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은행을 떠나면서

K형,
서둘러 직장을 옮긴 관계로 제대로 하직인사를 드리지도 못하고 은행을 떠나왔습니다. 요즘 은행 안팎으로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많으신 줄 압니다만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저는 지난 5월 30일 최종 인터뷰에서 통과되자마자 갑자기 대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되어 당황스런 일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교수회의나 회식자리에서 연공서열이 그다지 존중되지 않는다거나, 각자의 개성이 크게 부각되는 일 등이 비근한 예입니다. 더군다나 요즘 방학을 맞고 보니 몇 가지 직업중 검사는 친구들에게, 판사·변호사는 친척들에게, 의사는 부인에게 좋지만 교수는 자기 혼자만 좋을 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수긍되기도 합니다.

K형,
저로서는 급여도 절반 이하로 줄고 20년 이상 봉직한 은행을 떠나기가 쉽진 않았으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는 일념에 사직서를 쓰고 나왔습니다. 그것은 통일에 대비하여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93년 5월 총재와의 직급별 간담회 석상에서 제가 '과장대우제의 신설'과 함께 '북한연구의 대대적 확충'을 건의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요?

제 나름대로 통일에 대비하여 북한 지역에 시행할 법제 연구를 해왔지만, 최근 체제전환국의 담보부 거래(secured transactions)를 모델로 한 바람직한 기업담보제도의 연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러시아 및 동구권의 체제전환(transition)을 돕고 있는 EBRD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담보부거래 모델법]을 만들었고 가까운 베트남에서도 새로운 담보제도를 창설한 마당에 우리 법학계는 아직 여기까지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지요.

이러한 문제의식은 조사부에 있을 때부터 품고 있었습니다. 제가 1996년 사료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북한 지역에 점포를 개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지 주민과 기업인들을 상대로 무슨 비즈니스를 할 것인가도 중요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IMF 직후에 미국계 컨설팅회사들이 우리 나라의 구조조정 시장을 석권했던 것처럼 북한 지역에도 미국식 담보제도를 도입하고 미국의 법률시장으로 만드는 것을 앉아서 보는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公憤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에는 별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UN 산하의 국제거래법위원회(UNCITRAL) 등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는 채권양도에 의한 금융(assignment in receivables financing), 민간주도의 프로젝트 금융(privately financed infrastructure projects), 도산절차에 관한 국제통일법(international insolvency law) 등의 논의가 활발한 것도 알았습니다. 국내 법률제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연구분야들이고, 은행업무에도 조만간 직·간접의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은행을 떠났지만 계속 은행업무와 관련된 조사연구를 해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제2차 금융구조조정을 앞두고 은행에서는 금융지주회사의 설립 등 內包를 강화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는데, 저 같이 은행업무의 外延을 확장하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러한 범위 내에서는 은행의 담당자들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K형,
저를 어려운 시기에 저 혼자만 살겠다고 은행을 떠난(desert) 사람으로 치부하지 마시고, 결정적인 시기에 은행이 활로를 개척하는 것을 도울 외부전문가로 여겨주실(deserve)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날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더욱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도 형통하기를 바라오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산은소식, 2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