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의 중요성

2001년 9월 하순 파리에서 열린 개인정보보호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프라이버시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프랑스 국가정보·자유위원회(CNIL)에서 주최한 행사였는데, 세계 50여 개국에서 3백여 전문가들이 참석하고 개막과 폐막 때 시락 대통령과 조스팽 총리가 번갈아 연설을 하고 포르니 하원의장과 들라노에 파리 시장이 리셉션을 베푸는 등 상당히 비중있게 치뤄진 국제회의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금년부터 새로 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개인정보보호에 힘쓰고 있지만 프랑스 등 선진 각국에서는 이를 人權(human rights) 차원에서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정보는 프라이버시 문제

사실 자신의 신상명세를 공개하는 개인정보는 사람들이 별 의식없이 대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개인정보가 컴퓨터에 의하여 처리될 때에는 기업들의 영업활동에 무차별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특히 민감한 정보인 경우에는 개인의 명예나 재산에 치명적인 손해를 입힐 가능성도 많다. 따라서 많은 나라에서 개인정보에 대하여 정보주체의 자기결정권(information self-determination)을 인정하고 있지만 그것이 오·남용될 때에는 그의 사생활(프라이버시)을 침해할 수 있다고 보고 기본적 인권의 문제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파리 국제회의에서도 강조되었거니와,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大兄(빅 브라더)이 주민들의 신상을 모두 파악하고 이것을 정치적으로 사용한다면 개인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대형은 독재자가 아니라 막강한 시장지배력을 가진 대기업, 다국적기업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 각 개인은 꼭둑각시처럼 조종을 당하는 대로 물건을 사고 소비해야 한다.

이러한 위험성에 대한 인식은 파시즘의 발호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겪어야 했던 유럽인들에게는 매우 특별한 것 같다. 그래서 유럽연합(EU)의 경우 통일된 개인정보보호법의 시행을 위해 1995년 말부터 집행위원회와 유럽의회가 指針(95/46/EC)을 시달하고 각국의 국내입법을 촉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보호가 적절한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는 정보의 교류마저 불허토록 했다.

리버티와 시큐리티의 균형

그런데 9월 11일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의 영향으로 회의장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회의가 열리는 소르본느 대학교의 출입구마다 경비원들이 지켜서서 가방을 전부 열어 보이도록 했고, 참가자 명찰을 달지 않으면 출입마저 부자유스러울 지경이었다. 더욱이 회의의 주제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더욱 은밀하게 개인정보가 수집·이용되는 상황에서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보호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으므로 정보주체와 정보의 수집·이용자간에는 긴장관계가 조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락 대통령의 개막 연설 때부터 리버티(개인의 자유)와 시큐리티(공공의 안전)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 거듭 강조되었다. 주최측(CNIL)의 장토 위원장은 기념사 도중 맨해튼을 노래한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풀잎'을 낭송하여 테러 참사의 희생자를 애도하기도 했는데, 미국 시민단체의 대표가 미국 의회의 反테러 입법 추진과정에서 외국계 주민들에 대한 전자감청(electronic surveillance)을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보고를 할 때 긴장감은 절정에 달하였다. 또 파산한 기업(Toy Mart)이 보유하고 있던 고객정보를 일종의 기업자산이라 보고 매각 처분할 수 있도록 한 미국 보스톤 파산법원의 결정을 시민단체가 반대하여 좌절시킨 사례도 청중들을 흥분케 만들었다.

운전자의 이동통신전화가 발신하는 위치확인정보(location data)를 이용하여 택시강도 같은 강력범죄를 예방하고 있다는 스페인 경찰의 사례발표도 있었지만, 유럽 각국에서는 개인의 생명·신체에 위해가 가해지는 상황이 아닌 한 개인정보를 공공목적이나 부가가치 서비스 목적으로 수집하거나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오히려 이동통신업자들이 고객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가입자의 동의가 없으면 위치확인정보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판국이었다. 사실 개인정보를 자유권의 하나로 보고 있는 유럽의 시각으로는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더욱 민감한 것 같았다.

개인정보보호는 새로운 글로벌 스탠다드

회의 마지막 날 '세계는 하나, 프라이버시도 하나'라는 순서에서 일본의 마사오 호리베 교수(일본 중앙대 법대)가 일본의 개인정보보호 입법추진 사례를 소개할 때에는 개인정보보호가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로 굳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파리로 떠나기 전 우리 國會에서는 국정감사가 연일 통신감청 문제로 공전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현실은 아직 국제기준하고는 거리가 있구나 여겨졌다.

주최측이 회의 둘째날 저녁에 루블 박물관의 유리 피라밋 아래에서 참석자를 위한 만찬을 베풀면서 특별히 박물관 전시물을 시간외로 관람할 수 있게 배려해준 것도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는 문명사회의 일원이기에 그러한 특권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다시 말해서 어느 나라든지 개인정보보호를 헌법 차원에서 보장하고 있는 프라이버시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면 문명국가로서 상대하지 않겠다는 선진국들의 결연한 정책 표명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는 이미 OECD 회원국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