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본드 시장의 육성

정부는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물량압박 요인으로 등장한 금년 하반기에 만기도래하는 회사채 34조원에 대하여 약 14조원의 프라이머리 CBO(다단계 채권담보부 증권)를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으로 발행하기로 했다. 또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벤처기업들의 자금조달을 지원하기 위해 벤처전용 프라이머리 CBO의 발행을 계속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신문보도에 의하면 1천여 개의 벤처기업들이 주간사회사들을 상대로 불꽃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다. 벤처전용 프라이머리 CBO는 벤처기업들이 발행하는 私募전환사채에 대해 信保와 技術信保가 100% 보증하는 일종의 공적 자금 성격을 띠고 있다.

프라이머리 CBO와 공적 자금

프라이머리 CBO는 안전자산선호(flight to quality) 현상이 극심했던 작년에 크게 각광을 받았던 신종 금융상품이다. 정상적인 사채발행이 불가능하였던 중소·중견기업들이 프라이머리 CBO 발행을 통하여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資産流動化(ABS) 기법을 이용하여 채권시장을 통한 자금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다행이지만, 이제 막 자리를 잡은 ABS시장이 일부 유동화증권의 디폴트로 신뢰성을 의심받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물론 신용보강기관(credit enhancer)이 당해 CBO의 원리금 지급을 보장하기는 하지만, 신보나 기술신보의 경우 법률로 설립된 공적 보증기관으로서 IMF 사태 이후 엄청난 규모의 보증을 인수하여야 했던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신보·기술신보로 하여금 일부 신용에 문제가 있는 벤처기업까지 보증을 하게 한다면 벤처경기가 되살아나지 못할 경우 또 다른 공적 자금 추가조성 시비를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그보다는 본격적으로 정크본드 시장을 육성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된다. 사실 대우사태의 여파로 많은 투자자들이 하이일드 본드에 대해 고개를 내젓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것은 철저한 신용분석과 시장조성이 미흡한 데다 단일채무자가 너무 많은 금액의 사채를 발행하였기 때문에 일어난 부작용이었다. 만일 철저하고도 객관적인 신용평가가 전제가 된다면 고수익을 보장하는 다소 신용도가 낮은 채권들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여지가 많다고 본다. 더욱이 M&A를 위한 사모펀드가 등장한 지금은 정크본드의 활용도가 매우 높아졌다.

마이클 밀켄의 패러다임 전환

정크본드 시장하면 한동안 미국 채권시장을 주름잡았던 마이클 밀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펜실베니아대 경영대학원인 워튼 스쿨 출신인 그는 정크 본드를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fallen angels)'라고 말하면서, 우량회사채보다 4∼6% 이자를 더 지급한다면 투자자들에게도 적절한 보상이 되고 발행사의 실적이 좋아지면 채권값도 뛰게 마련이니 주식 이상으로 유리한 투자수단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또 신용평가회사들이 장래의 사업성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과거의 실적에만 집착함으로써 기업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마이클 밀켄은 소속사인 드렉셀 번햄의 본사가 있는 뉴욕의 월스트리트가 아닌 비벌리힐즈에 채권부 사무실을 차렸다. 그 이유는 인기연예인이나 부유층을 상대로 정크본드를 팔려는 게 아니라 세 시간 먼저 개장되는 뉴욕 증권거래소가 열릴 때부터 세 시간 더 일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판촉 노력에 힘입어 당시까지만 해도 너무 투기적이라고 경원시되었던 정크본드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이와 같이 조성된 자금을 가지고 저평가된 기업의 인수에 나서 질풍노도와 같이 LBO(대상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차입한 자금으로 당해 기업을 인수하는 M&A) 선풍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그는 뉴욕 시장의 야심을 가진 줄리아니 검사장에 의해 증권사기와 내부자거래 혐의로 기소되어 1990년 뉴욕 연방지방법원에서 10년 징역, 추징금 11억달러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평생토록 금융업계에는 다시 발을 디뎌서는 안된다는 선고를 받은 것도 이색적이었다.

정크본드 시장 발전의 조건

미국의 정크본드 시장이 마이클 밀켄이 퇴장하면서 붕괴되는 바람에 업계에서는 '정크본드 皇帝의 복귀'를 열망하기도 했다. 시대를 앞질러간 그의 思考는 1980년대 중반 월스트리트에서 MBS(주택저당채권)의 강자로 군림하던 살로몬 브라더스사의 굿프렌드 회장과 면담하던 중 서로간의 시각 차이로 고성이 오간 끝에 밀켄이 경비원에 의해 쫓겨나갔다는 일화에서도 잘 알 수 있다. 마이클 밀켄의 튀는 아이디어는 그가 가석방으로 풀려난 뒤 1996년 [지식세계사](Knowledge Universe)를 설립하여 산하기관의 연간 매출액이 14억달러를 넘는 교육사업가로 변신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의 정크본드 시장이 성황을 이룬 것은 레이건 행정부의 규제완화(deregulation)를 배경으로 채권시장에 관한 종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마이클 밀켄과 고수익채권을 열망하던 S&L(저축기관)과 같은 기관투자가들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적절한 규제감독 없이 탐욕만 앞세웠기에 S&L의 집단부실로 귀결되어 미국 납세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운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우리가 바라기는 요즘의 CBO 열풍이 공적 보증기관의 신용보강으로 빛깔만 최우량등급인 채권을 양산하고 모럴해저드를 조장하기보다는, 마이클 밀켄 같이 종전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 건전하게 하이일드 본드가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과거의 실적 못지 않게 장래의 사업성까지 따져보는 철저한 신용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벤처기업의 경우에는 경영진의 경영능력, 기술력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적 기관의 보증은 꼭 필요한 경우에 최소한의 범위로 그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