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해적을 막아라

작년 말 남극 세종기지에서 조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 한편으로 우리나라도 남극에서 과학탐사 작업을 하고 있구나 하고 안도했다. 이제 지구상에는 미지의 땅이 극지 외에는 남아 있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개척 영역이 무진장으로 펼쳐진 곳이 있다. 바로 사이버공간(cyberspace)이다.

대항해 시대처럼 각축

세계사적으로 대항해 시대 지리상의 발견은 동방 무역에서 이탈리아에 크게 뒤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신흥 제국이 아주 열심이었다. 군주들은 절대왕정을 확고히 하기 위해 국적 불문하고 모험심 많은 탐험가들에게 자금을 대주어 새 무역로를 개척하도록 했다.

지금 사이버공간에서 16~17세기 대항해 시대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당시 국력은 강하지 않아도 해외개척에 관심이 많은 왕이 아낌없이 탐험경비를 제공함으로써 신천지 개척에 앞장섰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핀란드, 아일랜드 같은 강소국(强小國)들이 사이버공간을 선점하고 있다. 이들은 정보기술(IT) 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400년 전 서구 열강이 해상무역로를 발견하려고 경쟁했던 것처럼 오늘날 사이버공간에서도 주파수 할당, 기간통신망 시장 개방, 기술표준 선점 등을 둘러싸고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상비군, 쾌속선, 대포가 국력을 좌우하였다. 오늘날 사이버공간에서는 IT 산업 발전을 뒷받침하는 새 기술표준, 법률제도, 두터운 IT 인프라와 인력층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도 사이버공간에서 정보재산이 거래될 때 인기 있고 값 나가는 소프트웨어는 반드시 해적판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종 컴퓨터 바이러스, 웜, 트로이목마, 스파이웨어 등도 해적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사이버공간에서 신천지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역사에서 추출한 지혜에 입각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IT 시대의 키워드인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놓고 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등록시켜 일종의 저작권으로 보호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자가 자금이 필요하다면 등록된 컴퓨터 프로그램에 질권을 설정하고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컴퓨터 프로그램은 정적인 자산이 될 뿐이다. IT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수개월, 수주간으로 짧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적인 자산은 재산가치가 떨어지므로 금융기관은 이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기를 꺼리게 된다.

SW를 동적 자산으로 간주해 보호해야

그렇다면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동적인 자산으로 파악하는 것이 긴요하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한하지 않고 그 복제물(카피)도 대상으로 해야 하며, 사용허락권(라이선스)까지 포함해 거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거래 방식도 법으로 규제하지 말고 당사자 간에 합의만 있으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컨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담보로 제공할 때 미국의 통일컴퓨터정보거래법(UCITA)에서 규정하듯이 라이선스를 부여하는 식으로 한다면 훨씬 취급이 간편해질 것이다.

또 소비자 보호의 관점에서는 개인 소비자와 업무상으로 취급하는 자를 구분하여 적용 규범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전자거래 환경에서 전문업자와 일반 소비자의 보호에 차등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국일보 2004. 2. 13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