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회계와 화이트칼라 범죄

국가 경제를 온통 뒤흔들었던 '대우 사태'가, 아직 대우차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기업주의 분식회계 사기 사건으로 일단락 되는 듯하다. 2월 초 언론에 보도된 검찰 수사발표에 의하면 김우중 전 회장이 주요 계열사 사장들에게 41조 9백억원에 달하는 분식결산을 지시하고 그 중 상당액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해외로 유출시켰다고 한다. 더욱이 대우 현지공장을 허위로 가동한 것처럼 꾸미고, 수출대금을 빼돌리는가 하면 거짓 수입서류로 외화를 유출한 작태를 보면 이들 회사는 정상적인 기업이 아니라 범죄집단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과연 그러하였을까?

세계화라는 저거노트의 희생물

검찰의 수사내용은 피의자들에 대한 공소제기에 대비하여 범죄사실을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서 사기, 외환유출 등의 구성요건해당성과 위법성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다 보니 범죄성이 크게 부각된 것이다. 이를테면 분식결산 금액은 97 회계연도분과 98 회계연도분을 누적적으로 파악한 것이므로 1997 회계연도에 저질러진 분식결산이 수정되지 않은 채 1998년도로 이어져 곱배기가 되어버렸다.

대우 경영진의 '불법행위'를 보면 단말마의 비명소리처럼 처절하기조차 하다. 많은 사람들이 대우를 '달리는 자전거'로 비유하곤 했지만, IMF 사태로 경영환경이 급격히 악화되자 그만 추진력을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온갖 자금을 끌어다 썼음에도 역부족으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한 때 만인의 칭송을 받았던 김우중 전 회장은 세계화라는 '저거노트'(Juggernaut)에 스스로 몸을 바친 꼴이 되어 버렸다.

대우 그룹은 그동안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출기업이고 '세계경영'을 하는 기업인 데다, 김우중 회장의 영향력으로 그때그때 큰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IMF 사태라는 미증유의 국가 위기는 대우 혼자 힘만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 국내외 차입으로 지탱해온 기업으로서 자금줄이 막혀버리고 이자가 급등하자 벼라별 수단을 다 동원하였음에도 버티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렇다고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분식회계],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사기], (개정 전)외국환관리법[외환 불법유출] 등을 위반한 죄를 범한 대우 그룹의 임직원이 용서되거나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관련자들을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다스릴 필요가 있다.

화이트 칼라 범죄대책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경제범죄 사건으로 사법처리되었던 사람들은 단기간에 풀려나고 사면 복권되는 것이 상례였다. 그 이유는 경제인·기업인들을 관대히 다루어야 경제가 타격을 입지 않는다거나,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라 일류 변호사와 학연·지연을 총동원하여 원상회복을 도모한다거나, 사회 전체가 오염되어 있는 터에 한두 사람 처벌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라는 것 등이 이유였다. 이런 것들은 절도·강도 등 생계유지를 위한 곤궁범죄와 대비되는 '화이트 칼라' 범죄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능적으로 행해지는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하여는 중형(重刑)을 과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고 이를 견제·감시하는 시스템을 상시 가동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이사회에 소수주주를 대변하는 사외이사를 포함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이들 사외이사가 회계장부, 재무제표를 열람할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상장회사의 회계처리방식이 크게 바뀔 것으로 생각된다. 또 기업이 일반공중을 대상으로 유가증권을 발행할 때에는 당해 기업의 재무제표가 재정상태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크로스체크를 거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재 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투자자들의 집단소송(class action)제를 도입하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제도는 우선 당장 무분별한 소송사태를 야기하는 등 상당한 부작용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 동안 분식회계를 다반사로 해 온 우리의 기업풍토에 비추어 보면 과도기적으로 일부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감내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대외적으로 자본시장을 활짝 열어놓았음에도 외국인투자(FDI)가 미온적인 것은 투자대상 국내기업의 회계내용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분식회계를 청산하는 법

앞서 예로 든 대우 그룹은 말할 것도 없고 IMF 사태 이후 많은 기업들이 거의 공공연하게 행하여온 분식회계를 청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신문 보도에 의하면 금융감독당국에서도 기업들의 과거 장부상 분식회계 부분을 스스로 수정할 경우 면죄부를 주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세제·형평의 문제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아 보류한 상태라고 한다. 우리 기업들이 분식회계를 한 것이 사실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영의 투명성, 기업의 신뢰제고가 불가능할진대 시한부 사면령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불법의 보편화에도 불구하고 정의구현을 위해 필요하다면 하루 속히 불법을 청산하여야 한다. 이에 관하여는 미국이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은 최근 불법이민이 계속 늘어나 사회문제가 되자 작년 12월 이민법 제245조(i)항을 신설(오래 전에 폐지된 조항을 LIFE Act에 의하여 한시적으로 부활)해 작년 12월 21일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불법체류자가 4월말까지 벌금 1천달러를 내고 정식으로 이민수속을 밟으면 합법적인 신분으로 바꿔주기로 했다. 사실상 미국 노동시장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불법이민자들을 제한적으로 사면함으로써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고 국고수입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을 마련하여 과거 분식회계의 규모와 책임에 따라 당해 기업의 대표이사와 회계감사인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이를 기업회계 투명화를 위한 기금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업가정신이 존경받는 분위기 조성

국내기업의 분식회계는 기업가치의 왜곡을 가져오고 투자자와 채권자들의 판단의 오류, 신용질서의 문란, 대외신인도 저하라는 연쇄적인 부작용을 낳고, 이 과정에서 투자자, 채권은행은 물론 그 기업하고 거래하는 국민들이 모두 손해를 입게 된다. 반대로 분식회계가 청산되면 당장 주가가 20∼30%는 더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이번 대우 분식회계 사건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의 세계화는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문제는 시대의 조류가 바뀌고 있음에도 구태의연하게 차입위주의 경영을 한 데 있는 것이지 기업경영의 기준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투명하고 예측가능한 경영을 하여야만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검찰의 수사결과가 여과 없이 언론에 보도되어 경제인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인시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털면 먼지 나게 마련'이라고 볼 게 아니라, 일정한 기준을 충족한, 분식결산을 하지 않은 기업인들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고, 종업원·채권자·협력업체 등 기업의 파트너들과 기업이익을 나누어 갖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가진 기업인이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게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그리 되어야 기업인들이 내 호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불법을 자행하지 않고 이웃들의 형편도 생각하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