실기하지 말아야 -

*  다음은 2014.12.15자 남북물류포럼 홈페이지에 실린 KoLoFo 칼럼(제254호)을 전재한 것이다.

2014년은 ‘통일대박론’으로 떠들썩했던 한 해였다.
그러나 연말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과연 통일로 과연 대박이 났는지, 적어도 대박의 조짐이라도 보였는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적 관심을 모은 가운데 정부에서는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언론사마다 다채로운 행사를 벌였으니 일단 흥행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슬로건에 그쳤던 ‘통일’이 국가적 어젠다(Agenda)가 된 것은 1972년의 남북 공동성명 발표 때였다.
무장공비 사건 등으로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립해 있던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하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만난 것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러한 남북대화가 남북 지도자들의 고도의 정치적 술책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을 때 국민들의 기대감은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남한에서는 1969년 9월의 3선 개헌과 1971년 12월의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이어 1972년 10월의 시월유신 선포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통일논의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정치를 우선하는 위정자(political leadership)의 눈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나 북한 주민들의 심정이 되어 통일을 이야기해야 한다.
과연 남과 북의 보통사람(common people)들이 통일을 진심으로 원하고 이득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통일논의에 관한 새로운 질문

남과 북의 보통사람들은 왜 통일을 바라는 것일까?
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외쳐 부르는 것일까?
그것은 통일이 되어 휴전선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되면 내가 직접 백두산, 묘향산에도 가보고 원산의 명사십리 해수욕장도 거닐어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향민들은 고향 땅을 밟아 보고, 이산가족들은 오랫동안 만날 수 없었던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들을 얼싸안기를 고대해 왔다.
또 기업인들은 시장이 확대되고 산업연수생 대신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 쉬워질 것이다. 내 차를 몰고 평양-신의주에도 가보고, KTX를 타고 곧바로 중국과 유럽으로 갈 수 있어야 통일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 역시 말로만 듣던 풍요로운 물자를 손에 넣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통일 당시 동독 주민들이 외쳤던 구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처음에는 “Wir sind das Volk.”(우리가 [인민공화국의 주인인] 바로 그 인민이다)라고 외쳤다. 언론의 자유, 여행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고 절규하면서 동독 주민들이 대거 서독으로 탈출하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다음에는 관사를 바꿔 부르짖었다, “Wir sind ein Volk.”(우리는 [서독 사람들과] 한 민족이다)라고.
통일을 앞두고 북한 주민들도 동독 주민들이 그러했듯이 과연 남한에 오고 싶어 하고 남한과 합치기를 간절히 원할까 생각해보아야 한다.
통일대박론이 무성했던 남한에서는 5.24 조치에서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배급제가 사라진 북한에서는 당국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장마당이 활기를 띠는 등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어느 탈북자가 말했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굶어죽지 않고 살아난 북한사람들의 생존능력은 매우 탁월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 형제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때

남측이 5.24 명분에 사로잡혀 겉으로만 통일을 이야기하고 북한 주민들이 실감할 수 있는 경제협력이나 인도적 물자지원을 중단하고 있는 동안 북한 사람들은 중국으로 러시아로 돌아다니면서 보따리 장사를 하고 노동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난 최룡해 북한 노동당비서는 북한의 젊은 일꾼(군인)들이 시베리아 개발을 책임지겠다고 장담했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1970년대 오일쇼크를 중동건설로 극복했던 우리나라처럼 북한의 핍박한 경제도 우리와 관계없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많다.
더욱이 북한 젊은이들의 노동의 대가가 핵개발이나 군비증강에 투입된다면 우리를 옥죄고 있는 전력의 비대칭성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통일논의는 정치적 타산에 앞서 북한 주민들이 실감할 수 있고, 남한을 호의적으로 상대하는 경제협력과 인적 교류의 활성화 방안에서 재출발하여야 한다.
2014년 우리 사회를 지배하였던 ?세월호? 사건에서도 초기의 골든타임을 실기한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는지 똑똑히 보았다.
초기 대응만 잘 했어도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고, 수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민족의 명운을 좌우할 통일논의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에 있어 골든타임을 허송하는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