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따른 북한 인구이동 대책: 한국형 바우처의 제안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중에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비었는다/ 저렇고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라는 것이 있다. 바로 ‘대나무’(竹)를 노래한 시조이다.
바우처(voucher)가 바로 그러하다. 유가증권도 아닌 것이 영수증도 아닌 것이 여러 모로 요긴하게 쓰인다.
예컨대 정부가 사회복지사업을 실시하거나 특정 사업을 진흥시키고자 할 때 다음과 같이 지원대상 개인/기업으로 하여금 필요한 서비스를 아웃소싱하게 함으로써 지원효과를 확대할 수 있다.
A라는 지원대상자가 정부로부터 100만원짜리 바우처를 30만원에 할인받아 구입한다. A사는 이 바우처를 가지고 B라는 사업자로부터 100만 원 상당의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A사가 B사에 바우처로 결제하면 B사는 정부로부터 100만원을 지급받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정부는 A사에 따로 7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 결과가 되고, B사로부터는 100만원 어치의 물자를 조달한 셈이 된다. 정부가 100만원의 정책 자금을 집행하면서 A사에 70만원 보조금 지급, B사에 100만원의 정부조달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A사는 반드시 B로부터 서비스를 구매해야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B사는 정책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정부시책의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 경우 바우처는 정부로부터 해당 금액을 직접 지원받은 게 아니므로 영수증도 아니고, 일정한 가치를 표창하는 것이 아니므로 유가증권도 아니다. 바우처는 지급을 약속한 정부에 대하여 소정 금액을 청구할 수 있을 뿐 제3자에게는 유통시킬 수 없다.

북한 주민의 대량 이탈을 막는 길

지난 10월 6일 독일통일 20년을 회고하는 국제학술회의가 북한법연구회, 독일 한스제이델 재단, 국민대 법학연구소 공동주최로 서울에서 열렸다.
독일이 통일된 지 20년 동안 실시된 법제통합, 인구이동, 통일비용의 경험을 듣고 우리가 배울 점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열린 만큼 ‘백가쟁명’식 묘안이 속출했다. 통일이 되더라도 1.4 후퇴 때와 같은 집단 인구이동을 억제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독일이나 한국의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 통일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독일이 동독주민의 동요와 집단 유이민 발생을 막기 위해 그러했던 것처럼, 화폐를 1대 1로 교환해 주거나 사회복지비용을 온전히 지불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주목을 끈 것은 북한을 특별행정조직으로 설정하고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비록 헌법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고 통일된 북한의 주민들도 이러한 기본권을 향유할 수는 있지만 장차 완전한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질 때까지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논거였다.
통일국가의 달성이라는 특수한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남북한 주민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하는 것은 헌법의 규범조화적 해석에 의하여 허용될 수 있다(헌법 제37조 2항)고 했다. 그러나 통일이 목전에 닥친 급변사태에 목숨을 건 사람들의 이주를 강제력으로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가급적 자기의 고향에 눌러 살도록 유도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바우처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사실 러시아, 체코 등 체제전환국들이 사유화를 단행함에 있어 바우처를 사용한 전례가 있다.
국유 기업을 사유화함에 있어 원매자에게 매각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지만 이들 나라는 국민여론, 경험 있는 경영인의 부족, 국부유출의 방지 등을 이유로 주민들에게 바우처를 분배하는 방식(mass privatization)을 택하였다.

통일에 즈음하여 바우처를 어떻게 시행한다는 것인가?

바우처란 본인만이 권리행사 가능하고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일신전속적 권리를 표창한다. 고향을 떠나지 않는, 북한 기준으로 사회경제적 활동이 가능한 연령 이상의 남녀 주민들에게 고향에 있는 기업, 공장, 협동농장에 대한 일정한 몫(지분권)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고향 땅을 떠나거나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없으므로, 고향을 지키는 사람만이 고향 땅의 기업이나 농장을 사유화할 때 소정 지분을 인정받을 수 있다. 군 단위의 지역 내 기업, 공장, 협동농장에 대한 일정한 신분권 내지 지분권을 표창하는 증권으로서 당해 기업, 농장을 사유화할 때 바우처를 통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만일 그 지역에 외부 자본이 기업을 설립한다면 바우처를 소지한 북한 주민을 고용할 경우 정부가 바우처에 비례하여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약속함으로써 북한 지역 내 기업창설 및 기업이전을 촉진할 수 있다. 당장 생업자금이 필요한 사람은 고향 땅에 정착하는 것을 조건으로 금융기관 에 바우처를 담보로 제공하고 소액의 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한다.
나중에 현지 기업의경영이 본궤도에 오르고 통일 후 경제가 안 정되면 바우처를 주권으로 교환해 준다. 북한 주민들을 더 이상 고향 땅에 붙잡아 둘 이유가 사라지면 이를 증권거래소나 장외에서 매각하는 방식으로 현금화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우처의 문제점에 대한 고려

바우처 방식이 결코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우선 개개인의 자유를 바우처라는 표딱지(coupon)로 산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국가가 일방적으로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보다는 개개인에게 금전적 보상을 전제로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바우처를 포기하면 고향을 떠나도 되므로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역에 따라 바우처의 가치가 다르고, 바우처의 금액이 커야 고향을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므로 그에 비례하여 국가의 재정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이점은 국가가 지역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바우처의 가치를 조정함으로써 이러한 부작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함경도에는 사유화할 만한 공장도 없고 고향땅에 남으려는 사람이 적다면 그 지역의 바우처 가치를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게 쳐주면 된다. 그 만큼 바우처 담보로 빌릴 수 있는 자금도 많아지고, 바우처를 소지한 주민을 많이 고용함으로써 정부 지원금을 많이 타낼 수 있으므로 이 지역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바우처가 일종의 쿠폰처럼 발행된다면 위.변조가 행해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일정 자격요건을 갖춘 북한 주민에 한하여 발급받게 되므로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스마트 카드'처럼 사용하게 한다면 자동으로 신분확인, 위치추적까지 가능하므로 다른 사람이 위조해서 쓰거나 그 사람이 고향 땅에 남아 있는지 정기적으로 검사하는 것도 생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북한의 급변사태로 집단 유이민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손을 쓸 수 없다는 난점이 있기는 하다. 이 경우에도 국경 부근의 난민수용소에서 바우처를 받는 조건으로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고 북한의 공민증 같은 현행 주민등록 시스템을 이용한다면 시행에 필요한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본다.
바우처의 장점이 훨씬 많아 이를 도입하기로 할 경우에는 미리 광고(PR)를 하여 북한 주민들이 고향 땅을 떠나려는 생각을 아예 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고산 윤선도의 말이 정확히 들어맞게 된다. 별거 아닌 표 딱지 같으면서도 북한 주민들이 고향 땅을 지키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사시사철 푸르다는 것은 그처럼 고향 땅을 언제나 푸르게 지키는 존재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남북물류포럼 칼럼(제98호), 2010.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