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세이 워드

최근 대통령의 아들들을 둘러싼 게이트 사건에서 아연 화제가 된 것은 최규선 씨의 상상을 뛰어넘는 엽기적인 행각이었다. 그가 자신이 벌여온 사업이 젊은이들에게 성공의 귀감이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목숨마저 잃을지 모른다는 위험을 느꼈기 때문인지 대통령의 친서까지 복사해 놓고 구술 회고록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하기야 세기의 금융 스캔들로 알려진 베어링 은행 파산 사건의 닉 리슨도 회고록을 써서 자신의 명예회복을 꾀했다고 하니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세상물정에 밝은 최 씨 역시 회고록을 써서 돈을 벌 생각을 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80년대부터 야당의 거두인 김대중 씨에게 접근하고 DJ의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하여 외자유치에 수완을 보여 DJ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일, 현 정부 출범 후에 청와대에서 축출되자 DJ의 3남과 권력의 실세였던 K씨의 마음을 사로잡아 각종 이권에 개입한 일, 그리고 야당 정치인들에게도 집요하게 접근하려 한 일을 보면 그는 권력과 돈을 향하여 '무한질주'를 하다가 그만 전복사고를 일으킨 것이라 여겨진다.

최규선 씨의 권력과 돈에 대한 집착 행각을 보면 미국에서 9·11 테러 사건 직후에 개봉되어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영화로 화제를 모았던 "돈 세이 워드"(Don't Say a Word)의 스토리와 비슷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영화의 줄거리

Don't Say a Word 1991년 뉴욕 브루클린 윌리엄즈 브리지 부근의 한 은행에 복면을 한 여섯 명의 괴한이 침입한다. 그들이 노린 것은 은행금고 속의 현금이 아니라 대여금고 안에 보관되어 있는 천만 달러짜리 '레드 다이아몬드'였다. 120초만에 보석 강탈에 성공한 리더 패트릭(숀 빈)은 쾌재를 부르지만 이내 공범인 버로우가 다이아몬드를 바꿔치기 한 사실을 알고 그의 눈은 배신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으로 이글거린다.

2001년 추수감사절 전날 저녁 퇴근을 하는 뉴욕의 저명한 정신과의사 네이선 콘라드(마이클 더글러스) 박사는 다리를 기브스를 하고 누워 있는 아내를 위해 칠면조 구이를 사 갖고 갈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다. 그때 정신과의사인 친구로부터 긴급 호출을 받는다. 10년간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한 소녀가 남자 간호사를 칼로 난자하는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추수감사절 전날 갑자기 곤란하다고 거절하자 친구는 당신이 봐주지 않으면 평생을 정신병동에서 묶여 지내야 할 것이라며 그의 동정심에 호소한다.

네이선 박사가 찾아가 본 엘리자베스(브리트니 머피)는 이상한 말을 내뱉는다. "당신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찾으러 왔지? 난 절대로 말하지 않아. 단 한 마디도…." 네이선은 그녀에게 말못할 비밀이 감춰져 있다고 생각하고 면담을 마치고 서둘러 귀가한다.

그러나 그의 행복한 가정에는 거센 폭풍이 몰아닥친다. 추수감사절 아침 네이선의 딸이 유괴 당한 것이다. 곧 이어 걸려온 유괴범의 전화는 엘리자베스로부터 6자리의 숫자를 알아내라는 것이었다. "데드라인은 저녁 5시까지, 숫자를 알아내지 못하거나 경찰에 신고하면 당신 딸은 죽는다"라는 협박이다. 네이선은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엘리자베스를 급히 찾아간다.

엘리자베스는 10년 전에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후 극심한 정신적 외상(psychic trauma)을 입고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네이선은 그 곡절을 알아내기 위해 경비경찰을 따돌리고 엘리자베스를 사건의 현장으로 데려간다. 그때 마침 뉴욕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의 단서를 찾아 정신병원을 찾아온 뉴욕 시경(NYPD) 강력반의 산드라 캐시디 형사(제니퍼 에스포시토)의 추적을 가까스로 피한다.

엘리자베스는 10년 전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아버지가 사준 인형을 들고 여러 명의 괴한들에 쫓겨 지하철역으로 피신하는 모습을 재연한다. 급기야 괴한들과 맞닥뜨린 그녀의 아버지는 지하철 철로로 밀려 떨어져 그때 마침 역에 도착하는 열차에 치이고 말았던 것이다. 범인들은 모두 체포되었지만 엘리자베스로서는 너무나 처참한 아버지의 최후가 눈에 어른거려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다. 괴한들이 항상 그녀를 쫓고 있다는 망상과 함께.

