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금융과 자산유동화의 접목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자산유동화(ABS)야 말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것은 자산유동화가 자산가치보다는 현금흐름(cash flow)을 중시하고, 자기자본 내지 타인자본을 조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차대조표 '자산의 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LHS funding) 새로운 금융기법이기 때문이다.

자산유동화는 그 원조격인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지만 자본시장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 월가를 주름잡은 살로몬 브라더즈사의 트레이딩룸에서 일했던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 소설 "거짓말쟁이 포커 게임"(Liar's Poker, Norton, 1989, p.89)을 보면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1978년 봄 살로몬 브라더즈사의 수뇌부가 모기지담보부 채권(MBS) 전담부서를 새로 만들고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은 3쪽 짜리 사업계획서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자금수급 불균형의 해소

1960-70년대에 걸쳐 미국에서는 기후가 온화하고 살기 좋은 선벨트 지역으로 인구가 대거 이동하였다. 자연히 북동부와 중서부 지역에서는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는데 금융기관들로서는 새로운 대출수요가 일지 않아 큰 문제였다. 특히 지역주민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그들을 상대로 주택자금(mortgage loan)을 빌려주는 저축기관(thrifts, S&Ls)들은 영업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반대로 선벨트 지역에서는 새로운 주택자금 대출수요가 급증하는 대신 예금수입의 증가는 미미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전국적인 주택자금 수급의 불균형에 착안한 살로먼 브라더즈는 선벨트 지역의 S&L들로부터 모기지 대출채권(mortgage loan)을 거두어(pooling) 이를 증권화하고 인구 감소지역의 S&L에 판매시키는 판촉활동을 벌였다. 주택담보 대출을 하는 것보다 모기지담보부 채권(MBS)에 투자하는 것이 보다 수익성 있는 주택금융이라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MBS는 그 자체가 담보를 안고 있지만 정부기관인 GNMA(정부저당금융공사) 등이 보증을 하기 때문에 신용도는 최고 수준이었다. 살로먼 브라더즈사는 1980년대 후반 마이클 밀켄의 고수익 상품인 정크 본드에 시장을 잠식당할 때까지 MBS의 마켓 메이커로서 미국 자본시장에서 확고부동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프로젝트 금융과 자산유동화의 類似性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정상적인 은행차입 또는 회사채 발행이 곤란한 기업들이 ABS 기법을 통하여 Primary CBO 등으로 자금조달에 성공하자 전통적인 자금조달 방식에 있어서도 자산유동화를 시도하는 노력이 활기를 띠고 있다. 그중 한 가지 사례가 프로젝트 금융에 ABS 기법을 접목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을 위한 프로젝트 금융에 있어서 채권발행실적은 미미하였고 그것도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SEC Rule 144A에 의한 사모발행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프로젝트 금융은 자산유동화 기법과 여러 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둘다 모두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금융기법이며, 특수목적기구(SPV)를 두고 실제로 자금을 사용하는 주체가 非遡求금융(non-recourse financing)을 이용하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천안-논산을 연결하는 고속도로(CNE) 건설 프로젝트의 경우 총 소요자금 1조6천5백억원 중 7천3백억원을 프로젝트 금융 방식으로 조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이 BIS 비율을 의식하고 자금이 장기간 고정되는 것을 기피하였기 때문에 금리를 올려준다 해도 신디케이션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에 따라 CNE 프로젝트의 금융주선을 담당한 한국산업은행측은 ABS 등 새로운 자금조달 방안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CNE 프로젝트는 천안-공주-논산을 연결하는 왕복 4차선 81km의 유료 고속도로로서 현재의 경부-호남 고속도로 코스에 비해 거리상으로는 30km, 시간상으로는 20∼25분을 단축할 수 있는 지름길을 제공한다. 1999년 미국 유수의 교통컨설팅 기관인 URS 그라이너 우드워드 클라이드에 교통량 평가를 의뢰하고 한국기업평가(KMCC)와 Fitch IBCA로부터 동 사업의 수익성에 대한 신용평가를 받았는데 사업성이 양호하여 어떠한 악조건의 시나리오에 있어서도 비교적 안정된 통행료 수입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상력을 발휘한 금융기법

다행히도 작년 말부터 은행의 대출채권을 기초로 하는 CLO 발행이 개시되었고, 또한 감독당국에서는 신용카드사의 카드론, 기업의 매출채권 등 장래채권을 유동화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2001년 2월 산업은행측은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주)에 단독으로 7천3백억원의 대출을 한 후 산은의 대출채권, 즉 산업은행이 수취할 원금과 이자를 유동화하는 방식으로 만기 5년에서 15년까지 6종류의 채권을 발행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번 SOC-ABS 파이낸싱 구조는 먼저 산업은행이 대출계약에 따라 천안-논산간 고속도로(주)에 대출을 하고, 이와 동시에 대출채권과 그에 따른 담보권을 평가기관이 평가한 적정가치로 SPC에 양도하였다. 그리고 SPC는 산업은행으로부터 매입한 대출채권에서 나오는 현금흐름을 기초로 유동화증권을 발행하였던 것이다.

CNE 유동화증권은 유료 고속도로 사업의 수지전망에 따라 5년∼8년채가 6∼7% 대, 10년 만기채 1,700억원과 15년 만기채 4천억원은 7∼8% 대에서 발행되어 가중평균비용(all-in cost)이 8.59%에 불과하였다. 특히 국내 유례가 없는 10년, 15년의 장기채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에 의해 인기리에 인수되었다.

그리하여 CNE 프로젝트 파이낸스는 장기간 거액이 소요되는 SOC 민자사업에 ABS 기법이 적용된 매우 특이한 거래였음에도 LG건설 등 11개 시공사(sponsor)는 프로젝트 회사를 통해 파격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적기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으며, 투자자들도 신용등급이 양호하고 수익률도 좋은 장기채를 다양하게 확보할 수 있었고, 금융주선기관으로서도 적기에 아주 신속하게 거래를 종결할 수 있었던 점에서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윈-윈 게임'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자산유동화증권은 2000년 중 50조원 가까이 발행되었는데 전년비 7배 이상 증가한 규모이고 그 중 85% 이상이 공모로 발행되었다. 이는 회사채 전체 공모발행 58조6천6백억원의 70%를 차지하는 것으로 ABS가 아니었으면 자본시장에서의 기업의 자금조달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러한 양적인 증가는 CBO의 발행, 단기채권·장래채권의 유동화가 가능하도록 제도개선을 도모한 금융당국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현금흐름을 새로운 자금조달방식으로 발전시킨 시장참가자들의 상상력과 응용력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금융기법은 그 활용도가 실로 무한하다(The sky is the limit)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