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명령

1년 가까이 끌어온 S그룹 회장 부인의 고급 옷 로비 사건은 검찰 수사, 국회 청문회, 특별검사의 수사까지 벌어진 끝에 전직 검찰총장이 구속되는 사태로까지 발전되었다. 이 과정에서 검찰총장과 특별한 관계에 있던 청와대 법무담당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공식문서에서 일부 사실을 은폐·조작한 것이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었다.

옷 로비 사건 자체는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소한 문제에서 대통령의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면 중요한 국사에서는 그러하지 않다는 보장도 없는 터에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오래 전1994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해리슨 포드의 긴급명령"(Clear and Present Danger)은 영화 대사에 나오는 것처럼 청렴강직한 주인공의 활약이 눈부신 보이스카웃 영화 같다. 그러나 톰 클랜시의 同名의 原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토대로 영화를 만든 필립 노이스 감독은 미국 정계의 신경줄(nerve string)이라 할 수 있는 베트남 전쟁, 이란-콘트라 스캔들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 대국민 각성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같이 미국 영화에서 벌어진 상황은 고급 옷 로비 사건으로 시끄러운 우리 나라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영화의 줄거리

카리브 해상에서 호화요트를 불심 검문하던 미국 해안경비대는 대통령(도널드 모피트 분)의 오랜 친구인 하딘과 그의 가족이 무참히 살해당한 사실을 발견한다. 해상강도의 소행도 아니고 미국에 헤로인을 공급하는 콜롬비아의 칼리 조직에서 돈을 빼돌린 하딘을 응징하기 위해 저지른 사건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안보담당 보좌관, CIA 국장, FBI 국장 등과 연석회의를 갖고 이 같은 마약 범죄는 미국의 안전보장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린 안보담당 커터 비서관은 CIA 리터 부국장에게 비밀작전 지시를 내린다. 행정부 단독의 군사행위(course of military action)는 금지되므로 이 작전은 비밀리에 소규모의 특수요원만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CIA 국장인 그리어 제독(제임스 얼 존스 분)이 췌장암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잭 라이언(해리슨 포드 분)이 그에 의해 CIA 국장 대행으로 지명된다. 그는 상원 정보감독위원회(Oversight Committee) 청문회에 출석하여 콜롬비아산 마약 퇴치를 위한 CIA의 새 업무에 따른 예산요청을 하면서 콜롬비아에는 절대로 군대를 파병하지 않을 것임을 의원들에게 약속한다. 사실 의회의 동의없는 군대 파병이란 있을 수 없지만 의원들은 이란-콘트라 케이스와 같이 CIA가 우회적인 방법으로 해외공작을 펴온 것을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막역한 친구이자 정치적 후원자인 친구 가족을 잃고 상심하는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해야 하는 커터 안보수석으로서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콜롬비아의 마약조직을 응징하고 싶다. 이를 눈치채고 CIA 리터 부국장은 準군사요원(para-military)을 동원하여 '以熱治熱' 작전(Operation Reciprocity)을 전개하기로 하고 커터 안보수석의 승인(Authorization)을 받아 놓는다.

리터는 파나마로 날아가 전직 CIA 정보원인 클라크(윌렘 데포우 분)에게 돈을 지급하기로 하고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과 현지 생산공장을 파괴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측의 극비 정보는 FBI 국장의 여비서를 통하여 부지불식간에 마약조직에 흘러나간다. 그녀가 마약조직 두목 에스코베도의 자문관인 코르테스와 열애 중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하딘이 해외은행계좌에 보관 중이던 6억5천만달러를 전부 회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한다. 그러나 이 돈은 에스코베도가 하딘에게 돈세탁(money laundering)을 위해 맡겨놓은 것이었기에 그의 미국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고조된다.

잭 라이언이 하딘의 비밀자금이 마약과 연계되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보고타에 가 있는 동안 콜롬비아 잠입에 성공한 특수부대원들(Team Knife)도 작전을 개시한다. 잭 라이언은 하딘이 관여했던 에스코베도의 공식사업체 린도 커피에 대한 전모를 파악하고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콜롬비아 정부도 6억5천만달러의 일부에 대한 지분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에 미 대통령은 이 문제에 관한 협상차 FBI 국장을 콜롬비아에 특파한다.

이 때 코르테스는 마약 카르텔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보고타에 도착한 FBI 국장을 로케트 포로 암살하고 이를 에스코베도가 한 것처럼 꾸민다.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FBI 국장 암살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에스코베도를 처치하면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설 계획인 것이다. 미 정부와의 전면전을 벌이게 된 마약 카르텔의 수뇌들이 대책을 협의하는 장소에 미국 특수부대원들이 나타나 전폭기가 고공에서 발사한 레이저 추적 스마트 폭탄을 유도하여 집안에 있는 부녀자들과 함께 그들을 몰살시킨다. 그러나 특수부대의 암약은 코르테스에게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코르테스는 커터 안보수석에게 중립지대인 파나마에서 면담을 요청하고 미군 특수부대를 철수시키면 미국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마약 공급을 줄이고 정기적으로 마약사범을 단속할 수 있게 협조하겠다고 약속한다. 이래저래 비밀작전에 부담을 느끼던 커터 안보수석이 이에 동의하고 콜롬비아 특수부대원과의 교신 때 사용하던 위성통신 채널을 닫아버린다. 결국 고립무원에 빠진 특수부대원들은 마약조직의 군사요원들에게 희생되고 만다.