괴한들은 공범에게 천만 달러짜리 다이아몬드를 빼앗긴 패트릭 일당이었고, 10년형을 마치고 출감한 그들은 엘리자베스가 다이아몬드의 소재를 알고 있다고 보고 남자 간호사를 보냈다가 실패하자 네이선을 통해 비밀을 알아내려고 그의 딸을 납치한 것이다. 네이선과 엘리자베스를 추적하던 패트릭 일당은 네이선이 이스트강의 하트섬으로 가는 것을 확인한다. 공동묘지 안에 뭣이 있다고 믿은 패트릭 일당은 네이선을 압박하여 문제의 다이아몬드가 숨겨져 있는 무연고 묘지를 파헤친다. '815508'이라는 6자리 숫자는, 패트릭으로부터 다이아몬드를 빼돌린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의 관에 새겨진 매장지 번호였던 것이다.

마침내 엘리자베스가 들고 다니던 인형 속에서 레드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패트릭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더 이상 네이선의 도움이 필요 없게 되었기에 부하에게 그를 없애버리라고 지시하지만 그 때 마침 네이선을 쫓아 온 캐시디 형사가 현장을 덮친다. 캐시디 형사와 네이선, 패트릭 일당 간에 격투와 총격이 벌어지고 패트릭은 네이선에게 빼앗긴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무덤 속으로 뛰어든다. 패트릭은 그가 십수년간 집착했던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지만 다음 순간 무너지는 흙더미 속에 파묻히고 만다.

감상의 포인트

Don't Say a Word 이 영화는 9·11 테러사건 직후 권선징악의 소재로 미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고 한다. 멜 깁슨 주연의 '랜섬'처럼 유괴된 자녀를 찾으려는 아버지의 용감한 활약상을 다루고 있다. 미국 의 추리소설문학상 '에드가상'을 수상한 앤드류 클라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덴버', '키스 더 걸'을 연출한 게리 플레더 감독이 전문가의 솜씨를 발휘해 만들었다. 마이클 더글러스와 숀 빈의 불꽃 튀기는 연기대결을 앞세워 24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사건이 긴장감 넘치게 전개되는 블록버스터급 스릴러물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무대를 최규선 씨가 등장하는 스캔들에 대비시켜 보면 천문학적 금액의 레드 다이아몬드나 최고권력이나 비슷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의 손에 넣을 뻔하였다가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갖게 마련인 집착증은 영화 속의 패트릭이나 현실 속의 최규선 씨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딸을 되찾기 위해 "이게 진정으로 가치가 있느냐(Is this really worth)?"며 희귀한 다이아몬드도 돌멩이처럼 버릴 수 있는 네이선이 더 자유로울 수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 엘리자베스에 대한 연민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최규선 씨는 자신이 받들려고 한 인사나 그 가족과의 유대나 인간적인 배려는 안중에도 없었다.

네이선이 유괴된 딸을 구출하려고 사건해결에 나서면서 엘리자베스의 운명은 극적인 전환점을 맞는다. 평생 정신병동에서 손발이 묶인 채 일생을 보낼 뻔했던 엘리자베스의 정신이상의 원인이 규명되고 그녀 역시 과거의 망상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게 된다. 이 영화가 스릴러물답지 않게 훈훈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패트릭 일당은 네이선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그의 집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실시간으로 그의 부인을 지켜본다. 개인정보가 무방비로 노출이 될 경우 이는 단순히 프라이버시의 침해에 그치지 않고 무서운 범죄로 직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여담이지만 하버드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루이스 브렌다이스(Louis. D. Brandeis)는 동급생이던 사무엘 워렌과 함께 1890년 하버드 로 저널에 기고한 논문에서 '프라이버시권'(the right to be let alone)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썼다. 그가 국가를 포함한 다른 사람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을 기본권의 하나로 인식하게 된 계기는 그가 아버지 대에 체코 프라하에서 건너 온 이민 2세대인 데다 인종, 사상, 신념 등 신상자료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유대인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브렌다이스는 그로부터 16년 후 윌슨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유대인으로서는 미국 최초의 연방대법관이 되었으며, 그가 82세로 은퇴할 때까지 미국 법조계는 물론 정치, 시회, 경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향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