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다운

97년말 전남 함평에서 일어난 한 여고생의 보복임신 사건이 신문과 TV 방송에 보도되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피해자가 되레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이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마을 주민 4명이 여고생을 성폭행하였는데 동네 사람들은 딸 같은 소녀를 강간한 정 아무개(63), 박 아무개(48)씨를 나무라기보다 "얼마나 몸가짐이 헤펐길래……" 하며 피해자를 비난했다. 오기가 발동한 피해자의 어머니는 성폭행의 증거를 보존(?)해야 한다며 임신한 딸로 하여금 아기를 낳도록 했다. 결국 아기의 아버지로 밝혀진 정 아무개 노인과 피해자 소녀가 범인으로 지목한 마을 주민들은 광주지검 목포지청에 강간 및 감금죄로 구속되어 각각 징역 7년을 구형 받았다(중앙일보 97.12.17자 22면).

영화 '브레이크다운'(Breakdown; 사건의 발단이 된 자동차의 '고장', '전기의 방전'이라는 뜻도 있지만 시골 사람들의 도덕관념의 '타락'을 꼬집는 제목이기도 하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기가 막힌 서스펜스로 보여준다. 97년 파라마운트사 작품(제작은 마르타 & 디노 드 로렌티스)으로 역시 스릴러물에 능한 조나단 모스토우 감독이 대본까지 쓰고 메가폰을 잡았다.

영화의 줄거리

보스톤의 직장을 그만 두고 새 일자리를 찾아 샌디에고로 향하는 제프(커트 러셀)와 에이미(캐슬린 퀸란)는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부부이다. 큰 돈은 아니지만 은행에는 약간의 예금도 있고 생활의 여유도 있지만 아직 아이는 없다. 기분전환 삼아 간단한 이삿짐을 꾸려 새로 구입한 빨간 색 지프(그랜드 체로키)로 대륙 횡단여행에 나선 참이다.

인적이 드문 네바다 황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차가 고장을 일으킨다. 휴대폰에서는 "통화구역 이탈"이라는 메시지만 나오고 속수무책인 제프는 지나가던 컨테이너 트럭을 세운다. 제프는 값비싼 그의 차를 떠날 생각을 못하고 그의 아내는 기온이 올라가는 황야의 복판에 있기보다는 다음 마을의 레스토랑에 가서 견인차를 부른 후 커피나 마시고 기다리겠다며 냉큼 트럭에 올라탄다.

여기까지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들이다. 낯선 고장으로 여행하는 도중 갑자기 튀어나온 차와 접촉사고를 낼 수도 있고, 차가 고장을 일으켰을 때 무료함을 싫어하는 여자는 남편과 헤어져 냉방이 잘된 식당에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차체 밑의 전선이 끊어진 것을 발견한 제프가 허둥지둥 차를 몰고 마을로 갔을 때 에이미를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들 아내를 찾고다니 그를 차디찬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제프는 다행히 에이미를 태우고 간 트럭 운전사 레드(J.T. 월시)를 발견하고 그녀의 행방을 물어보지만 그는 전혀 모른다고 시치미를 뗀다. 마침 지나가던 순찰차 보안관에게 이 사실을 신고하지만 트럭 안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고 제프는 '부부싸움 끝에 도망간 마누라를 찾는 얼빠진 남자'가 되어 버린다.

제프는 보안관 사무소를 찾아가 실종신고를 하고 게시판에 붙어 있는 수십 장의 실종자를 찾는 전단을 쳐다본다. 그를 보고 안됐다는 듯 마을의 부보안관은 1년에 10만명이나 사람들이 사라지는데 몸값을 요구하는 등 범죄성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FBI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귀띔해 준다.

