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的資金의 투입과 責任의 소재

요즘 公的資金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다. 그 내용도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투입된 규모가 얼마인가에서부터 공적 자금의 추가조성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면 그 답은 간단히 나온다. 원래 공적 자금은 IMF 사태로 위기에 처한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고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가 조성한 것이었다. 1998년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일부 BIS 비율이 미달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예금인출(bank run) 사태와 은행도산, 기업의 연쇄부도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로 인한 경제적 혼란을 막기 위해 정부는 5개 은행을 폐쇄하고 그 자산·부채를 P&A 방식으로 다른 은행에 이전시켰다. 다시 말해서 인수은행이 폐쇄된 은행의 예금채무를 인수(assumption)하는 대신 그 범위 내에서 우량자산을 매입(purchase)하고 나머지 부실자산은 성업공사(現 자산관리공사)가 인수하도록 했다.

이것은 미국이 1989년 저축기관(S&L)들이 대거 부실화되었을 때 취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당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기금은 거의 바닥이 나 있었으므로 미 정부는 [금융기관 개혁·구제·집행법(FIRREA)]을 만들고 정리신탁공사(RTC)를 통하여 재정자금을 투입, 큰 혼란없이 사태를 수습하였던 것이다.

공적 자금 투입의 목적

미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공적 자금 투입의 1차 목적은 예금인출 사태와 금융기관의 도산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밖의 사정으로 부실화된 금융기관은 시장원리에 따라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공적 자금은 아무 기관에나 투입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주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를 통하여 집행된다. 두 기관은 공적 자금을 투입하면서 그 대가로 당해 금융기관의 주식이나 부실자산을 인수하는 만큼 이를 새로운 공적 자금의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자산관리공사는 금융기관들로부터 인수한 부실자산의 유동화(ABS)를 서두르고, 예금보험공사는 보유 금융기관의 주식을 토대로 교환사채(EB)의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리사이클링을 통해 조성된 자금이 앞으로의 금융구조조정에 충분치 못하다면 두 기관의 출자자(출연자)인 정부가 추가 조성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국회의 동의는 법률상으로 정부가 자금조성과 관련하여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에 한하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당해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경영으로 국민의 血稅와 같은 공적 자금이 사용되었으니 어떠한 형태로든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에는 금융기관의 부실을 키운 정부와 감독당국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 역시 미국의 RTC가 부실화된 S&L을 처리하면서 FIRREA법에 의하여 담당 임원들에게 민·형사 책임을 물었던 전례를 따른 것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부실 S&L의 임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였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때 금융업계에서는 이들을 "3-3-6 클럽" 회원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3시면 '골프장으로 퇴근'하고 '3%짜리 예금을 6%짜리 모기지 론으로 운용'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땅 짚고 헤엄치기 식 S&L의 경영을 망쳤으니 뭔가 부정과 비리가 개재되어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 사정은 그와 다르다. 현재 문제되고 있는 금융기관의 부실은 원인이 다른 데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IMF 위기가 진정되고 은행마다 추진하였던 '클린 뱅크' 운동이 성과를 거둘 즈음 대우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다. 대우 그룹의 부실은 천문학적인 규모에 이르고 있다. 외국의 은행들도 한국의 재벌그룹인 대우 여신에 따른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금융권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워크아웃도 총선에 즈음하여 금융기관들이 더 많은 손실을 부담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부실 금융기관 임원의 책임

따라서 금융기관에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나, 금융기관의 임직원에 대해 민·형사 책임을 묻는 것은 분명한 기준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어느 은행에 부실자산이 늘어나 자본비율이 위태롭게 되었다면 은행 자체적으로 대손충당금을 쌓거나 대손상각 처리하고 부실채권의 자체 매각, 후순위채 발행, 경비절감, 점포와 인력의 축소, 수익 증대 등 철저한 자구노력이 선행된 다음 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 인수, 예금보험공사의 자금지원이 따라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공적 자금지원은 금융기관의 모럴 해저드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예금인출 사태 등 시장의 불안을 가시게 할 정도의 최소한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나서 정부가 관련 금융기관의 임직원에 대하여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으니 책임을 져라"가 아니라 "자금관리 및 여신결정을 잘못했으니 책임을 지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예금보험공사가 출자 기타 자금지원을 한 금융기관에 대하여 주주 또는 채권자로서 임직원에 대한 책임을 묻더라도 그것은 불법행위의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주주가 이사의 책임을 묻는 대표소송을 제기한 경우 법원은 '經營判斷의 법칙'(business judgment rule)이라 하여 이사의 免責을 인정하고 사법판단을 자제하여 왔다. 회사경영의 복잡한 사정을 모르는 법관이 사후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사가 권한 내의 사항에 관하여 합리적인 근거에 입각하여 성실하게 회사에 이익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결정하였다면 그 결과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을지라도 이사에게 그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사가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善意로써 사기나 위법행위, 권한의 일탈·남용, 회사자산의 낭비없이 업무를 처리했을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당해 금융기관의 임원에게 횡령·배임이나 법령위반 행위가 없었다면 그를 감옥에 보내고 평생 모은 재산을 빼앗다시피 하는 것은 인간의 오류가능성을 몰각한 너무 심한 처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