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의 서막이 될 북한의 화폐개혁

천문학의 빅뱅(Big Bang) 용어는 그 상징성 때문에 여기저기 차용(借用)되곤 한다. 우주의 탄생이 대폭발에서 비롯되었다는 원래의 의미가 국제금융계에서는 영국이 1986년 금융거래 수수료를 자유화하고 겸업을 허용함으로써 자본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을 몰고온 것을 설명할 때 비유로 쓰인다. 또 1990년대 초 폴란드를 비롯한 동구권 국가들이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할 때 가격폭등이 일어난 현상을 설명할 때에도 빅뱅이라고 일컫는다. 물론 우리나라의 모 댄스 그룹의 이름은 댄스와 가창의 폭발력을 빗대어 작명한 것이다.

북한이 돌연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11월 30일을 기해 구권 100원을 신권 1원으로 바꿔주고(redenomination) 가구당 10만원으로 한도를 설정하여 집에 쌓아놓은 돈은 일정 금액 이상 교환하지 못하게 하고 저금소에 강제 예치시킨다고 한다.
북한의 이러한 조치는 1962년 6월 박정희 군사정권의 화폐개혁을 연상케 한다. 당시 군사정부는 경제개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장롱 속에 들어 있는 현금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100환을 10원으로 바꾸는 화폐단위변경과 액면절하를 동시에 실시하면서 기존 화폐는 은행에 의무적으로 예치시키고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 돈은 장기산업자금으로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부정한 돈을 집에 쌓아두었던 공직자와 현금을 집에 두기 좋아하는 화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화폐개혁의 이유와 필요성

일반적으로 화폐개혁은 계속된 인플레로 화폐단위가 너무 커져서 돈을 지불하고 계산하는 것이나 돈다발을 들고 다니기가 힘들고 사람들도 거액의 숫자를 인식하기 버거울 때 시행한다. 그리고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상당 기간 신권과 구권을 같이 쓰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수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화폐의 액면을 절하하고자 하는 화폐개혁안이 논의되다가 말았는데, 선진국들의 화폐단위에 비해 액면이 너무 큰 것도 사실이다.

금번 북한의 화폐개혁은 인플레로 인한 화폐가치의 거품을 줄이려는 것보다 정치적인 의도가 더 커 보인다. 공금횡령이나 뇌물수수 등으로 축재한 당 간부, 관료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또한 시장경제활동을 통해 상당한 부를 형성한 신흥 자산가 계층을 억제하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이들은 교환하고 남은 돈을 저금소에 예치하는 것은 그 돈을 뺏기는 것일뿐더러 그 동안의 재산형성을 고백해야 하는 위험이 있으므로 막대한 자금이 사장되고 말 것이다.

North Korean currency 그렇기에 구시대 세력을 약화시키는 이번 화폐개혁은 김정일 부자의 정권세습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 경제에서 별로 쓰임새도 없는 5천원짜리 고액권에 김일성의 초상이 들어있는 것도 그 반증이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화폐개혁의 성공 여부를 논하기보다 그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북한의 화폐가 경제활동의 매개체가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말아 앞으로 북한 경제는 상당기간 퇴행을 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장마당도 위축되고 물자난은 가중될 것이다. 아무리 계획경제체제라 하여도 돈이 원활히 돌지 않는다면 경제의 여기저기 막히고 터지는 곳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7.1 조치 이후 인플레가 발생한 것은 가격이 현실화된 데다 식량과 공산품 같은 물자 부족에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공장을 돌려서 물자 공급을 확대하여야 함에도 공급은 늘리지 않고 화폐의 양만 줄여서 물가를 잡겠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민심의 이반이다.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곳곳에서 북한 민초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 동안 힘들게 마련한 돈이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면 누구나 참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어렵사리 장마당에서 습득한 자본주의의 경험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만일 북한 주민들에게 "구화폐를 한국 돈이나 미 달러화로 바꿔주겠다"고 하면 탈북자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누군가 인터넷 게시판에서 말했는데, 동독이 헝가리 국경이 개방됨으로써 무너졌던 것처럼 북한의 체제가 흔들릴 위험마저 있다.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

과연 북한에 빅뱅이 벌어질 것인가. 동구 체제전환국들에서 벌어졌던 '가격의 폭등' 현상이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북한 각처에서 신종 플루(H1A1)가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한 정부는 인도적 견지에서 타미 플루 50만 명 분을 아무 조건 없이 제공하기로 했다. 생필품을 비롯한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역병이 돌아 민심이 흉흉해지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남한 정부가 보내온 약품이 북한인민을 구제해줄 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우리는 무슨 사태가 일어날지 대비해야 할까.

일단 북한 당국은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크게 완화된 화폐개혁의 후속조치를 취할 공산이 크다. 그 결과 북한 사회에는 빈부격차가 더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돈 때문에 고향을 등지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둘째, 북한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북한 당국은 중국과 남한, 미국의 경제적 지원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순조로운 남북 경제협력의 제안이 아니라 북한이 잘 하는 '벼랑끝 전술'(brinkmanship)로 나올 것이 뻔하므로 남북관계나 북미관계는 종전보다 더 우여곡절을 거치게 될지도 모른다. 각종 구실을 붙여 남북경협의 대가를 더 많이 요구해올 가능성이 많다.

끝으로 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북한 경제와 사회의 말 그대로의 '빅뱅'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북한내 정변 뿐만 아니라 대량 유민의 발생 등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고 남한 경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묘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래저래 북한의 화폐개혁은 '빅뱅'의 서막이 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