제프가 에이미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레스토랑의 주인을 의심하자 그가 오히려 제프에게 총을 겨눈다. 쫒겨나온 제프에게 모자라 보이는 마을 청년이 그의 부인이 다른 트럭에 태워져 강변도로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일러준다. 그가 얼마쯤 강변도로로 달려갔을 때에는 길은 막혀버리고 그는 괴한들의 추격을 받게 된다. 길에서 접촉사고가 날 뻔했고 주유소에서 입씨름을 했던 낡은 트럭의 운전사가 무슨 영문인지 라이플을 들고 그를 쫓아오는 것이다.

강물에 뛰어든 그는 괴한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지만 식당 앞에서 에이미의 행방을 일러주던 마을 청년에게 이내 한 방 얻어맞고 쓰러진다. 마침내 그의 앞에 나타난 트럭 운전사 레드는 9만달러를 가져오면 부인을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갑자기 차가 고장난 것도 주유소에서 엔진오일을 보충하려고 본네트 뚜껑을 열고 자리를 비웠을 때 그놈이 일부러 전기 선을 끊어놓은 탓이었다. 모두가 돈을 노리고 치밀하게 계획된 인질 납치극이었던 것이다.

제프는 아내를 찾으려는 일념에 9만달러를 인출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근처 마을의 은행을 찾아간다. 은행원에게 구조를 요청하려다가 다른 손님들도 악당의 한편일 것으로 의심하고 포기한다. 단골이 아닌 고객에게는 500달러 밖에는 내줄 수 없다는 말에 모두 1달러짜리로 바꿔 범인들이 지시한 대로 차를 탄다. 차 안에서 편지봉투 커터로 범인의 한 명을 잡아 묶는 데 성공하지만 보안관이 그를 의심하는 사이에 범인이 차 밖으로 뛰쳐나와 보안관을 총으로 쏜다.

경찰 무전으로 긴급 구조를 요청한 제프는 트럭 정류장으로 가서 마침 공중전화를 걸고 있던 레드를 발견한다. 그를 뒤따르던 제프는 레드가 운전하는 컨테이너 밑에 몰래 편승하여 그의 집까지 간다. 뒤이어 그의 창고에는 다른 트럭이 나타나 자루 속에 든 제프의 부인을 지하 냉장실로 옮겨 놓는다. 이들은 상습적으로 돈이 많아 보이는 외지인들을 이렇게 납치하여 돈을 뜯어낸 후 살해했던 것이다.

눈에서 불이 난 제프는 악당 일행이 식사하는 곳으로 가서 열쇠를 빼앗아 에이미를 구출하고 대신 악당들을 지하실로 몰아 넣는다. 에이미와 함께 탈출하는 제프를 트럭 운전사와 악당들이 에워싼 채 깔아뭉개려고 뒤를 쫓는다. 이 추격 신에서 악당들은 차례차례 퇴장하고 두목인 레드가 끝까지 두 부부를 괴롭힌다. 계곡 위의 다리 난간에서 한 바탕 격투를 벌인 끝에 레드는 계곡 밑으로 떨어져 죽고 제프와 에이미 부부는 손을 마주 잡고 안도의 숨을 쉰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보여주는 점에서 더욱 실감이 난다. 예를 들어 외제 차를 몰고 다니는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가 '막가파'식 범죄의 표적이 되었다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던 젊은 여성이 성폭행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건은 흔히 듣는 일이다. 더욱이 우리에게도 그들은 "당해도 싸다"는 심리가 잠재되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를 미국 법에서는 다음 세 가지로 구분한다. 피해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법적으로 요구되는 통상의 주의의무를 게을리 함으로써 가해자의 고의·과실과 겹쳐 손해발생을 확대하였다

면 이는 기여과실(contributory negligence)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에서는 피해자의 과실이 손해발생에 기여했다는 논리(doctrine)를 배격하고, 피해자의 부주의의 정도를 백분율로 표시하여 가해자의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 그 비율로 감액(과실상계)하는 비교과실(comparative negligence) 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가 스스로 위험을 인식하고서도 이를 그대로 수행하는 경우에는 이를 위험의 인수(assumption of risk)라 하여 역시 손해배상액을 감액해 준다.

