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퍼러스 클럽

The Emperor's Club 최근 서울 Y대에서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학점 스와핑" 사건이다.
이 학교 상경대 3학년생은 재수강한 교양과목의 성적이 B로 나오자 교수를 찾아가 같이 수강한 친구가 동의했으니 친구의 A학점과 자신의 B학점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두 사람의 우정(?)에 감탄한 교수는 그 말을 곧이듣고 그 학생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그의 친구가 며칠 사이에 학점이 강등된 사실을 발견하고 교수를 찾아가 "성적을 원상회복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교수는 두 학생의 성적을 원 상태로 정정했으나 이 사실이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알려지면서 크게 물의를 빚었다.
학교 당국은 문제의 학생은 무기정학, 담당강사에 대하여는 출강금지 조치를 내렸다.

한국일보 2003.7.9, 7.29자.

이 사건의 발단이 된 교양과목이 "영화의 이해"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담당강사는 "엠퍼러스 클럽"(Emperor's Club)이라는 영화(감독 마이클 호프만)를 보고 주인공 헌더트 선생의 인품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영화의 주인공 헌더트 선생은 문제의 제자가 속임수를 쓰는 것을 알면서도 속아준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영화의 줄거리

The Emperor's Club 사람의 성격(character)이 그의 운명(fate)을 좌우한다. 이 말은 헌더트 선생(케빈 클라인)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되뇌는 말이다.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학교인 세인트 베네딕트 고등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으로 34년을 봉직한 헌더트는 1976년에 처음 만난 제자 세드윅 벨(에밀 허쉬)을 잊을 수 없다. 상원의원의 아들인 세드윅은 처음에는 말썽꾸러기 전입생으로, 오늘날에는 성공한 졸업생으로 그에게 다가온다.

헌더트는 세인트 베네딕트 고등학교의 역사 선생님이다. 고대 지중해 그리스·로마 문명이 그의 전공이다. 그의 강의는 독특하다. 기원전 12세기 슈트럭 나훈테라는 왕이 정복사업을 벌여 영토를 넓히고 전리품도 많이 챙겼지만 역사에 전혀 공헌한 바가 없었기 때문에 무명의 인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역사가로부터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업적을 남기는 인물이 될 것을 당부한다.

헌더트는 총각 선생님으로 기숙사의 사감을 겸하고 있다. 저녁 9시면 방마다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소등을 예고한다. 그 무렵 그의 학급에 전입생이 들어온다. 기숙사 옆방의 항의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에서 야구공 던지기를 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악동이다. 친구들을 부추겨 금단구역인 호수 건너편의 세인트 마틴 여학교로 몰래 들어가기도 한다.

헌더트는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에게 외출금지를 명하고, 자율적인 통제(self-governance)와 상호신뢰(mutual trust)가 학교의 전통이므로 학교의 명예를 손상하지 말도록 훈계한다. 그러나 세드윅이 그의 수업 시간에 계속 삐딱하게 나가자 헌더트는 세드윅의 부친인 상원의원을 만나러 간다. 아들의 담임선생을 맞은 세드윅의 부친은 쿠바산 시가를 권하면서 학교에서는 아이들 나이에 맞게 공부나 가르치면 된다며 헌더트의 걱정을 일축한다.

The Emperor's Club 그리고 세드윅의 부친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에서 말썽이나 부리고 아빠보고 뒤치다꺼리를 하란 말이냐"며 호통을 친다. 그것이 명문가라는 세드윅 집안의 가정교육이었던 것이다. 헌더트는 세드윅이 비뚜로 나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를 한다. 그것이 교육자인 그의 사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세인트 베네딕트 고등학교의 오랜 전통인 줄리우스 시저 경연대회가 열린다. 1차로 로마사에 관한 필기시험에서 1, 2, 3등을 한 학생이 전교 학생과 학부형들이 모인 앞에서 퀴즈 문제를 푸는 행사인데 우승자는 로마황제와 같은 월계관을 쓰게 된다. 이 때 세드윅은 시합기간 중에 대출이 금지된 참고서를 빌려달라며 도서관 사서에게 떼를 쓴다. 어차피 내일 아침까지는 아무도 볼 수 없으니 자기 혼자 살짝 보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본 헌더트가 개인적으로 보증을 서고 사서에게 특별대출을 해주도록 부탁한다.

필기시험의 결과 세드윅은 'A-'로 등외이다. 채점을 하던 헌더트는 곰곰 생각하다가 세드윅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A+'로 점수를 고쳐 퀴즈 시합에 나갈 수 있게 한다. 당연히 다른 학생이 등외로 밀려난다.

헌더트의 짝사랑이련가. 세드윅은 토가(고대 로마인이 입었던 옷)를 걸치고 당당하게 퀴즈 시합에 나간다. 헌더트는 세드윅이 토가의 소매에 커닝 페이퍼를 숨겨놓고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목격하지만 많은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보는 앞에서 차마 제지를 하지 못한다. 결국 세드윅은 막바지에 문제가 틀려 엠퍼러의 관을 쓰지 못한다. 또한 헌더트가 사모하던 동료 여선생도 영국의 옥스포드로 떠난다.

