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를 청산하는 법

요즘 미국 교포사회에서는 이민법 제245조(i)항이 단연 화제이다. 한국인 불법체류자는 물론 가게에서 일하는 멕시코 불법체류자들이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21일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발효된 이민법 개정법률(공식적으로는 [합법적 이민 및 가족형평법(LIFE Act)]으로 부활된 조항)에 의하면 이 법 시행일 현재 미국에 체류하는 불법체류자(미국에서는 '서류가 없는 이민자'라고 부른다)가 2001년 4월 30일까지 1천 달러의 수수료와 함께 소정의 이민신청 서류를 이민국에 제출하면 정식으로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신분으로 바꿔준다고 한다.

미국은 이민들이 이룩한 나라이고 지금도 불법체류자들이 노동시장의 한 축을 이루면서 미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지난 번 대통령선거 때 불법이민 문제가 선거 이슈로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부시 대통령도 멕시코와 국경을 맞댄 텍사스 주지사로서 상당히 신경을 썼던 문제이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한 지 한 달도 안되어 멕시코로 날아가 빈센테 폭스 대통령과 마약 단속과 함께 이 문제도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불법이민 문제 처리

우리나라에도 복잡한 문제가 산적해 있는 터에 태평양 건너의 불법이민 문제에 관심이 가는 것은 그 문제해결 방법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미국에 불법으로 들어온 사람은 비록 미국에서 결혼을 하고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자녀를 낳아 기르더라도 정식으로 영주권을 받으려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 현지의 미국 영사에게 이민비자를 신청해야 했는데 3년 또는 10년간 미국에 입국해서는 안된다는 제약에 묶여 있었다. 그러니 가족과의 생이별을 감수하고라도 정식으로 이민수속을 밟을 사람은 없고 불법체류자만 늘어나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최근 대우와 동아건설 사건으로 부각된 국내 기업의 분식회계 문제와 영락없이 일치하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한 이래 분식회계를 한 상장법인이 3개사에 하나 꼴이라면 우리 기업의 재무제표를 믿을 수 없다던 외국인투자가들의 말이 전혀 엄살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익을 적게 내려고 분식을 한 사례도 있다고 하지만, 분식회계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기업가치를 평가받기는 틀렸고 외자유치나 세계화도 지난한 일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수치상으로 부풀려져 있는 자산과 이익금을 털어 내야 하는데, 한국경제신문 2월 16일자 보도에 의하면 정부 당국도 그 방법론을 둘러싸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 문제는 미국의 불법체류자들과 사정이 꼭 같다. 재무제표를 떳떳하게 고치려니 과거의 분식회계로 피해를 본 투자자나 금융기관들이 가만있을 리 없고, 당해 기업이나 회계법인은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을 비롯한 실정법 위반으로 형사책임은 물론 손해배상 책임까지 져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이상 회사운영, 회계감사에 손을 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가족과의 생이별을 무릅쓰고 정식 이민신청을 하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분식회계의 청산

그러므로 미국의 이민법과 같이 특단의 입법조치를 통해 스스로 전기 오류수정을 한 기업과 회계사에 대하여는 과거의 분식결산을 불문에 부치고 새롭게 분식이 없는 투명한 회계처리를 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젠가 한 번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면 '지금이 그 때'라고 본다. 언론에서는 이를 '면죄부'라고 표현하지만, 이러한 사면은 과거의 분식결산에 국한하고 앞으로 자행되는 분식회계에 대하여는 엄벌에 처하여야 한다. 또 미국의 불법체류자들이 적잖은 벌금을 물어야 하듯이, 분식회계의 규모와 책임의 정도에 따라 당해 기업, 감사인 등에 대해 수수료(일종의 벌금)를 부과하고 이를 투명한 회계처리와 건전한 기업경영을 촉진하기 위한 기금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지금까지 분식회계와 부실감사로 처벌된 사례와 비교해도 크게 불공평하지 않고, 국내 기업의 대외신인도를 한층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어차피 화이트 칼라 범죄는 형사처벌보다는 그 죄책에 상응하는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고 보면 전비(前非)를 뉘우친 기업주, 회계사를 교도소에 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