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 시장, 기술 - 三角의 조화

지난 5월 초 2주간에 걸친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파업으로 수출의존도가 큰 우리나라가 물류대란에 빠졌다. 세계 각국으로 가는 컨테이너의 환적(換積)으로 부산하던 부산항의 기능이 보름씩이나 마비되었고 정상화에도 한 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 결과 취급 물동량에 있어 중국 상하이항과 경쟁을 벌여온 부산항은 이제 확실하게 추월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참여정부가 내건 "동북아 물류 중심국가(Hub)"라는 정책목표가 시작부터 무색해질 참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국가경제에 있어서 물류의 중요성, 부산항의 비중, 컨테이너 트레일러의 역할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소속 트럭 운전자들의 요구를 1년 이상 방치하고 늑장 대응한 정부 관계부처에도 비난이 쏟아졌다.

화물연대의 파업이 일방적인 정부당국의 양보로 타결되자 언론은 일제히 "이렇게 들어줄 거라면 왜 파업을 끌었느냐"며 정부를 성토했다. 세계경영을 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경영전략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물류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원자재·부품의 재고를 최소화하는 JIT(just in time)이나, 물류를 외부업체에 맡기는 아웃소싱 등 새로운 경영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운임 인상, 유류비 인하 등을 쟁취한 화물연대의 승리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도 의문시된다.

물류대란에 따른 반성론

이번 사태를 겪고 나서 각계에서 반성론이 잇따르고 있다. 물류관련 정부부처 기능을 조정하고 복잡다기한 물류 관련법령을 정비하여 [(가칭)물류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도 면의 개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법·제도 이상으로 시장의 역할, 기술의 발달이 괄목할 정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수요-공급의 불균형으로 분쟁이 발생하였는데 순조로운 해결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정부가 공권력을 가지고 이에 개입한다면 시장의 왜곡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관련업계에서 행동강령이나 자율규제(self-regulation)를 통해 스스로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므로 시장이 문제해결에 실패하였을 때에나 법이 나서야 할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첨단 정보기술(IT)은 불가능해 보이던 일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다음의 사례를 경청해보자.

미국에서 경량 철강재(주름잡이 빔) 시장의 60%를 점하고 있는 패코 스틸의 백영중 CEO는 업종의 성격상 정확한 적시(適時) 배송이 생명이므로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물류에 신경을 썼다.
자체 화물 트럭을 보유할 처지가 못되었으므로 그는 자주 트럭 기사들과 만나 점심을 먹고 잡담도 하면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다. 현장에 충실했기 때문에 좀더 효율적인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레이건-부시 정권 하에서 트럭 노동조합의 힘이 크게 약화되었고 1990년대 접어들면서 대형 운송회사 소속이 아닌 개인 트럭이 많이 생겼다. 화주의 입장에서 이들과 개별적으로 교섭해 비용을 낮추곤 하였는데 정보기술(TRS)의 발달로 전국 어느 방면이든지 빈차로 가는 트럭 운전자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백영중 CEO는 오랜 경험을 통해 한 달에 동원하는 1,500여대의 트럭이 단 한 대도 실수가 없도록 관리하는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백영중 지음,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 중앙M&B, 1999, 201-202쪽.

3각관계 운용의 묘

위의 사례를 보면 정부가 강력한 법과 공권력을 배경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각종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화주들이 첨단 정보기술(인터넷, TRS 등)을 이용하여 개별 트럭 운전자들과 교섭하도록 금융·세제상의 혜택을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물류대란에서는 중간 마진을 가로챈 다단계 알선업자들이 혹독한 비난을 받았는데 그들을 욕할 게 아니라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국내 IT기술을 가지고 그 기능을 수행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법제와 시장, 기술은 상호의존적이므로 어느 한 가지에만 치중하지 말고 상호보완을 도모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법과 제도는 정책의 목표를 분명히 설정하고 기술의 발달을 촉진하되 허용되는 기준을 정해줄 필요가 있다. 또한 최소한의 기술표준은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 시장은 가격 기능을 통해 수급을 조절하되 사업자단체들이 나서서 자율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관계는 매우 복잡하여 어긋나기 쉬우므로 언론과 시민들이 예의 감시하고 잘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러한 3각 관계가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비단 물류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핫 이슈가 되고 있는 기업회계의 투명성, 소비자/투자자보호, 전자상거래 육성, 개인정보보호도 이에 해당된다. 다방면에서 지혜로운 3각관계 운영의 묘가 절실히 요청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