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KO를 둘러싼 시비의 본질

2008년 많은 기업들을 도산 위기로 내몰았던 환 헤지 파생상품 KIKO를 둘러싼 분쟁이 새 국면을 맞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 대학 교수가 우리나라 법정에서 KIKO관련 증언을 하였다고 한다.1)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140여건의 KIKO관련 소송이 계류 중인데, 2008년 환율이 급등하면서 큰 손해를 입은 기업들이 은행을 상대로 치열한 법정싸움을 벌이고 있다.2)

이 글에서 KIKO의 상품 내역과 문제점을 재론할 필요는 없지만, 다음 사항에 대해서는 주목을 요한다.
KIKO는 환율의 하락(원화의 강세)을 우려한 수출기업들이 환차손을 피하기 위해 거래은행을 상대로 녹아웃(Knock-Out) 풋 옵션을 갖고, 반대로 은행은 기업에 대해 녹인(Knock-In) 콜 옵션을 걸어 이를 대략 1:2의 비율로 결합한 환 헤지용 통화옵션이다. 이 때 KO 또는 KI 조건을 붙인 것은 일반 옵션에 비해 옵션 프리미엄을 공짜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서 별로 돈들이지 않고 환율 하락에 대비하여 환 헤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KIKO 거래 당시의 큰 메리트였던 것이다.

KIKO를 둘러싼 법적 쟁점

법률적 쟁점도 잘 정리되어 있다.
원고측(피해 기업들)은 제대로 된 약정서에 서명 또는 기명날인한 적이 없으니 계약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은행이 KIKO 거래의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으니 약관규제법상 명시·설명의무를 위반한 계약이라거나 신의칙에 반하는 공정성이 없는 약관이라는 이유로 무효임을 주장한다.
심지어는 거래기업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게 만드는 반사회적인 거래 또는 기업측의 궁박·경솔·무경험을 이용한 거래라는 주장도 나왔다.
현재까지 이와 같은 원고측 주장은 대부분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주목을 요하는 것은 KIKO 거래가 계속적 계약관계이므로 계약 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비정상적인 환율의 등락이 있었다면 신의칙에 따라 사정변경에 의한 계약해제를 주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12월 3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 50부는 기업측의 KIKO 계약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임으로써 사정변경에 의한 해지권을 인정한 셈이 되었다.

이와 같은 쟁점을 다투는 재판과정에서 KIKO 거래의 본질을 검토할 필요성이 대두되어 원고측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까지 재판에 감정증인으로 세워 KIKO가 당초 수출업체들에 불리하고 은행에 유리하게 설계된 파생상품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물론 엥글 교수의 증언은 담당 재판부가 참고만 할 뿐이지만 엥글 교수라고 흑백 가리듯이 판정을 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KIKO 거래는 미래의 불확실한 환율동향을 다루고 그 거래에 관여한 많은 사람들의 이기심과 탐욕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구간만 놓고 본다면, 예컨대 환율이 하락하는 국면, 거래은행이 고객에게 KIKO 상품을 권유하고 양 당사자가 계약을 맺는 국면에서는 시비가 가려질지 모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누가 옳고 누구는 그르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찌 보면 모두다 환율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갑자기 급등함으로써 환차익을 기대하였던 기업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은 것은 神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계약 당시 기업관계자들은 그네들이 확실히 이기게 되어 있는 환율 게임에 들어온 은행 사람이 '약간의 수수료만 받고 공짜 거래를 만들어 주기 위해 큰 손해를 감수하는 바보'로 비쳐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감독