요령을 부릴 줄 모르는 헌더트에게 퀴즈 대회에 스폰서를 붙이고 기부금을 모으면 "교장도 따놓은 당상"이라며 후배 교사가 부추기지만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교장이 은퇴하고 헌더트가 교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입학생 감소 등 실적이 떨어지자 요령 좋은 후배가 이사회를 동원하여 교장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옥스포드에 갔던 동료 여교사는 결혼에 실패하여 돌아온다. 헌더트는 학교를 떠날 생각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슬러 교단에 남기로 한다.

The Emperor's Club 그로부터 25년이 흐르고 헌더트는 세드윅으로부터 초대장을 받는다. 아버지 덕에 예일에 진학한 세드윅은 유수 기업을 경영하는 성공한 최고경영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드윅은 자기가 25년 전에 월계관을 쓰지 못했던 줄리우스 시저 퀴즈시합을 다시 열자고 한다. 동창생들을 수소문하여 가족과 함께 전원 롱아일랜드에 있는 회사 휴양소로 초대한다. 헌더트 선생은 회사 헬기로 모셔간다. 세인트 베네딕트 동창들이 함께 모이자 옛날 추억을 되살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헌더트는 세드윅이 과연 성공한 사람이 되었는지 반신반의한다. 25년 전 유력한 정치인인 아버지 밑에서 남모를 중압감에 시달리는 제자에게 자신감을 고취하고자 퀴즈 대회 본선에 나가도록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세드윅은 지금도 자기가 황제의 월계관을 써야 한다고 또 다시 고집을 부리고 있지 않은가.

옛날 식으로 로마사에 관한 퀴즈 문제를 내던 헌더트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청각에 이상이 없는 세드윅이 귀에 보청기를 꽂고 있고 홀 뒤켠에서는 어떤 젊은이가 무선 마이크에 대고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드윅이 또 다시 부정행위를 하는 것이다! 헌더트는 갑자기 문제를 바꿔 슈트럭 나훈테에 관한 문제를 낸다. 그의 로마사 강의를 듣지 않은 세드윅도, 그의 커닝을 도와주는 젊은이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퀴즈 대회가 끝난 후 상원의원 출마를 선언하는 세드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헌더트는 그의 교육이 세드윅에 관한 한 완전히 실패하였음을 자인한다.

헌더트는 세드윅 때문에 등외로 밀려났던 마틴 블라이스에게 25년 전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이 제자는 도리어 헌더트가 추천서를 잘 써준 덕분에 좋은 학교에 진학했음을 감사히 여긴다고 말한다. 학교에 돌아온 헌더트의 클래스에 새로운 전입생이 들어온다. 바로 그가 물 먹였던 제자가 그의 아들의 인격형성을 은사에게 맡겨온 것이다.

감상의 포인트

The Emperor's Club 영화에서처럼 시험을 보는데 커닝을 하는 학생이 있다고 하자. 헌더트가 아닌 보통의 선생이라 해도 심적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물론 학교에서는 엄정하게 시험을 관리할 것을 촉구한다.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시험이 시작하기 전에 부정행위자는 가차없이 학칙에 따라 처리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행여 유혹을 받지 않도록 감독도 철저히 하지만 기발한 수법으로 커닝을 시도하는 학생들은 도저히 막을 수 없다. 영화 속에서 세드윅은 고교 시절에 토가 밑에 붕대를 감고 커닝 페이퍼를 써놓았으며, 25년 후에는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을 고용하여 무선연락으로 커닝을 한다.

시험 중 부정행위를 하다가 현행범으로 적발되면 답안지를 몰수하고 해당 학생을 징계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교육의 장에서는 학칙대로 집행하기가 힘들다.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이 일을 계기로 다시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도록 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헌더트는 세드윅이 어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공부에 자신감을 갖도록 하기 위해 규칙을 무시하고 도서대출을 받게 해주는가 하면, 퀴즈 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학점을 올려주고 심지어는 퀴즈 시합장에서 공개 리에 망신 주는 것조차 주저한다.

교사(교수)와 학교의 권위가 학생들은 물론 사회로부터 존중을 받는다면 학내 문제에 법이 개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첫머리에 소개한 학점 스와핑 사건의 경우와 같이 학교에서 추상같은 처분을 내리더라도 당사자들이 이 문제를 법정으로 들고 가지 않는 이유는 모두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판단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사제지간이 인격적으로 맺어지기보다 일종의 계약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교수의 해임, 성희롱 같은 학내 문제를 둘러싸고 소송이 벌어지기 일쑤이고 중·고교에서는 체벌을 가하는 선생을 학생이 경찰에 고발하는 사건도 종종 발생한다.

교육현장에는 가지각색의 학생들이 찾아온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설령 부정행위가 있더라도 정의의 실천 이전에 교육의 목적부터 생각하게 된다. "품성이 운명을 지배하고, 교육은 품성을 개조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헌더트 뿐만이 아니다. 그렇기에 교사는 알고도 속아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에단 캐닌의 단편 소설 [궁정 안의 도둑](Palace Thief)이라고 하는데 영화 속에 헌더트의 교육철학은 잘 드러나 있어도, 인생철학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교장인 그가 신입생을 많이 유치하고 학교 재정상태를 개선하지 못해 재단이사회에서 해임되는 것이나, 그가 짝사랑하던 여교사 엘리자베스와 헤어지고 나중에 재회하는 것을 고지식한 성격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헌더트는 학생들과 야구를 하다가 그가 친 공이 교장 승용차의 유리창을 깨뜨리자 학생들과 함께 도망치는 익살스러운 면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