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 頂上會談 이후

지구상 마지막 분단지역인 한반도에 解氷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세세한 동정이 TV를 통해 전해지면서 봄바람 정도가 아니라 뜨거운 熱風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 같은 상황변화는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기에 8·15 해방과 6·25 동란을 겪고 오랜 세월 反共 이데올로기에 젖어 있던 일반시민들은 사상적 혼란(anomie)마저 일으키는 것 같다.

실정법상으로는 북한이 여전히 국가보안법상의 '反國家團體'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면 대통령 이하 정부 요인들이 반국가단체의 수괴로 지칭되어 온 자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우의를 다지는 모습이 과연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는"(동법 7조1항) 것은 아닌지 대통령의 평양 방문 내내 혼란스러웠다.

南北관계의 일대 진전

그럼에도 지난 55년간의 조국 분단 역사에 비추어 볼 때 남북의 정상이 만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있다. 6월 15일 밤 두 정상이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남-북 '연합'제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등 통일방안의 절충, ▷이산가족 방문, ▷남북경협 및 다방면 교류, ▷당국간 대화 등 5개항의 남북 공동선언문에 서명하였을 때 새로운 역사가 씌어진 것이다. 물론 남북 양측은 합의사항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972년의 7·4 남북성명이나 1991년의 남북 기본합의서의 再版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차치하고 경제와 법률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만큼은 과거의 남북 합의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30년 전 남과 북이 팽팽하게 대치하던 상황에서 우리는 守勢였고 방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우리는 이념적으로 정신자세를 굳건히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도 북측에 밀리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남북 문제는 집권자의 전유물일뿐 일반시민들에게는 반공법, 국가보안법의 테두리 안에서 터부시되었다. 그러다가 우리 사회가 민주화의 진전을 크게 이루고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90년대 초에야 우리는 다소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 때 20년의 격차를 두고 다시 만난 북측은 자신감에 차 있는 남측을 대하고 피해의식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북한이 경제적으로 남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념적으로도 공산주의의 맹주인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 공산국가들은 모두 시장경제 체제로 탈바꿈하였으며, 중국은 더욱 요란하게 자본주의의 물결을 타고 있다. 또한 1년 전 연평도 앞 西海교전에서 목격하였듯이 북한은 군사적으로도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 년 전부터 식량난, 에너지난에 처해 있는 북한은 우리의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만큼 이데올로기적인 자존심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和解의 제스처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법 적용에 있어서도 다소의 융통성이 요청된다. 이를테면 사자가 아무리 무섭더라도 그것이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野生 상태일 때와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을 때, 박제된 표본일 때 위험도가 각기 다른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공산주의가 체제위협적이기는 하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가 공산주의에 빠져들 염려가 없다면 국민들을 공산주의 표현물로부터 격리하거나 애써 배척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것은 '자유민주체제의 自信感(self-confidence)'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새삼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情을 알고 한 것"을 요건으로 하는 바, 설령 '김정일 팬 클럽'을 만들고 "김정일은 멋있는 사람이다"라 하더라도 전후 사정에 비추어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없다면 아예 찬양·고무죄의 구성요건 해당성이 없다고 할 것이다.

법과 경제면의 과제

6·15 공동성명 이후 통일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국가보안법의 개정 내지 폐지 논의가 대두되고 있다. 국민 여론을 수렴하여 최종적으로 국회에서 可否 결론을 내리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북한 공산주의를 어느 정도 위험한 수준 - 야생 상태, 동물원 우리, 박제된 표본 - 으로 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이에 대한 판단은 수사기관과 법원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었기 때문에 법의 해석·적용이 엄격하였고, 특히 반국가단체 구성죄(국가보안법 3조)에 있어서는 법원의 입장이 워낙 확고해 융통성이 허용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남북 공동성명이 나온 그 다음날 민혁당 결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하영옥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반국가단체 구성죄의 유죄를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앞으로 사법심사가 아닌 입법 단계에서 해결해야 할 성질의 것이라 하겠다.

이제 현격한 경제발전의 격차를 보이고 있는 남과 북이 노력해야 할 일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남과 북이 조속한 시일에 정치와 사상, 문화면에서 통일 단계에 이를 수 있으려면 그 하부구조인 경제가 통합을 가로막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물론 남-북 경제협력은 바람직하지만, 우리 경제의 대외개방·국제화가 실현된 터에 어디까지 민족경제로 보아야 할지, 또 남과 북의 경제력이 10대 1로 벌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지 과제가 산적해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베트남, 예멘, 독일 등 다른 분단국가들이 통합된 과정을 눈여겨보면서 한반도에서는 시행착오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남과 북이 협력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경제문제가 해결되려면 법과 제도상으로 개혁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게 시장경제, 복지제도 등의 공통분모를 늘려가면서 상호간에 신뢰를 쌓는 끊임없는 제도정비가 행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