이러한 관점에서 KIKO 거래의 큰 그림을 그려놓고 보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문제가 된 KIKO 거래의 피고로 재판을 받는 은행들은 파생상품의 판매자(distributor)에 불과하고 이 같은 구조화 상품의 기초가 된 자산의 보유자(originator), 상품을 만든 사람(product provider)은 따로 있다.
오늘날 파생상품 시장에는 기관투자자 말고도 심사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부유한 개인투자자들(high-networth individuals)도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들 HNW 투자자들은 종종 투기적인 거래를 일삼고 예측과 달리 시장이 움직일 경우에는 큰 손해를 입는 까닭에 감독당국은 거래참여자들의 의무와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일례로 영국 금융감독청(Financial Services Authority: FSA)에서는 일찍이 파생상품 거래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2007년 7월 [고객공정대우방침](Treating Customers Fairly Initiative)에 따라 파생상품에 관한 정책선언(FSA Policy Statement)을 가이드라인으로 채택한 바 있다.3)

요컨대 우리나라의 KIKO 거래를 둘러싼 책임 공방은 이 상품의 제조자와 판매자, 고객(특히 HNW 투자자), 그리고 감독당국을 모두 동일선상에 놓고서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영국 FSA의 지침4)은 규칙을 상세하게 규정한 것도 아니고 법적인 책임을 부과한 것도 아니지만, 고도의 책임(high level responsibilities)을 지는 참가자들에게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동 지침에서는 파생상품을 만든 사람과 파는 사람의 책임을 명확하게 가르고,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없도록 했다.

엥글 교수도 원칙론에 입각하여 증언을 했다고 하는데, 파생상품을 설계할 때에는 그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당해 상품이 가장 적합한 목표고객의 시장을 특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다양한 시장여건의 변동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고 그에 적합한 리스크 관리기법을 작동시켜야 한다.
상품설계자는 판매자들에게 제공하는 당해 상품에 관한 정보가 충분하고 적합하며 포괄적인지, 그리고 판매자들이 최종 투자자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고객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때에는 고객들이 시장에서 금융적으로 어떠한 능력을 갖고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어느 정도 당해 상품과 그에 따른 위험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지 고려하고, 판매망(distribution channel)을 선택할 때에도 상품의 성질에 따라 최종 투자자들이 적절한 조언을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문제는 KIKO의 경우 당초 이 상품을 설계하고 국내 소개한 투자은행을 국내 법정에 불러낼 수 없다는 데 있다.
KIKO 거래은행들은 거래기업에 녹아웃(KO) 풋 옵션을 팔고 프리미엄을 받은 것은 반대로 녹인(KI) 콜 옵션을 산 대가로 지불하였을 뿐 아니라 파생상품의 거래 직후 환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반대 방향의 거래를 체결하였기 때문에 크게 이득을 본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KIKO 상품을 만든 사람이 없는 가운데 KIKO를 판 사람과 산 사람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 하는 문제는 법원이 최종적으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원인제공자가 없는 상태에서 똑같은 피해자인 KIKO 판매은행과 중소기업들은 대출금 출자전환, 대출기한 연장 등 상생(相生)을 도모하는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금융기관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금융 이노베이션을 주도하는 종사자들이 새로운 상품에 대해 잘 이해하고 고객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야 한다는 점, 고객들은 판매자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신뢰한다는 점, 그럼에도 최종적인 투자의사 결정은 고객 자신이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직접 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금융상품이나 거래를 남이 한다고 덩달아 취급하는 것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점 등 기본으로 돌아가 영업자세를 새로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1)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의 로버트 엥글 석좌교수가 12월 17일 서울중앙지법의 KIKO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그러나 엥글 교수는 경제학자이지 파생상품 전문가는 아니다.
2)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기업들의 KIKO로 인한 손실액이 2009년 8월 말 3조3천여억원에 달했다.
3) FSA는 파생상품의 제조자와 판매자의 책임을 규정한 지침(The Responsibilities of Providers and Distributors for the Fair Treatment of Customers)을 토대로 2009년 10월에는 파생상품 제조자들이 고객을 공정하게 처우해야 한다며 그의 책임을 환기시키는 공문(Treating customers fairly - structured investment products)을 새로 발표하였다.
4) "Buying structured finance", International Financial Law Review, Nov 2007. 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