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선한 양심, 그리고 의제신탁
- 억울한 사정을 해결하려면 의제신탁을 적극 활용해야


[케이스 #1]
경북 영양군에서 밭농사를 짓던 어느 시골 농부가 자기 땅에 세운 방송국 송신탑을 철거하라고 소송을 냈다가 되레 그 땅의 소유권을 방송국에 빼앗기게 됐다.
이 농부는 이동통신사에 기지국을 세울 땅을 빌려주고 점용료를 받게 되자 더 높은 철탑을 세운 방송국에 비싼 임대료를 내든지 아니면 철탑을 이전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방송국 측은 임대료를 못준다고 버티다가 20년간 평온 공연하게 땅을 점유했으니 그 땅을 시효취득했다고 주장(민법 제245조 제1항)하고 나섰다.
이 사건을 심리한 1심법원에서는 화해조정을 시도했으나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자 민법의 법리에 따라 2009년 초 방송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1년 대구지법 항소부에서도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역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출처: 조선일보 2011.5.14.자>

[케이스 #2]
여 중국을 떠돌다 천신만고 끝에 남한에 정착한 A씨는 자기에게 직장과 일거리를 준 B사장이 한없이 고마웠다.
그러던 중 B씨가 사업자금이 모자라니 은행대출을 받아야겠다고 하고 A씨더러 보증을 서 달라고 하자 별 생각 없이 이에 응했다.
얼마 후 A씨는 은행의 보증채무 이행 독촉에 시달리게 되었고, 변호사를 구할 여력이 없는 A씨는 직접 법정에 출석하여 자기의 억울한 처지를 호소하려 했지만 법적으로 그의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케이스 #3]
홀로 된 친정어머니의 형편을 딱하게 여긴 딸 내외가 자기 집에 어머니를 모시기로 했다. 그러나 방이 모자라 서로 불편을 겪게 되자 장모가 사위에게 자기가 비용을 댈 터이니 방 한 칸을 들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1년 만에 그 집을 나온 장모는 건축비를 돌려주든가 매달 생활비라도 달라고 말했다.
사위는 증축비는 장모가 직접 건축업자에게 준 것이니 자신은 반환 의무가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1심법원은 장모와 사위 간에 직접적인 법률관계가 없었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데닝경의 정의와 선한 양심

위의 케이스들은 모두 실화이다. 해당 당사자의 사정이 모두 딱하지만 법적으로는 달리 해결방도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영국에서 벌어졌던 #3 사건의 항소심에서, 수많은 명판결로 유명한 데닝경(1899∼1999)이 ‘정의와 선한 양심’(justice and good conscience)에 따라 원고도 증축된 집에 형평법상의 이익을 갖는다고 선언했다.
즉 문제가 된 재산을 취득할 때나 상황에 따라서는 ‘의제신탁’(constructive trust)이 성립한다고 보고 사위가 증축분 만큼 신탁을 받은 셈이니 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라도 돈을 갚으라는 판결을 내렸다.

신탁이 성립하려면 당사자의 ‘신탁의 의사’가 필수적이지만 ‘정의와 선한 양심’에 따라서는 신탁을 의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케이스 #1의 경우 당초 방송국 철탑이 들어설 때의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방송국에서는 난시청지역 해소를 위해 철탑을 세워야 했고, 야산에 세운 철탑에 대해 밭주인은 자신을 포함한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돈을 받지 않고 철탑 세울 땅을 방송국에 믿고 맡겼다(신탁)고 추정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2005년 그 부근에 통신사 중계기가 설치되어 상당액의 점용료를 받게 되자 원고 측은 위의 신탁을 철회하고 방송국에도 점용료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케이스 #2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새터민(탈북자)의 조속한 정착을 돕기 위해 정착지원금, 취업장려금 등이 지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탈북을 도왔던 브로커들이 이 돈을 가로채가기 때문에(최근 들어 지원금이 많이 줄어들고 몇 차례로 나누어 지급하면서 이 또한 갈등이 많다고 한다) 정작 새터민의 정착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위의 사건처럼 사기꾼, 다단계판매원 등이 이들의 돈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렇다면 새터민 정착지원금을 남한 정부가 납세자들(케이스 #2에서 고용주 B, 대출은행 모두 해당)의 뜻을 받들어 오로지 새터민의 남한 사회정착을 위해 믿고 준 돈이라고 하면 어떨까? 새터민의 고용주가 은행대출을 받을 때 새터민이 연대보증을 서는 것은 정부와 납세자들의 신탁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니 무효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석하면 새터민의 경제활동을 심하게 제약하거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도 있으므로 법률로 일일이 정하지 말고(위의 법률 제21조 제4항에서 정착금의 양도, 담보제공, 압류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최소한의 금지사항이고 이 사건의 보증은 그 범위 밖이다)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법관이 이러한 의제신탁의 법리를 원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의제신탁 법리에 의한 문제 해결

이러한 관점에서 케이스 #1의 방송국은 본래 남의 땅에 철탑을 세운 것이므로 시효취득을 주장하기 전에 그 땅의 점용료를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 시청료를 받는 공영방송이, 끄떡하면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강조하는 마당에, 자기 이익을 위해 법의 힘을 빌리는 것을 사법부가 도와서는 아니된다. 케이스 #2에서도 자본주의식 거래의 경험이 많지 않은 새터민에게 정착지원금의 의미를 이해시키고 연대보증의 위험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데닝경이 말한 대로 ‘정의와 선한 양심’에 따라 협잡꾼, 사기꾼이 이렇게 피땀 어린 간절한 돈에 손을 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법관이 당사자의 신탁의사를 확인할 수 없더라도 ‘정의와 선한 양심’에 따라 인정하는 의제신탁의 개념은 우리 대법원에서도 인정한 바 있다.
보증사채 원리금 지급자금은 사채권자의 이익을 위해 은행에 믿고 맡긴 것이니 이를 은행이 함부로 상계처리할 수 없다고 한 2002년 대법원판례*가 그것이다.
* 대법원 2002.7.27. 선고 2000다17070 판결. 이를 평석한 논문으로는 임채웅, “묵시신탁과 의제신탁의 연구”, 저스티스 통권 제105호, 한국법학원, 277∼301면이 있다.

본래 신탁은 상당한 유연성(flexibility)을 갖고 있다. 영국의 허시 사건에서 못된 사위가 장모의 재산을 움켜쥐지 못하게 한 것처럼, 타인을 속이거나 부지(不知)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 사람이 그 이익을 누리지하지 못하도록 의제신탁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인의 법감정에 비추어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출처: 박훤일, “시대와 사회를 초월한 명판결”, KHU 글로벌기업법무 리뷰 제2권 제1호, 2009.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