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 맨 워킹

'쇼생크 탈출'에서 주연을 맡았던 팀 로빈스가 1995년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데드 맨 워킹'(폴리그램 제작)이 미국 텍사스주의 사형수 칼라 페이 터커의 사형집행을 계기로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여성 사형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등 각계 각층의 구명 운동에도 불구하고 1998년 2월 3일 하오 6시 45분(현지시간) 텍사스주 헌츠빌 교도소에서 약물주사(lethal injection)를 맞고 38년의 생을 마감했다.

원래 "Dead Man Walking!(사형수 입장)"이란 미국에서 사형수를 형 집행장으로 호송할 때 간수장이 붙이는 구령이다. 동명의 영화가 사형제도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죄수가 결국 사형 당하는 과정을 리얼하게 묘사함으로써 사형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처럼 터커는 미국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한 논란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켰다.

영화 '데드 맨 워킹'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안즈에서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헬렌 프레전(Helen Prejean) 수녀의 수기를 극화한 것이다. 당시 그곳에서 영화 '의뢰인'을 촬영중이던 수잔 서랜든이 이 책을 읽고 남편인 팀 로빈스에게 영화화할 것을 제의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영화의 줄거리와 실화를 함께 살펴보면서 사형제도가 법적으로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영화의 줄거리

헬렌 수녀(수잔 서랜든 분)는 뉴올리안즈 교외 세인트 토마스시의 흑인 거주지역에서 평복 차림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하는 수녀이다. 틈틈이 詩도 쓰는 헬렌 수녀에게 한 백인 사형수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편지가 계속 날아온다. 변호사 아버지를 둔 유족한 집안 출신인 헬렌 수녀는 끔찍한 죄를 지은 살인범의 간절한 호소를 뿌리치지 못하고 교도소의 사형수 감방(death row)으로 그를 면회하러 간다. 형 집행을 며칠 앞 둔 사형수 매튜 폰슬렛(숀 펜 분)은 자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도 돈이 없어서 제대로 변론을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공범 대신 사형을 받게 되었다며 헬렌 수녀에게 법적인 도움을 간청한다.

실제로 헬렌 수녀의 수기에 소개된, 루이지애나주에서 있었던 사건은 1977년 11월과 1980년 5월 서로 멀지 않은 두 지역에서 발생한 일련의 살인 사건으로 이 영화는 전자에서 스토리를, 후자에서는 주인공을 차용하여 각색한 것이다. 전자는 두 형제가 데이트 중이던 10대 남녀를 사탕수수밭에서 등뒤에서 총으로 쏘아 죽이고 여자는 성폭행까지 한 사건이었다. 후자는 마을의 소문난 불량배 두 명이 집에 혼자 걸어가던 여자를 멀리 떨어진 숲으로 납치하여 강간을 한 후 살해하고 사흘 뒤에는 10대 남녀를 유괴하여 남자는 목을 칼로 베고 여자는 성폭행을 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영화에서는 약물에 취한 두 젊은이 폰슬렛과 비텔로가 데이트중인 젊은 남녀를 사유지를 침범했다고 트집잡아 숲 속으로 끌고 가 여자를 난행한 후 두 남녀를 칼로 찌르고 후두부를 22구경 권총으로 쏘아 살해한 사건이다. 교도소내 교화사 팔리 신부는 헬렌 수녀에게 그런 흉악범이 도움을 청하는 것은 십중팔구 이용해 먹을 속셈인 것이니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특히 오랫동안 여자를 본 적도 없으므로 아주 권위적으로 대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충고해 준다. 그러나 폰슬렛이 헬렌 수녀에게 하소연한 것은 자신은 돈이 없어서 유능한 변호사를 써보지도 못하고 죽게 되었으므로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주정부 사면위원회와 연방법원에 탄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루이지애나주에서는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흉악범을 엄벌에 처하라(Get tough)"라는 선거구호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헬렌 수녀의 노력으로 최종 사면위원회가 열리지만 폰슬렛에 대한 관대한 처분은 기각된다. 헬렌 수녀는 피해자 부모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면서도 폰슬렛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정신적 조언자(spiritual advisor)로서 마지막 1주간 그를 돕겠다고 나선다. 그에게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할 때에도 하나님으로부터 빠져나올 구멍(loophole)을 찾아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헬렌 수녀가 사형수 감방을 찾아갈 때면 천둥번개가 치는 것이 마치 선과 악이 마지막 불꽃 튀는 대결을 보는 것 같다.

또다른 사형수에 대한 형이 집행되는 교도소 밖에서는 사형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눈에는 눈(Eye for Eye)"이라고 외치는 가운데 헬렌 수녀 일행은 조용히 촛불 시위를 벌인다. 그렇지만 폰슬렛은 자신이 소영웅이나 된 듯 TV 인터뷰를 할 때 인종차별주의, 백인 우월주의의 정치적 구호를 외친다. 마치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청사를 폭파한 민병대(Militia)의 행동대원 티모시 맥베이(그도 역시 사형선고를 받았음) 같은 반정부적인 언동이다.

