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법 개편의 글로벌 스탠다드

1997-98년의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계기로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도산법 개혁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우리 정부가 1998년에 이어 IMF와 IBRD의 권고에 따라 99년도 정기국회에 제출한 회사정리법, 화의법, 파산법 등 도산 3법의 개정안도 연내 처리될 전망이다. 현재 상임위에서 부분적으로 수정된 동 개정안의 골자는 산은 조사부에서 최근 발간한 [企業倒産法 해설]에 간략히 소개되어 있거니와 여기서는 우리 나라 도산법제가 어떠한 방향으로 개편될 것인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 정부는 도산 3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유엔 산하의 국제거래법위원회(UNCITRAL)에서도 1992년 [국제도산에 관한 모델법](Model Law on Cross-border Insolvency)을 제정한 데 그치지 않고 각국 국내 도산법의 조화와 통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UNCITRAL 회원국들은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고 국제금융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효율적인 도산법 및 채권자-채무자 법률관계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1999년 12월 비엔나에서 개최되는 제22차 회의에서 각국의 기업도산법(corporate insolvency regimes)에 관한 논의를 본격 개시하기로 했다.

1999년 UNCITRAL은 [倒産法의 向後 課題](Possible Future Work on Insolvency Law)라는 보고서를 통하여 IBRD, ADB, IMF, OECD, 국제변호사협회(IBA), 국제금융위기에 관한 G-22 실무회의 등과 공동으로 도산법제의 바람직한 방향과 중점 검토사항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현재 대우 그룹의 기업개선작업을 둘러싼 해외채권단과의 협상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기업도산법제가 전세계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국회에 상정된 법개정안과는 별도로 유수 법무법인(Shin & Kim)이 정부의 용역을 받아 도산법 개편시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차제에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는 도산법의 이념과 절차가 포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도산관련법의 통합

우리나라가 도산 3법을 계수한 일본에서는 2차 대전후 전쟁으로 황폐화된 기업의 재건을 촉진하기 위하여 미국 연방파산법의 회사재건(Chapter X. Corporate Reorganization) 절차를 특별법으로 채용하여 지금과 같은 3법 체계가 정립되었다.

기업이 파산상태에 직면한 경우 이를 청산할 것인지, 아니면 갱생을 도모할 것인지 법원은 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신청에 따라 그에 적합한 절차로의 이행을 신속하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하여는 모든 절차를 단일법에 규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예컨대 미국 연방파산법은 제7장에 청산, 제11장에 재건 절차를 규정하고 있으며, 독일에서도 본래 파산법과 화의법으로 나뉘어 있던 것을 1994년에 통합도산법을 제정하고, 1999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일본에서도 독일, 프랑스의 예에 따라 단일도산법의 제정을 검토 중이다.

신속처리 절차(Fast Track)

종래 우리나라의 회사정리나 화의 절차는 신청후 개시결정까지 3-5개월이 소요되고 조사절차도 개시결정 전후에 2회에 걸쳐 이루어지는 등 절차진행이 몹시 더디었다. 신속처리 제도는 회사정리 또는 화의 개시신청이 있는 경우 법원이 당해 사건이 일정한 요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6-8개월내에 모든 처리를 종료하는 방식이다.

사전포장 정리계획(Prepackaged Plan)

미국의 파산법은 회사재건 절차개시 전에 이미 재건계획안에 수락이나 거절의 의사표시를 한 채권자에 대하여 일정한 요건을 갖추기만 하면 회사재건계획안이 법원에 제출된 경우에도 다시 의사표시를 하지 않아도 기존에 표명한 의사대로 수락 또는 거절한 것으로 본다. 채권자의 보호 내지 의사존중이 중요하므로 수락 또는 권유에 관한 설명이 관계법령에 따라(예: 증권거래법에 의한 의결권행사) 적법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법원이 해당 채권자 전원에 대하여 필요한 통지와 심문을 하고 회답을 받기까지 충분한 기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제도는 지금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판 외의 사적 정리(out of court workout) 절차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워크아웃 절차에서 법정 다수의 채권자가 동의(또는 부동의)하였다면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간 경우에 다시 채권자들의 의사를 수렴할 필요없이 법원이 정리계획 인가(또는 불인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도산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수 있다.

자동보전 처분(Automatic Stay)

미국의 회사재건 절차에서는 채무자 또는 이해관계인이 파산보호를 신청하면 모든 채권자의 원리금과 이자에 대한 지급이 자동적으로 정지되고 담보권을 가진 채권자도 담보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자동보전처분은 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지속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부정수표단속법상 자동보전 처분의 도입이 곤란한 실정이다. 따라서 법원은 회사정리절차 개시결정을 할 때 보전처분을 명하게 된다.

위험의 배분(Risk Allocation)

도산절차에 참가한 당사자간에 리스크 배분이 명확하고 참가자들이 적절한 리스크 대책을 세울 수 있어야 하며, 절차가 예측가능하고 투명하여 참가자들이 도산법상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산은소식 199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