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논리의 함정

다음 사건들은 지난 몇 달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발생하여 언론에 크고 작게 보도된 바 있다. 일부는 담당부처의 해명으로 일단락되었고, 일부는 재계의 반발과 법정소송으로 비화되었지만, 향후 큰 파장을 몰고 올지도 모를 주목할만한 사건들이라 생각된다.

#1 회사정리에 들어간 영창악기

공정거래위원회는 9월 초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인수가 사실상 독점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삼익 계열사가 취득한 영창악기 지분 48.58% 전량을 1년 안에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공정위는 삼익이 영창을 인수하면 국내 업라이트 피아노 시장의 점유율이 92%에 달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공정위는 "양사가 분리되더라도 수출비중이 높기 때문에 경쟁체제로 돌아갈 여지가 충분하다"고 설명했으나, 영창악기는 공정위 결정 10여일만에 최종부도를 내고 회사정리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삼익이 손을 떼기로 하자 그의 도움을 받아가며 갱생의 길을 걷던 영창악기는 사실상 파산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2 산산조각난 터키인의 한국 사랑

서울대에 유학 중이던 터키 여성이 출입국관리소의 비자연장 거절 통보를 받고 11월 초 한국을 떠났다. 할아버지와 외삼촌이 한국전 참전용사인 그녀는 앙카라 국립대에서 한국어문학을 전공한 뒤 1995년부터 서울대에서 국문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장학금으로 박사과정을 마친 그녀는 '훈민정음연구'라는 박사학위논문을 마무리하던 차에 교육부의 장학금 연장수여서와 지도교수의 의견서를 첨부하여 비자연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소 측은 외국인 유학생은 학위과정 수료 후 2년 이상 국내에 머물 수 없도록 한 현행 출입국관리법의 규정을 들어 비자 연장을 거절했다. 그녀는 인천공항을 떠나면서 "10년간의 한국 사랑이 무참히 깨지는 느낌이다"며 씁쓸한 표정으로 이스탄불로 떠났다.

#3 합의서에 발목잡힌 경전철 프로젝트

지난 6월 하순 행정법원 항소심은 의정부시가 P사의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한 처분을 취소했다. 의정부시가 민자사업에 투입할 철도차량을 제공하기로 한 외국기업과의 합의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는데 P사는 합의서를 가장한 회의록을 제출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놀라운 일은 법원이 사업계획의 평가를 담당한 국가기관에 다툼이 생긴 여러 가지 사실조회를 하고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일체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민자사업 실무에서는 외국기업이 공동참여하는 경우 대략적인 공동참여의 의사를 확인할 수만 있으면 족하고, 우선협상대상자인 사업자가 주무관청과 사업실시협약을 체결한 후에 최종적인 계약을 체결하게 되어 있다. 주무관청과의 협상과정에서 파트너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제거래에 있어서는 아무리 제목이 협정서(Agreement)로 되어 있다 할지라도 내용상으로 당사자의 의사가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살피고 당사자의 의사에 따른 효력을 인정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협정서라는 제목을 중시한 나머지 P사가 문서의 효력을 바꾸려 했다고 추단하였다.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상식적으로 그른 결정

위의 사례에서 담당공무원과 법관의 설명은 매우 논리적이고, 법적으로도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면 상식적으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시장점유율이라는 것은 계속적으로 활동하는 기업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부도를 내고 파산지경에 빠진 기업은 우선 살려놓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도 도산위기에 처한 기업은 M&A의 예외(Failing Firm Defence)를 인정해주고 있다. 공정위는 영창악기가 일시적인 유동성부족 때문이지 회생가능성이 충분하므로 채권자들이 일시적으로 빚을 못 받더라도 제3자 인수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요즘처럼 경기가 나쁠 때 경쟁이 치열하고 이윤이 박한 제조업에 뛰어들 국내 자본가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IMF 위기 이후의 정해진 수순처럼 외국계 펀드가 영창악기를 헐값에 인수한 후 외국의 악기업체에 비싸게 팔 것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공정위에서 확신한 대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이익이 돌아갈지 두고 볼 일이다.

유학생에 대한 비자연장 제한은 학위과정을 끝내고도 눌러앉는 외국인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 요즘 아무리 제3국인들이 한국에 몰려온다고 하지만 두고두고 한국을 좋게 PR해줄 사람을, 그것도 6·25 참전용사의 손녀딸을 내쫓다시피한 것은 너무했다. 터키 프로축구팀에서 뛰고 있는 이을용 선수를 응원하며 코리아에 환호하던 터키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는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민자사업 중에서도 경전철 사업은 철도차량이 결정되어야 그 다음 토목공사나 전기·신호체계 공사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철도차량 도입에 관하여 어느 정도 확정적인 합의를 요한다. 그러나 민간사업자가 당해 사업권을 따야 안심하고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터에 서로 밀고 당기는 협상단계에서는 의향서 내지 양해각서(MOU)가 고작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불리한 조건으로라도 일단 계약을 맺었다가 나중에 계약조건을 변경할 때 외국기업에 비싼 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상의 정부기관이나 법원의 결정을 보면 형식논리에는 부합하지만 입법취지와 국가이익을 고려하였을 때 구체적 타당성 있는 결정을 내렸는지는 의문이다. 국내 피아노 회사가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므로 하나쯤 외국자본에 팔려도 괜찮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를 떠난 외국인들이 자기네 나라에 돌아가 무슨 말을 하고 다니든지 상관없이 불법체류자가 한 명도 없는 청정국가를 만드는 게 국가 목표인지 모르겠다. 민자사업을 할 때 위약금을 물 각오를 하고 외국업체와 당장 쓸모 없는 합의서를 만들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이상의 공무원, 법관들은 모두 형식논리적으로는 일을 잘하였지만 과연 국가이익이나 장기적인 경제효과 같은 큰 틀 속에서 문제를 풀려고 하였는지 궁금하다.
(로앤비 칼럼 2004.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