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관광은 統一교육의 장

아래 'I'은 중앙일보 2001.6.6자 7면 '발언대'난에 게재된 기고문의 축약되지 않은 원문이고,
'II'는 금강산관광을 마친 후에 그와는 별도의 소감을 적은 것입니다. (필자 주)

I

금강산에 다녀왔다. 여행을 마치고 속초 항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치 타임 머신을 타고 몇십 년을 거슬러갔다 온 것만 같았다. 그것은 鄭飛石의 山情無限을 읽은 세대로서 금강산의 절경을 구경하는 것이 영탄조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금강산 일대에서 눈에 띄었던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60년대의 우리 사는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북한 땅에도 가뭄이 극심하여 아주머니가 양동이로 물을 나르고 있었으며, 자전거와 소달구지가 다니는 마을에는 시선을 끄는 간판도 없이 한결같은 시멘트 색깔의 집들뿐이었다.

이제는 어느 체제가 우월하냐는 논쟁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남과 북의 동포들이 어떻게 하면 서로 잘 어울려 지낼 것인가 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금강산 등산로에서 만난 환경감시원들의 태도도 예전하고 썩 달랐다. 1년 전만 해도 우리 관광객들이 무슨 위반행위를 하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를 하였다는데, 지금은 우리들에게 상냥하게 말도 걸고 사진도 찍어주고 그랬다. 일정한 선입견을 갖고 온 관광객들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지금도 여전히 관광객들이 탄 버스가 지나다니는 길에는 양켠에 철조망이 쳐져 있으며, 마을길과 교차하는 지점에서는 북한의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선두와 후미에 북한측 호위차량이 따라 붙어야 한다. 그러나 차창 너머로, 철조망 너머로 남과 북 양측의 동포들은 서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온정각 주변의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는 조금도 긴장상태를 느낄 수 없었다.

구세대의 관광지에서 청소년들의 수학여행지로

6·15 남북 정상회담 1주년을 맞은 지금 금강산 관광사업이 중단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트고 남과 북의 주민들이 제한된 공간에서나마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統一 교육의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 번 쓰고 버리는 비닐을 그들은 개천에서 빨아 재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통일의 시기나 비용부담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의 다음 세대도 의사표시를 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금강산 관광은 나이 든 세대나 실향민들만을 대상으로 할 게 아니라 대학생과 중·고생 등 청소년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청소년들을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보낸다고 할 때 문제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현재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는 현대아산 측에 요금 할인을 강요할 수도 없고, 학부형들에게 몇 십만원씩 부담을 지우는 것도 사실상 무리이다. 그러므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통일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할 책무가 있는 사회단체와 교육단체가 돈을 대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정부당국에서도 상당한 경비지원을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로 수학여행 오는 일본의 중·고생들이 3만엔 정도의 비용을 쓰는 것에 비추어, 여러 사람이 한 방을 쓰고 뷔페 식사를 도시락으로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비용절감을 하면 금강산 수학여행도 실현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리하여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연보호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갖고, 통일을 왜 서둘러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 통일에 따른 비용을 감당할 용의가 있는지 격의없이 토론을 벌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II

금강산(the Greatest Diamond on Earth: 북한측 광고탑의 문구)은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에게 觀光 이상의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것은 자연은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가, 사람답게 산다는 게 어떤 것인가, 그리고 북한 경제가 후퇴한 이유는 무엇인가에 관한 소박한 의문이었다.

환경보호의 중요성

구룡폭포 코스를 택하여 올라갔다 온 금강산 산행은 여러 모로 설악산의 飛仙臺 코스와 비교가 되었다. 기암괴석과 계곡, 폭포와 작은 못(潭)이 스케일의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영락없이 한 계통에 속한 白頭大幹의 모습이었다. 구룡폭포 부근의 上八潭으로 올라가는 급경사진 계단은 비선대 위의 금강굴 올라가는 계단과 꼭 닮아 있었다.

