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대학의 현실과 취업문제

대학교수가 된 지도 어언 4년이 지났다.
박사학위를 받고 앞뒤 가리지 않고 전직을 하였지만 그때는 예상치 못했던, 전 직장과는 사뭇 다른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있다.

첫째는 법과대학에서는 여전히 사법시험 합격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비록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극소수가 사법시험에 합격하지만 학교의 순위가 사시합격자 수로 결정되는 현실에서 교수들도 강의를 할 때 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둘째는 학생들도 사회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오랜 직장생활을 한 나로서는 기업에서 실무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하므로 취업대비 강의를 많이 하고 싶지만 학생들은 이러한 강좌의 선택을 주저한다.
법대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사법시험 합격의 가능성이 희박해진 다음에야 진로를 바꾸는데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왜냐하면 요즘 대부분의 기업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영어(TOEIC, TOEFL) 실력을 요하므로 사법시험 대비 영어점수(TOEIC 700점 이상)만으로는 턱도 없고, 면접위원들의 관심을 끌만한 이색적인 사회경험을 쌓을 기회가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교수의 이러한 충정을 믿고 따라주는 제자들이 반드시 있다는 점이다. 이런 학생들이 종종 소식을 전해 올 때 어디 비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요즘 젊은이들을 흔히 'X세대', 'M세대'라고 일컫지만 많은 학생들이 사심없이 선생이 하는 말을 곧이 듣고 따라주는 것을 보면 고맙기도 하다. 그리고 해마다 새로운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내 강의실로 들어오는 것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다음에 소개하는 편지는 2004년 8월 25일 졸업하는 한 학생이 보내온 e-메일의 내용이다. 이 학생은 4학년 때 취업대책위원장을 맡아 동기생들의 취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본인은 러시아에 공부하러 떠나겠다고 했는데, 국내 대기업에 취업을 하였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졸업이 이제 이틀 앞으로 다가왔네요. 7월 8월 참으로 생각이 많은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현재 LG***의 태스크포스팀에서 법/제도를 담당하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그리고 너무나 우연히 일하게 되어서 교수님께 미처 인사드리지도 못하였습니다.
조금 더 경험을 쌓고 유학을 가도 늦지 않겠다는 판단도 있었지만, 더 늦기 전에 ***를 진실되게 해보고 싶어서 한국에 남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 배웠던 지식들이 입사면접에서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자산유동화, 부동산투자신탁,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대해서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던 부분들을 숙지하고 면접에 들어갔을 땐 언제나 임원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특히 건설회사 쪽에 지원했을 땐 서류전형의 성적이 중위권이었는데 면접에서 순위가 바뀌어 상위권이 되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어떻게 해서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조명을 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지만 차분하게 교수님의 수업방식하고 이제껏 받았던 수업내용을 말씀드리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대답했었습니다.
비록 건설회사 법무팀보다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일에 더 매력을 느껴 정중하게 거절하였지만 내심 교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강조하시고자 했던 부분들... 어리석게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수님 비록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정말 감사합니다. 소중한 배움의 순간순간들 그리고 교수님 사이트의 자료들 이젠 제가 정말 절실히 필요하여 스크랩하고 나름대로 다시금 공부하고 있습니다.
맡은 바 일이 연구원이라 학교에 자주 가서 틈틈이 공부하게 될 것 같습니다.
교수님 연구실로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많이 부족한 제자에게 교수님이 주신 가르침은 지금 업무를 대할 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너무나 감사하고 또 고맙습니다.
교수님 건강하세요.

졸업식을 앞두고
제자 이 동 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