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콘텐츠다

최근 몇 군데 세미나에 참석하고 아직도 마이크로한 분야의 법률전문가가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한 가지 예로 서울시와 제주도가 역외금융시장을 설치하는 청사진을 마련하였는데 법률인프라를 구축할 전문가를 찾기 어렵다는 말이 들렸다.

수 년 전 개성공단을 설치할 때에도 정부는 모 로펌에 용역을 맡겨 입법 작업을 마친 적이 있다. 그러나 역외금융시장은 1회성 법령제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법률문제를 처리해야 하고 적절한 감독과 대외협력을 수행해야 하기에 이 분야의 전문가가 다수 포진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남북한 경협이 본격화될 것에 대비하여 북한이 시장경제 시스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북한의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북한에 30만명의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선거공약을 내건 바 있는데, 과연 남한에도 법적인 측면에서 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할 만한 전문가가 있는지 의문시된다.

바로 이러한 분야의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것이 새로 개원하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주어진 사명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로스쿨의 모델로 삼는 미국의 경우 로스쿨 졸업생들이 사회 각 방면으로 진출하여 학교에서 배운 법률지식을 널리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기적으로 수적 확대가 불가피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로스쿨 총정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로스쿨 예비인가 심사결과가 일부 공개되었으나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로스쿨 인가취소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문제는 로스쿨 정원을 늘리는 데 콘센서스가 형성되더라도 이는 문제해결을 뒤로 미루는 데 불과하다는 점이다. 로스쿨 졸업생들은 변호사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그 합격자 수를 현행대로 유지하는 한 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고학력 고시낭인'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는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늘려야 한다.
사실 여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게 되면 우리나라 법률시장의 개방이 불가피해진다. 외국 변호사가 국내에 들어와 실질적으로 프랙티스를 하는 터에 우리나라 변호사시험 정원을 제한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10년, 20년 후의 큰 그림을 그려보면 로스쿨 총정원의 확대→변호사시험 합격자의 증원→법률시장의 확대 개편→시장원리에 따른 로스쿨 정원의 재조정이 순차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정부와 관련단체가 뒷짐만 지고 시장원리에 내맡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세는 그 방향으로 갈 것이 확실해 보인다.

이러한 가정을 전제로 하면 '문제는 콘텐츠'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정원이 100명도 되지 않는 로스쿨에서는 몇 명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강좌를 개설하기는 어렵고 당장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늘리는 데 주력할 것이다. 하지만 5-10년 후에 합격자 정원이 늘어나고 로스쿨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단계로 접어들면 다양한 콘텐츠를 갖춘 학교에 인재들이 모여들 것이다.
법률시장에서 변호사들의 절대수가 증가한다면 사건 의뢰인들이 차별화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나 로펌을 찾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앞서 예로 든 역외금융센터의 리걸 오피서나 주요 간부는 역외금융에 특화한 법학교육을 실시한 로스쿨 졸업생들로 채워질 것이다.

요컨대 시장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로스쿨과 변호사/로펌만이 격변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당장은 학교나 수험생들로서 살아남는 일(survival)이 절박한 현실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다양하고 차별화된 콘텐츠를 갖춘 자만이 승자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호흡을 길게 하고 앞날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