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퓨 굿맨

1992년 컬럼비아 영화사가 제작한 '어 퓨 굿맨(A Few Good Men)'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진실의 발견과 애국심, 조직의 단합 등 추상적 개념이 난무하는 이 영화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미저리',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를 연출한 로브 라이너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 영화는 헐리우드가 제작한 다른 법정영화와 마찬가지로 정의감에 불타는 변호사가 등장하여 진실을 은폐하고 권력과 재물을 탐하는 악당을 쳐부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국식 司法正義가 정답으로 제시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과연 그러할까' 하는 의구심이 고개를 쳐든다. 톰 크루즈와 데미 무어가 남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잭 니콜슨을 거꾸러뜨리는 것은 또 한 편의 '배트맨'을 보는 것 같다.

영화의 줄거리

쿠바 관타나모에 있는 미 해병대 기지에서 한 사병이 기합을 받다가 사망한다. 범인으로 체포된 두 사병의 변호를 신청한 법무관 조안 갤로웨이 소령(데미 무어)에 대해 해군 법무감은 다니엘 캐피 중위(톰 크루즈)가 이 사건을 맡도록 조치한다. 결국 캐피 중위의 동료 법무관과 3인이 한 조를 이루어 도슨 상병과 다우니 일병의 변론을 맡게 된다.

캐피 중위는 사건에 진지하게 매달리기보다는 검찰관과 적당히 타협(bargaining)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일에 능하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해군에 입대한 그는 9개월 동안 44건의 사건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고 야구연습을 더 열심히 하고 있다.

이 사건에 있어서도 크게 일을 벌이지 말 것을 종용하는 검찰관 잭 로스 대위(케빈 베이컨)로부터 20년형을 12년으로 감형해주기로 약속을 받아낸다. 그러나 갤로웨이 소령은 그의 등을 떠밀다시피 하여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게 한다.

관타나모 해병기지 사령관 제섭 대령(잭 니콜슨)은 월남전 참전경력을 가진 군인정신에 투철한 사람이다. 금명간 대통령 직속의 국가안보회의에 영전해 가기로 내정되어 있다. 그의 관점에서는 구보에서도 낙오하고 꾀병을 피우며 전출이나 원하는 산티아고 일병(피해자)은 정신이 번쩍 들게 기합을 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관타나모에서 부적합한 사람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이므로 바로 여기서 잘 훈련된 프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는 산티아고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자는 의견을 묵살하고 소대장으로 하여금 그에게 손좀 봐주라고 지시한다.

갤로웨이 소령은 이 사건은 해병대의 고질적인 기합(Code Red)으로 야기되었다고 보고 피의자인 두 사병을 설득한다. 캐피 중위가 볼 때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신조에 충실한 확신범이다. 그들의 신조란 자신의 소속부대와 해병대, 하나님, 조국에 절대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갤로웨이 소령과 캐피 중위는 관타나모에 출장을 가서 제섭 대령을 면담한다. 제섭 대령은 적진에서 300m 밖에 안 떨어진 곳에서 복무하는 장병들의 긴장상태를 강조하면서 산티아고 일병이 전출을 희망하는 탄원서를 여기저기 보낸 것을 알고 그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전출시키기로 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미녀 상관처럼 섹시한 사람은 없다"며 캐피 중위더러 그녀와 일을 만들지(blowup) 못하면 인생을 헛사는 것이라고 노골적인 충고까지 한다. '코드 레드'를 추궁하는 갤로웨이 소령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는 금지하고 있지만 자기가 안 보는 데서 행하여지는 기합은 훈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묵인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사건이 너무 진지하게 진행되자 검찰관측은 우발적인 살인으로 2년 구형을 할 터이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자고 제의해 온다. 그러나 두 해병 사병은 자신들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므로 6개월후의 석방을 위해 죄를 뒤집어쓰지는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딜레머에 빠진 캐피 중위를 보고 갤로웨이 소령은 "당신은 어떻게 이길 수 있는지 잘 안다"고 부추겨 법정에 나가게 한다.

캐피 중위로서는 두 사병이 코드 레드를 지시 받고 살인의 의사 없이 명령받은 대로 행동에 옮긴 것이므로 무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섭 대령이나 소대장이 그런 명령을 내렸다는 것을 입증할 길이 없어 답답해 한다. 결국 전투경험이 있는 남녀 장교 9명으로 구성된 배심원 앞에서 군법회의가 열린다.

