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라운드 쌀 문제의 해법

WTO 체제의 출범을 가져온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어 아홉 번째 다자간 통상협상인 뉴 라운드(일명 "도하 라운드")가 마침내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WTO의 각 회원국은 각료회의 선언문에 기재된 대로 교역자유화의 원칙에 따라 3년간 후속협상을 벌이고 구체적인 개방계획을 확정한 뒤 이를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해야 한다. 회원국들은 2003년까지 국내 농산물시장 개방계획(양허안)을 제시해야 하므로 우리나라는 후속협상을 통하여 2년내에 현재 평균 62%인 농산물 관세율을 크게 낮추는 등 대폭적인 농산물시장 개방계획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통상장벽이 낮아지는 만큼 공산품 수출이 늘게 되어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이 3%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농업 분야에서는 실질적인 관세 감축을 골자로 한 시장개방안이 확정됨에 따라 농민들이 소요를 보이는 등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다.

뉴 라운드와 쌀 문제의 딜레머

과연 우리들에게 '쌀 농사'는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가? 우선 분명한 사실은 국민들의 식생활이 바뀌어 쌀 소비가 크게 줄고 재고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989만섬인 쌀 재고가 올해의 풍작으로 내년에는 1,370만섬으로 늘어나 더 이상 보관하기도 어려울 지경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쌀값은 생산비 보전 명목의 추곡수매가 인상으로 현재 국제시세의 6배에 이르고 있으며, 신문보도에 의하면 뉴 라운드 개시 타결 후에 열린 양곡위원회에서는 장시간의 토론 끝에 내년도에는 더 이상 추곡수매가를 인상할 수 없고 인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뉴 라운드에서는 정부가 더 이상 벼 수매를 할 수 없게 되며, 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기도 곤란하다. 쌀 농사를 줄이는 대신 과수와 채소를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려 해도 그 대부분이 관세인하 대상이라서 묘수를 찾기 힘든 실정이다. 해결방법으로는 쌀값의 시장가격 접근, 농업인력의 재편과 구조조정, WTO 협정에서 허용하는 논농사 직불제 확대를 통한 농가소득 보전 등의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쌀 문제에는 또 다른 특수성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먹는 쌀은 통통하고 찰기가 있는 자포니카 타입과 카로스 타입인데 이것은 국제거래의 비중이 5%도 되지 않는다. 까다로워질 대로 까다로워진 우리의 식성 때문에 한국과 일본, 만주에서 재배하는 자포니카나 미국 캘리포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재배하는 카로스가 아니면 길쭉하고 풀기 없는 안남미(인디카 타입)는 입에도 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쌀의 국제시세가 싸더라도 무슨 사정으로 말미암아 우리 입맛에 맞는 쌀을 들여올 수 없다면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농업이 안보 차원에서 거론되는 것은 이와 같이 식량자급 뿐만 아니라 농촌인구가 사회적 격변기에 인구이동과 국민저축, 물가안정 등에 있어서 변화의 완충(cushion)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개방·개혁과정에서 중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지 않은 것은 중국의 농촌이 중심을 잡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쌀 농사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상황에서 언제까지 정부가 나서서 쌀값을 유지하고 벼농사를 유지해야 하느냐, 쌀을 싸게 수입하면 안 되느냐 하는 논의는 근거가 박약하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경제개발 초기단계에 철강을 더 싸게 수입할 수 있는 터에 굳이 많은 돈을 들여 제철공장을 건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경제전문가들의 시비논란을 연상케 한다. 만일 그러한 결론을 내렸다면 우리는 영원히 '포항종합제철'과 같은 국민적 우량기업을 소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3의 代案에 대한 기대

우리의 고민은 농업을 개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쌀 농사를 지키자'거나, 아니면 농촌이 붕괴되더라도 '쌀값을 내리자' 하는 양극단의 방안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분명히 제3의 길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쌀 농사가 해마다 가뭄과 풍수해를 겪으면서도 5년째 풍년인 것이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유명한 사건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의 파라오王이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살진 암소 일곱 마리가 뒤따라온 흉악하고 파리한 암소에게 잡아먹히는 것이었다. 두 번째 꿈도 비슷한 내용이었다.
알차게 여문 일곱 이삭이 비쩍 마른 일곱 이삭에 삼키우는 것을 꿈에서 보고 그 해몽을 이집트의 전문가들에게 현상을 걸고 공모하였다. 모든 사람이 구구한 해석을 내어놓았으나 파라오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때 왕실 비서관의 천거로 요셉이라고 하는 외국인이 파라오 앞에 나와 꿈을 풀이하기를 조만간 이집트에는 7년 풍년에 이어 7년 흉년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요셉은 풍년이 들었을 때 수확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 곳곳에 쌓아놓았다가 흉년에 돈을 받고 조금씩 방출하면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하였다.
이 말을 듣고 파라오는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임명하였다. 요셉은 취임 즉시 전국을 순시하며 대책을 강구하였다

(창세기 41장을 현대적으로 해석함).
성경 속의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살진 소와 파리한 소는 남한의 농촌과 북한의 농촌을 연상케 한다. 우리가 해마다 풍년을 구가하는 동안 북한에서는 수백만의 주민이 굶어죽을 정도의 식량난에 허덕였으며 지금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만일 남북 경협이 활발해지거나 통일이 된다면 북한의 굶주린 인구를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할 판이다. 남한과 북한에 풍년과 흉년이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므로 쌀을 창고에 쌓아놓기만 할 게 아니라 인도적 견지에서라도 북한에 식량을 유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는 요셉의 출세와 농업정책은 주변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가나안 땅에서 기근에 시달리던 그의 형제들이 이집트로 식량을 구하러 왔다가, 신분이 바뀐 요셉이 그를 질투한 나머지 노예로 팔아버렸던 형제들과 극적인 상봉과 화해를 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바로 우리의 쌀도 남북 화해의 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재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문제는 이러한 해결책이 요셉이 파라오를 감동시켰던 것처럼 단번에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겠는가, 북한에 유상으로 지원한다고 했을 때 구체적인 조건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민족 내부의 결정이 다자간 협상 채널인 WTO 체제하의 뉴 라운드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유의할 사항은 당시의 파라오가 지금은 매스미디어와 인터넷 정보로 무장되어 있는 국민 전체의 의사라는 점, 구체적인 해결방안은 요셉이 취임 직후에 행한 것처럼 하루 속히 (남·북한의) 현장을 돌아보고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