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

1994년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한 '의뢰인(The Client; 워너 브라더스 제작)'은 원작자인 존 그리샴의 다른 법정영화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패턴을 지니고 있다. 조직적인 범죄를 일삼는 악당(흔히 마피아)과 이들의 마수에 걸려든 주인공, 그를 보호하려는 正義의 사도, 제 아무리 폼을 잡아도 무능하기 짝이 없는 연방수사국(FBI)의 쫓고 쫓기는 게임 그리고 주인공이 지상낙원으로 떠나는 해피 엔딩에 있어서 본 란에서 일찍이 소개한 바 있는 '야망의 함정', '펠리칸 브리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일종의 代理만족감을 안겨준다. 변호사란 그냥 두자니 아프고 그렇다고 짜내자니 귀찮은 존재라는 점에서 '엉덩이의 종기'와 같다는 영화 속의 대사에 공감하면서도 꼬마 주인공처럼 法을 잘 몰라도 양심적인 변호사만 만나면 가족의 꿈이 이루어지고 행복이 보장된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

11살 먹은 마크 스웨이(브래드 렌프로)는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담배를 몰래 피우기도 하지만 엄마와 동생을 끔찍이 위하는 매우 당찬 소년이다. 어느 날 담배를 피우러 동생을 데리고 숲 속에 들어갔다가 캐딜락 승용차가 숲 속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몸을 숨긴다. 차에서 내린 몸집이 비대한 사나이는 자동차 배기관에 호스를 연결하여 차내에서 자살하려고 한다. 마크는 그의 자살을 저지해야 한다는 일념에 배기관에서 호스를 빼낸다. 마크는 그만 사나이에게 붙잡혀 그의 자살에 동행할 것을 강요 당한다.

그는 뉴올리안즈에서 변호사로 활약하는 제롬 클리포드라는 사람으로 보예트 상원의원의 살해현장에 있다가 마피아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피신하던 중 어렸을 때 놀았던 멤피스 교외의 숲 속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클리포드 변호사는 마지막으로 마크에게 그를 죽음으로 몰았던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는다. 마크는 그의 심경이 동요하는 틈을 타 탈출하고 제롬은 결국 권총을 입에 물고 자살하고 만다.

마크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던 마크가 사건의 단서를 알고 있을 것으로 보고 클리포드 변호사의 마지막 진술을 듣고자 한다. 그런데 마크와 함께 사건현장에 있었던 마크의 동생은 너무 엄청난 쇼크를 받고 정신적 외상(psychic trauma)으로 인한 기억 및 언어상실증에 빠져 자선병원으로 옮겨진다.

클리포드는 루이지애나주 조직범죄가 관련된 상원의원 피살사건의 중요한 참고인이었던 만큼 루이지애나주의 로이폴트리그 검사장(토미 리 존스)이 직접 사건을 수사하러 멤피스에 찾아온다. 법정에서 성경구절을 곧잘 인용하여 '목사'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루이지애나 주지사에 출마하려는 야심을 갖고 매스컴에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려 애쓴다.

마크는 그가 진실을 털어놓기는 쉽지만 자신이나 그의 가족에게 엄청난 위험이 닥칠 것임을 직감하고 변호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교통사고 전문변호사는 그에게 관심도 없다. 이혼사건 전문 변호사인 레지 러브(수잔 서랜던)가 단돈 1달러에 그의 사건의뢰를 맡기로 한다. 러브 변호사에게는 마크 소년이 남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검찰과 FBI가 병원에 가서 마크를 신문할 때 어린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공무집행 방해로 처벌받을 수 있음을 지적하는 등 은근히 겁을 준다. 그러나 러브 변호사가 마크의 대리인임을 밝히고 보호자가 입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성년자에 대해 협박 조로 신문하는 것은 불법임을 주장한다. 러브 변호사는 입원실로 마크의 어머니를 찾아가 정식으로 사건을 수임한다.

이 단계에서 뉴올리안즈의 마피아 조직도 멤피스의 사립탐정을 고용하여 마크의 소재를 파악하는 등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피아의 자금을 받고 폐기물 매립장을 만들기로 했던 보예트 상원의원이 나중에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 편을 들자 자기들을 배신했다고 살해한 베리 멀다노는 '칼날'이라는 별명답게 잔혹한 프로 킬러이다. 마피아의 행동대원은 마크에게 접근하여 발설하는 즉시 마크나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임을 거듭 경고한다.

