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能柔制剛'의 방식으로 북한을 대하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 체류일정을 여러 차례 연장하면서까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끝에 비록 민간 차원이기는 하지만 남북교류협력의 문이 다시 열렸다.
아직 북핵 문제는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으나 작년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되었던 것은 부분적으로나마 해소될 전망이다.
북한당국이 8월 21일을 기해 남북 육로 통행제한을 전격 해제한 것도 매우 고무적인 시그널로 여겨진다.

현대아산직원의 억류, 토지사용료의 소급납부, 임금 대폭인상 요구 등으로 긴장관계에 놓여 있던 개성공단에도 정상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북측에도 매우 유익하고 필요하다. 북한으로서는 절대 긴요한 외화의 중요한 수입원인 동시에 개성공단의 경우 북한 근로자들이 고용되어 생계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직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는 처음 시작할 때의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북측이 공공연히 핵과 미사일을 휘두르는 터에 남측이 강경일변도로 맞대응하는 것은 자칫 파국을 부르기 쉽다.
"부드러움으로 강한 것을 이긴다"(能柔制剛)는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것은 자칫 북한에 굴복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으나, 영어 숙어(succumb to concur)에도 있듯이, 얻는 것이 더 많으므로 가급적 정치와 군사논리는 배제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경분리 원칙이 철저히 준수되어야 한다.
그 동안 남북경협은 경제적 측면보다는 남북간의 정치군사적 상황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축소 내지 중단될 가능성이 많았다.
그러므로 금강산 입산료, 북측 근로자 임금 등의 이슈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논의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더욱이 군사적으로 매우 민감한 지역에 위치한 개성공단은 군부에서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는 만큼 군사적 긴장상태가 고조되면 북한 군부의 압력으로 언제든지 폐쇄될 수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북한 군부를 쓸 데 없이 자극하지 말고 군부의 주장을 압도할 수 있는, 같은 동포로서의 절실한 논리를 찾아내 북한의 지도자를 설득할 필요가 있다.

남북교류의 불씨는 살려야

당국간의 대화가 중단되더라도 민간 차원에서의 경제협력 및 사회 문화 교류 확대를 통해 어떠한 경우에도 최소한의 남북관계의 추진동력(momentum)은 살려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북한은 고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2012년까지 경제강국까지를 이루어 강성대국(强盛大國)에 진입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으므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
이것만이 거의 붕괴되다시피 한 북한의 경협창구 인맥을 되살리고 남북이 상생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우선 북한의 영 유아에 대한 의약품 및 식품 공급, 식량과 비료의 지원 등 인도적 견지의 대북 지원은 민간 채널을 통해서라도 아무 조건 없이 중단 없이 지속하여야 한다.
개성공단에서 남측 기업이 성공하였다는 좋은 선례를 만들어 다른 지역에도 전파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남한당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의 제스처를 보이면서 남측 기업들이 북한의 경제특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한 정상가동이 어렵다는 점을 북한측에 수시로 일깨워줘야 한다.
북한당국은 남측 기업들이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개별적으로 수지타산을 하여 손해가 나면 북한 사업을 접게 될 터이므로 이들이 북한에서 사업을 할 때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다는 점을 확신시켜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사정은 외국 기업일수록 더욱 철저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북한과의 협상주체가 정부기관(통일부, 토지공사 등)이든 기업(현대아산 등)이든 포용력을 가지고 북한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이념과 체제관련 언급을 자제해야 한다.
금강산 문제도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보다 절실한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한다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번 추석 때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전망이지만, 금강산 온정지구에 새로 마련된 이산가족 상봉장소를 이용하여 남북 주민의 유대가 공고하게 굳혀지길 기원한다.
이제 남북 이산가족은 조만간 세상을 뜰 수밖에 없는 80∼90세가 넘은 고령이기 때문이다. 이산 1세대가 죽고 나면 2세대의 상봉은 '재산상속의 싸움터'로 그 의미가 변질될 공산이 크다.

요컨대 가능한 한 민간교류를 확대하면서 북한 주민을 진정으로 위하며 실질적으로 돕겠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긴요하다.
남과 북이 협력적으로 갈등을 해결하고 상호이익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남한은 물론 북한으로서도 크게 바라는 바일 것이다.
북한의 '철의 장막'도 대화와 교류를 통해서 틈이 생기고 점차 그 문이 열릴 것이라는 것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러시아도, 동구제국도, 중국도 그렇게 개방이 되었으니 북한의 경우에도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