이 영화에서는 시골 동네에 번쩍거리는 빨간 색 고급차를 몰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베네통(마을 술집의 주인은 '밥통'이라고 발음한다) 옷을 입고 나타난 외지인을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따돌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주인공 부부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법적인 의무는 아니라 하더라도 도대체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어떤 주의의무를 게을리 하였단 말인가.

좀더 생생한 사례 비교를 위해 필자의 경험담을 소개하고자 한다. 예술과 영화의 무대로 유명한(라보엠에 나오는 아리아 "돌아오라, 프로빈짜 내 고향으로"나 비제의 '아를의 여인', 반 고호와 세잔느의 프로방스 풍경화, 그리고 화제의 영화 '지붕 위의 기병'과 '프렌치 키스'를 연상해 보시라) 프로방스 지방을 여행하기 위해 마르세이유에서 렌트카를 하였는데 마침 생샤를르역 앞의 '유롭카' 회사에서 오토매틱 르노 라구나(Laguna)를 빌릴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80% 이상이 수동식 소형차이기 때문에 갓 출고된 오토매틱 중형차는 시선을 끌 만하였다.

태양의 고속도로로 해서 액상 프로방스로 질주해 가고 있는데 얼마 전부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따라오던 오토바이가 계속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내오는 것이 보였다. 프랑스에서는 오토바이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도 필자로서는 매우 생소한 광경이었다.

계기판에 이상 시그널은 나타나지 않았으나 프랑스 고속도로상에서 차가 고장나면 큰 일이다 싶어 갓길에 차를 세웠다. 차 둘레를 한 바퀴 돌아보는 찰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탔던 놈이 우리 차 앞문을 열고 주먹으로 집사람의 얼굴을 치고 품에 안고 있던 여행 백을 가로채 튀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필자도 뒤쫓아갔지만 발동을 걸어놓고 있던 오토바이는 범인을 태우고 전속력으로 도망쳐 버렸다. 액상 프로방스를 찾아간 우리는 경찰에 신고부터 했다. 프랑스 경찰관은 친절했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데스크 위의 미니텔(프랑스 국영 온라인 통신망)로 영어를 하는 통역자와 3자간 대화를 통해 조서를 꾸밀 수 있었다.

파리로 돌아간 다음에 필자는 전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선거 때마다 인종문제를 내세운 국민전선(National Front)의 르팽 후보가 돌풍을 일으켰던 것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인들이 크고 작은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제서야 마르세유역 앞에서 수많은 북아프리카 사람들이 새벽부터 모여 서 있는 가운데 내가 고급차를 렌트카 해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그들에게 여지없이 포착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상의 오토바이 강도는 우리를 돈 많은 일본 관광객쯤으로 착각하고 마르세유에서부터 우리 뒤를 쫓아온 것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파리에서는 미국의 흑백문제 이상으로 인종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예컨대 북아프리카인, 흑인, 중국인에 따라 거주지역, 교통편, 애용하는 음식료품이 다르고 직업에 있어서도 차별화가 두드러져 보였다. 실제로 EU 회원국에서 여론조사한 결과를 보아도 프랑스인들은 EU 평균보다 높게 인종문제를 의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의 존재를 거북하게 느끼는 만큼 "외국인 근로자를 추방하자"는 르팽의 정책노선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치안상태가 비교적 취약한 마르세유에서 렌트카로 프로방스 여행을 시작한 것은 이러한 속사정을 모르는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프랑스 여행을 할 때 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상당한 주의(due care) 의무를 다하지 않은 필자로서는 그 정도의 피해로 그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브레이크다운'에서 주인공 부부가 낯선 고장에서 자동차 뚜껑을 열어놓은 채 돌아다니고 지나가는 트럭에 냉큼 올라타는 것처럼 "날 잡아잡수" 하는 일종의 기여과실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