그러나 설악산 등산로에 즐비한 간이음식점이 금강산에서는 주차장 옆의 간이매점 하나로 끝이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것이 자연을 가장 많이 오염시킨다고 할 때 자연보호에 있어서 먹고 마시는 것의 뒤처리가 중요한 문제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금강산도 食後景"이라고 하였으니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에서처럼 환경감시원을 둘 수는 없으므로 우리 모두가 山行할 때에는 지정된 장소 외에서는 먹고 마시고 버리지 않도록 하는 것을 습관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계곡 물에 손을 담그는 것조차 금지하는 것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되었다. 비록 온정리 주민들이 금강산 계곡물을 식수원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깨끗한 물에는 갓끈을 빨고 그렇지 않은 물에서는 손발을 씻는다"고 하였으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경관도 북한 주민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니 미안한 마음 한편으로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情報化 시대의 인간다운 삶

금강산에 간 우리는 숙소를 선상호텔 [해금강]에 배정받았다. 바지선 위에 철구조물로 지어진 6층 짜리 호텔이므로 금강산 특유의 거센 돌풍이 불어도 흔들리지도 않고 선박 엔진이 돌아가는 소음이 없어서 좋았다. 객실에 들어간 필자는 습관처럼 객실 안의 TV 스위치를 켰다. 그러나 전원과 안테나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TV는 먹통이었다. 더욱이 북한과 관련된 기사가 실려 있는 신문이나 잡지는 휴대가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객실에 투숙한 필자는 1층 로비에 내려와 필리핀 가수들이 부르는 한국의 가요, 외국의 팝송을 듣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었다.

속초를 떠난 지 하루도 못되는 시간이었지만 신문과 방송, 인터넷 세상에서 단절되어 있는 현실은 일종의 '情報禁斷현상'을 일으켰다. 서울이나 워싱턴, 베이징에서는 큰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바람이 거세게 부는 금강산에 홀로 와 있다는 생각은 심한 고립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로비에서 맥주라도 시켜 마시지 않는다면 뭍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바지선 갑판을 거니는 게 고작이었으나, 간단없이 비치는 북한 군부대의 서치라이트는 낭만적인 상념을 쫓아버렸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어느 곳을 가든지 현지의 신문·방송, 전화,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만큼 금강산에서는 색다른 경험을 한 셈이 되었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의 인간적인 삶이란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는 스스로 수집하고 판단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모든 정보원으로부터 차단된 관광지에서 우리는 해방감은 커녕 심한 구속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自給自足 경제의 한계

북한 경제가 우리나라 1960년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것이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한을 앞서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대외개방을 배제한 경제운용에는 한계가 있고 축소재생산이 불가피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을 경제학에서 '빈곤의 함정'(Poverty Trap)이라는 가설로 설명하는데, 확대재생산에 필요한 자본, 노동, 기술의 공급이 부족할 때 발생한다. 이것은 비록 북한 정권이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김일성 부자의 '주체' 사상에 입각한 것이라 해도 주민들의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이는 용도폐기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이 이 지경이 된 것은 외환부족으로 대외무역거래와 해외차입이 거의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체제의 붕괴와 함께 舊소련의 투자금 회수, 수입원자재가격의 등귀, 종전 청산결제 시스템의 변경으로 인해 북한내 자본유입이 급감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자급자족의 경제(Autarkie)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으로 자급자족 경제가 유지될 수 있는 나라는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전략적인 자원이 생산되는 국가에 한한다. 그렇기에 우리와 같은 외환위기를 겪은 말레이시아는 고무와 주석, 석유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였기에 대외자본이동을 규제하고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경제현실은 같은 사회주의 체제이지만 중국이 80년대부터 鄧小平의 영도 아래 경제의 개방과 개혁을 추진하여 2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미국을 거의 따라잡을 수 있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가 된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대외지향적인 경제개발을 추진하여 이 만큼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매우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요즈음 일부 시민단체가 세계화(globalization)에 심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지만 오늘날 도저히 거스를 길 없는 세계적인 조류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