몸을 사리는 마크에 대해 검찰측은 소년보호법상 마크의 생명이 위태롭다고 법원에 주장하고 일시 구금한 상태에서 신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마크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자 러브 변호사는 '자신의 힘이 부족할 때 타인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오히려 강한 태도'라고 타이른다. 술에 빠져 처자를 학대한 아버지를 혐오한다는 마크를 보고 러브 변호사는 자신이 알코올 중독증에 빠졌던 것은 의대생이던 남편을 공부시켜 놓자 아이들마저 빼앗기고 이혼 당한 탓이라고 해명한다. 자신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법공부를 하여 이혼 및 자녀 양육권 전문변호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크네 가족이 거처하던 트레일러 하우스는 괴한에 의해 불타버리고 마크는 임시로 여자구치소에 구금된다. 검찰측은 마크가 1급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조속히 진실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증언대에 선 마크는 증언을 거부한다. 다시 구치소로 돌아온 마크는 아픈 척하고 병원에 실려갔다가 탈출을 시도한다. 마피아 행동대원에게 쫓기던 그는 러브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뉴올리언즈의 클리포드 변호사 집에 있는 보트 창고에 가볼 것을 주장한다.

마크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한 후 이를 가지고 검찰측과 흥정을 벌여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할 작정을 한다. 그때 수사당국의 포위망이 다가옴을 감지하고 보트 창고에 가매장되어 있는 상원의원의 시신을 옮기려는 베리 멀다노의 일행과 맞닥뜨린다. 아슬아슬하게 베리의 추격을 따돌린 마크와 러브 변호사는 검찰측에 연락하여 요구조건을 내민다.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의하여 마크의 가족을 안전한 지역으로 피신시키는 것은 물론 마크 동생은 아동정신병원의 치료를 받게 하고 마크 어머니한테는 새로운 직장과 주택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여 이를 관철시킨다. 마침내 당돌한 마크 소년은 레지 러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뜻을 이루고 검찰측도 마피아 일당을 기소할 수 있는 유력한 증거를 손에 넣게 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에서 주의를 끄는 것은 미국 사법당국의 증인보호(witness protection and relocation) 프로그램이다. 조직범죄(organized crime) 등의 형사재판에 있어서 유력한 증인이 증언을 할 경우 보복을 당할 위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증인이 신분을 감추거나 안전한 곳에 가서 살 수 있도록 알선·지원해 준다. 그 덕분에 범죄단체의 두목이 증거가 없어 풀려나는 사태를 방지할 수 있으므로 '펠리칸 브리프', '배심원'과 같은 법정 스릴러물의 단골 소재가 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도 마피아같은 갱 조직을 소탕할 때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마크 소년은 증인보호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불신한다. 어느 곳에 숨어살더라도 결국은 보복을 당할 터이므로 처음부터 입을 다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함구를 하였음에도 24시간 악당의 감시를 받고 집이 불타고 가족이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되자 자기 눈으로 증거와 그 가치를 확인한 다음 큰 거래(big deal)를 하기로 한다. 비록 자기 아버지일 망정 술을 마시고 들어와 가족에게 행패를 부릴 때면 서슴치 않고 야구 방망이로 그를 쳐서 내쫓았다는 식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나이 어린 소년이 기세등등한 연방검사와 FBI의 신문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엄청난 비밀을 말했다가는 주인공 자신이나 가족의 생명이 위험할 것임을 직감으로 알았다고 하지만, 초동수사 단계에서 이 소년을 위압적으로 대하지 않고 본 대로 들은 대로 진술을 확보했더라면 이 영화의 스토리가 그처럼 복잡하게 꼬이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과연 법적으로도 증인이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가. 미국에서는 변호사와 의뢰인과의 비밀상담, 의사의 환자진료, 부부간의 대화 등에 대하여 일부 예외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진술을 거부하거나 법정에 나가서 증언하는 것을 강요 당하지 않을 권리(testimonial privilege)가 있다. 성직자·심리상담자·회계사·사회봉사자(social worker)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인데 기자의 취재원에 대한 진술거부권은 인정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사건에서 소년이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특권이 아니었다. 레지 러브 변호사가 귀띔해 준 "미국 시민은 누구나 수정헌법 제5조(Fifth Amendment)에 의하여 자신이 처벌받을 수 있는 사실에 대하여는 불리한 진술을 강요 당하지 아니한다"(우리 헌법 12조 2항 참조)는 평범한 헌법 원칙이었다. 사건 직후 경찰이 이 소년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감옥에 간다고 겁을 주었던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