그 무렵 관타나모 기지의 부사령관이자 제섭 대령의 사관학교 동기인 마킨슨 중령이 근무지를 무단이탈하여 워싱턴으로 온다. 마킨슨 중령은 캐피 중위를 만나 "전출명령은 없었다, 다음날 비행기 시간도 속인 것이다"라고 귀띔을 해주지만 법정에 나가 상관의 비행을 폭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시내 호텔에서 경찰의 보호를 받고 있던 그는 피해자인 산티아고 일병의 부모에게 혹독한 기합을 막지 못한 잘못을 사죄하며 자결한다.

유력한 증인을 잃은 캐피 중위와 갤로웨이 소령은 제섭 대령을 증인으로 소환하고자 하나, 유능한 해병장교를 모함했다는 누명을 쓰고 되레 처벌을 받아야 할 판국이다. 그때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가 착안한 것은 관타나모 기지내의 피해자 옷장에 사물이 그대로 있었다는 것은 전출명령을 받지 못했던 증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제섭 대령의 군인 기질을 역으로 이용해 그가 명령한 것을 실토하도록 법정에서의 작전을 짠다. 군법회의 법정에서 제섭 대령은 흥분한 나머지 자제력을 상실하고 캐피 중위의 유도신문에 넘어가 그를 훈계한다는 것이 그만 자신의 잘못을 자백하고 만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이를 어떻게 입증하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캐피 중위와 갤로웨이 소령의 노력은 제섭 대령이 산티아고 일병의 전출을 명령한 적이 없었고 전출명령서도 사건이 발생한 후에 허위로 작성된 것임을 밝혀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캐피 중위가 법정에서 제섭 대령에 대해 군법회의 증언차 쿠바에서 워싱턴에 날아올 때 여러 군데 전화한 것을 캐물었던 것도 이튿날 새벽 전출되어 떠날 산티아고 일병의 옷장에 옷이 그대로 걸려 있던 것이나, 십수 군데 전출탄원서를 보낸 사람이 전출명령을 받고 나서도 외부에 전화 한 통화 건 사실이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는 간접적인 정황증거(circumstantial evidence)에 불과하다. 사령관을 잡아 넣으려면 보다 결정적인 증거, 유력한 증인이 사라진 형편이니 본인의 자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캐피 중위는 손자병법에 나오는 유인계를 쓴다. 직선적이고 다혈적인 제섭 대령의 성질을 건드려 스스로 특수기합을 지시했다고 실토하게 만든다.

결국 의기양양하던 제섭 대령은 졸병 한 사람을 죽게 만든 죄로 구속된다. 며칠후면 대통령 직속의 국가안보회의에서 일할 사람이 큰 벌은 받지 않겠지만 불명예 제대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은 조직의 관리가 중요한가, 개인의 인권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였다. 제섭 대령은 국가관, 안보관이 투철하고 해병대를 자기 목숨처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반면 산티아고 일병은 구보훈련에서도 낙오되기 일쑤였고 같은 소대의 전우를 고자질한 사람이었다. 어느 모로 보아도 군대내에서 제 구실을 못하는 사병이었다. "만일 이런 병사를 대접하면 누가 전쟁터로 나가겠느냐" 이 문제는 영화 '패튼 대전차군단'에서 패튼 장군이 야전병원을 돌아보던 중 전투 노이로제에 걸려 입원한 젊은이의 뺨을 때렸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는 장면에서도 다루어진 바 있다.

제섭 대령은 그를 사나이답게 만들려고 불법화되긴 하였지만 해병대의 '사나이 만들기 기합'을 주라고 말했던 것이다. 결코 그를 살해하라는 의도로 기합을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 관할 함대사령관이 코드 레드를 금지하면서 어떠한 벌칙을 내걸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軍刑法을 보면 군대내의 기합은 그것이 상관이나 초병에 대한 폭행·협박이 아닌 한 가혹행위(제62조)의 하나로 처벌(5년 이하의 징역)될 뿐이다.

끝으로 이 영화는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았어도 조직 내부의 비리를 고발하는 사람(영어에서는 'Whistleblower'라 함)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산티아고 일병은 경계선(fenceline)을 넘어 총격을 가해서는 안되는 수칙에도 불구하고 도슨 상병이 밖을 향해 사격을 한 적이 있다고 폭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善惡과 正邪의 대립구도를 보여주기보다는 군대와 같은 조직사회의 상명하복 관계가 狂氣로 흐를 수 있다는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오늘날에는 사교집단과 같은 조직이 그 얼마나 많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