잭 라이언은 리터 부국장의 컴퓨터를 해킹하여 최근 일련의 사태가 커터 안보수석과 리터 부국장에 의하여 저질러졌음을 알고 콜롬비아에서 실종된 군인들을 구조하기 위해 단신 보고타로 향한다. 라이언의 존재에 부담을 느낀 커터와 리터는 클라크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타에 간 라이언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뒤집어 씌우고 그를 처치하면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한다. 보고타 공항에서 라이언을 납치한 클라크는 리터가 그를 속였음을 깨닫고 라이언을 도와 포로로 잡힌 특수부대원을 구출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타고 작전지역으로 향한다. 라이언은 에스코베도를 만나 이 모든 사건이 코르테스의 흉계였음을 폭로하지만, 린도 커피공장에 간 에스코베도는 오히려 코르테스 부하에게 살해 당하고 천신만고 끝에 라이언과 클라크는 포로들을 구출하여 헬리콥터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가까스로 워싱턴에 귀환한 잭 라이언은 대통령의 협박 섞인 만류도 뿌리치고 사건의 전말과 이에 개재된 비리를 폭로하기 위해 미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原題부터가 이색적이다.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이 미국민을 살상하고 미국에서 마약을 유통시키는 것은 미국의 안보 및 국가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는 영화 속 미 대통령의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본래 'clear and present danger'란 말은 1919년 표현의 자유(freedom of speech)를 다룬 미 연방대법원 판결(Schenck v. United States)에 나온 개념으로 홈즈 대법관이 처음으로 썼다. 홈즈 판사는 구체적인 표현에 대해 의회가 이를 방지하는 권리를 갖고, 실질적인 해악을 일으키는 것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언론에 대한 규제를 가할 수 있다고 밝혔던 것이다.

이 기준은 표현의 자유는 무엇보다도 우월하다는 이론과 결부되어 1945년 미 연방대법원이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률의 合憲性을 판정할 때(Thomas v. Collins)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1951년 미 정부당국이 공산당원의 활동을 단속할 때 해악이 실현될 가능성이 크지 않더라도 그 해악이 중대할 경우에는 이를 단속하는 것이 합헌이라는 연방대법원 판결(Dennis v. United States)이 나오면서 이 기준은 폐기되었다. 그 후 이 기준은 '명백하고 절박한 위험'(clear and imminent danger)으로 약간 변형(Brandenbur v. Ohio, 1969)되어 언론의 자유를 광범하게 보장하는 연방대법원의 입장을 단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 영화의 두 번째 이슈는 과연 "미 대통령은 단독으로 외국과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것인가"이다. 미 헌법상 대통령은 의회의 선전포고(declaration of war) 없이도 미국에 현실적으로 적대행위(actual hostilities)를 하는 국가나 단체에 대해 군사행동을 벌일 수 있지만 의회는 2년마다 군사비 지출(military appropriation)을 승인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있다.

특히 미 CIA에 대하여는 예산통제가 엄격하다. CIA는 냉전시대 때부터 외국에서 정부 전복, 쿠데타 등 비밀작전(covert operation)을 수행해 온 전력이 있으므로 상원 정보감독위는 CIA의 예산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CIA가 콜롬비아 마약조직의 마약 밀매행위를 근절하겠다고 의회에 예산을 신청하자 상원 의원들은 콜롬비아 정부에 군사장비와 자문을 제공하는 데 그치고 절대로 군대를 파병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이를 승인한다.

미 의회지도자들은 미국 정부가 인도차이나 밀림지대에서 준동하는 공산 게릴라를 퇴치하겠다고 소규모 부대를 보낸 것이 결국 뼈저린 패배를 안겨준 베트남 전쟁으로 확대되었던 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Tom Clancy 끝으로 이 영화, 아니 톰 클랜시의 원작 소설은 잭 라이언이라는 모범적 인물을 내세워 권력자의 측근(Inner Circle)도 대통령 개인보다는 미 헌법과 국민에 봉사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의 意中이나 心氣를 받들어 모시려다가는 자칫 법을 어기기 쉽고 급기야는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마저도 손상시키는 과오를 범하기 쉽다는 것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요즘 옷 로비 사건에서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검찰총장의 부인이 고급 의상점에서 옷을 해 입었다는 것이 아니라 권력층 인사들이 개인적인 친분이나 감정을 앞세워 사실을 왜곡시키고 대통령의 상황판단마저 오도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톰 클랜시가 잭 라이언을 주인공으로 하여 발표한 소설로는 여기 소개한 '긴급명령' 외에도 1984년도 처녀작인 '레드 옥토버'(The Hunt for Red October), '패트리어트 게임'(Patriot Games; 이상 세 편은 파라마운트사에서 영화화되었음), '크렘린의 추기경'(The Cardinal in the Kremlin) 등이 있는데, 인터넷 머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신작 '레인보우 식스'(Rainbow Six) 역시 게임으로도 성공하였음을 잘 알 것이다. 테크노-스릴러의 거장인 톰 클랜시는 '레드 스톰 엔터테인먼트'라는 게임 제작회사를 설립 운영하고 있다. 그에 관한 정보를 다룬 웹사이트는 많이 있지만 "Tom Clancy Information Centre"(http://www.multimania.com/aldoc/us)를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