헬렌 수녀는 끝까지 폰슬렛의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당신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변화시키셨다"고 타이른다. 그리고 요한복음 8장 32절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해준다. 이 말을 들은 폰슬렛은 형 집행일 당일 아침 거짓말 탐지기를 써보면 자신이 두 젊은이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입증될 것이라고 수녀를 조른다. 그러나 형집행 예정일의 심리상태에서 결과가 제대로 나올 리 만무하다. 결국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밤 10시반 재심신청에 대한 연방법원의 기각 결정이 통보될 때까지 헬렌 수녀와 시간을 함께 보낸다. 마지막으로 고해성사를 하듯 "자기가 남자를 죽이고 여자를 강간한 것"이며 피해자들을 위해 처음으로 무릎 꿇고 기도했노라고 고백한다. 헬렌 수녀는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셨을 것이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죽음을 두려워 말고 평안히 가라"며 미소로써 작별을 고한다.

실제로 80년 사건의 주범 로버트 윌리는 이 영화의 주인공 역을 열연한 숀 펜과 깜짝 놀랄 정도로 외모가 닮았다는데, 14세때부터 좀도둑, 강도, 경찰관 폭행, 탈옥 등 무수한 전과를 가진 이름난 '칼잡이'였다. 오죽하면 '데드 맨 워킹'이 전국적으로 개봉되었을 때 이 고장 주민들은 그가 되살아난 줄 알고 진저리를 쳤을까. 그 사건에서 숲으로 끌려가 강간을 당했던 여자는 당시 미성년자라서 재판과정에서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계기로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제일 괴로운 일은 범인이 이 소녀를 살려 준 것을 놓고 영화에서 매튜가 마지막 순간에 헬렌 수녀에게 진실을 밝히고 회개를 한 것처럼 윌리도 "죽어 마땅한(deserve to die) 사람은 아니지 않았느냐" 하는 여론이 고개를 든 사실이었다. 그러나 윌리는 감방에서 "감옥에서 나갈 수만 있으면 그 ×를 잡아 죽이겠다"고 별렀다고 한다.

감상의 포인트

바로 여기서 사형제도의 존폐론이 대두되는 것 같다. 사실 피해자나 그 가족들에게 살인(미수)범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3자로서는 큰 부담없이 생명의 고귀함, 인간의 존엄성 등을 운위할 수 있을지 몰라도 피해당사자로서는 치유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되살리고 신변의 안전마저도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팀 로빈스 감독은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절절하게 묘사함으로써 어느 한 편만 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종교인과 인권단체, 진보적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사형제도 폐지론이 꾸준히 주장되어 왔다. 이들의 논거는 사형은 배심원·증인·법관 등의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판단에 휘말리기 쉽고, 인종·빈부의 차별이 자행되며 무엇보다도 오판의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1994.2.22 미 연방대법원의 '칼린스 대 콜린스' 판결에서 블랙먼 대법관이 제기한 소수의견의 요지). 최근 DNA(유전자) 증거가 널리 활용되면서 피해자의 증언에만 의존했던 재판이 오류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상급심에서 사형판결이 뒤집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사형을 선고한 재판이 일관성 있고 공정하며 신뢰성이 있었다고 보장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특히 정치적 후진국에서는 사형제도가 정치적 보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제5 수정헌법은 "누구든지 대배심(grand jury)의 기소가 없는 한 사형을 당하지 않으며, 적법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생명을 잃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8 수정헌법은 잔혹하고 비정상적인 형벌(cruel and unusual punishments)을 금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방대법원은 1972년 이래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관의 재량은 엄격히 억제되는 반면 사형을 선고하지 않기(자비를 베풀기)로 하는 재판관의 재량은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일견 상반된 원칙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경찰과 일부 학자들은 사형이 범죄 억제와 위하 효과가 있으므로 이를 폐지하면 범죄의 증가와 흉포화를 초대하게 된다며 사형제도의 존속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1967년부터 사형집행을 유예(moratorium)하였다가 1976년 연방대법원 판결로 "사형대상 범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주에서는 사형을 허용할 수 있다" 하여 사형제도를 부활시켰다. 여기에는 장기 복역수의 급증으로 교도소의 수용능력이 폭발 직전에 이른 각주의 사정이 고려되었다.

현재 미국에서는 텍사스주,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38개주가 시행하고 있으며(과거 노예제도를 두었던 남부 주가 예외없이 이에 속하는 것은 인종차별의 발로라는 주장이 있음), 사형수의 고통이 가장 적은 약물주입 방법을 많이 채택하고 있다. 76년부터 96년까지 358명에 대해 형이 집행되었고 현재 3,100명이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개인이 하건, 국가가 하건 살인"이며 "인간을 교화하는 것은 사형이 아니라 큰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사형폐지를 주장하는 웹사이트가 많이 개설되어 있는데 1996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로부터 우수 홈페이지로 선정된 "Ethics Updates"(http://ethics.acusd.edu/death_penalty.html)는 사형제도에 관한 연방대법원 판결과 통계자료, 관련논문 및 서적, 논문주제, 인터넷 홈페이지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루이지애나 사건의 실화도 "사형수 감방을 찾아온 천사(Angel on Death Row)"라는 미국 공영방송의 홈페이지(http://www.pbs.org/wgbh/pages/ frontline/angel)를 참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