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Iris 리처드 에어 감독의 영화 "아이리스"는 아이리스 머독(1919∼1999)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아이리스 머독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던 영국의 고전작가이자 철학자였다. 알츠하이머 병(노인성 치매)으로 3년여 고생하던 아이리스가 1999년에 죽자, 그녀의 남편인 존 베일리가 아내를 생각하며 쓴 책, [아이리스 머독의 회상](Iris: A Memoir of Iris Murdoch), [아이리스를 위한 엘레지](Elegy for Iris)가 바탕이 되었다. 옥스포드 대학 교수를 역임한 존 베일리는 아이리스의 분방한 교우활동에 관하여 [아이리스와 친구들](Iris and the Friends)이라는 책도 썼으니 그로서는 반평생을 함께 한 아내에 대한 애정이 매우 극진했던 모양이다. 존과 아이리스는 프랑스의 샤르트르와 보봐르에 비견되는 영국 최고의 지성인 커플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 속에서 아이리스는 'dog'라는 글자를 보고 'god'라고 읽는가 하면 드라이버 그림을 보고 칫솔이란 단어도 생각해내지 못해 이 닦는 물건이라고 대답하는데, 그녀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철학교수를 지낸 저명한 학자였다. 그녀는 35세 때 첫 소설 "그물 아래"(Under the Net)로 화제를 모았고 1996년 치매가 엄습할 때까지 모두 25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바다여, 바다여"(The Sea, the Sea)로 1978년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 부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의 줄거리

이 영화는 1950년대 옥스퍼드 대학 캠퍼스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아이리스 머독과 영문학을 가르치던 존 베일리가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누는 러브 스토리와 아이리스가 77세에 치매에 걸려 '교육'(education)이라는 단어조차 잊어버린 상황을 교차 대비시키고 있다.

Young Iris 뛰어난 지성과 미모를 자랑하는 30대의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와 대소변도 분간 못하는 말년의 아이리스(주디 덴치)가 동일한 배경 속에서 40년의 세월을 오가며 교대로 등장한다. 아이리스와 존은 산책을 하다가 알몸으로 연못에 뛰어들어 수영도 하고, 숲길을 자전거를 타고 나란히 달리기도 하며 바닷가에서 로맨틱하게 데이트를 즐긴다. 40년 후 똑 같은 장소에서 아이리스는 정신없이 길을 헤매거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노파로 나온다. 그것은 아내의 치매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존이 아내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하여 두 사람만의 추억 어린 장소를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존 베일리 역시 아이리스의 매력에 푹 빠져든 수줍음 잘 타는 대학교수(휴 본빌)와 헌신적인 남편(짐 브로드벤트, 이 영화로 2002년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 수상)의 모습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소심한 그는 젊어서는 아이리스의 자유분방함과 성격 차이 때문에 가끔씩 속도 상하지만 그녀의 총명함과 재기발랄함을 그림자처럼 돌보아준다. 만년의 존은 사랑과 질투가 오간 과거를 회상하면서 지극한 부부애로서 병든 아내를 지킨다.

치매에 걸린 아이리스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가 정신없이 거리를 방황하자 이제 할아버지가 된 존은 할 수 없이 아이리스를 노인 요양원에 맡긴다. 그곳에서 몇 년을 지낸 아이리스는, 존이 상상하기에, 춤추는 옛날의 모습을 하고 세상을 뜬다.

감상의 포인트

Old Iris 이 영화는 얼핏 보면 치매에 걸린 노인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국가와 사회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듯하다. 말년의 아이리스한테서는 재기발랄하던 옛 모습은 전혀 찾을 길이 없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오늘날 치매노인은 심각한 가정문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젊어서 권위가 있던 할아버지, 인자하던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니 인격파탄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부모, 조부모를 대하는 가족들에게는 형벌이 따로 없다. 마침내 병든 노인을 돌볼 수 없게 된 가족이 더 이상 부양을 포기할 때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65세 이상의 노령 인구가 10%에 육박하면서 노인 의료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한다. 도시화, 핵가족화 현상으로 이제는 가정에서 치매노인을 돌보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행동성 치매환자가 집에 홀로 있다가 가출하거나 가스나 수도를 틀어놓는 바람에 심각한 사고를 일으키기도 쉽다. 급기야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게 되어 독거노인, 치매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비용이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이다. 우리 정부에서도 병든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비용이 저렴한 노인 요양소를 많이 세우기로 했다고 한다.

반면 재산이 있는 노인층은 자력으로 여생을 보낼 준비를 하는 것이 하나의 풍조가 되었다. 주방이 필요 없는 노인 아파트에 입주한다거나, 자녀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쇼핑할 물건을 집으로 배달시키거나 방문 간호(介護)를 해주는 사람을 고용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노인층을 주된 고객으로 하는 실버산업이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를 주의 깊게 보면 노인 문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여성의 빛나는 지성을 사랑했던 남자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의 정신세계가 조금씩 파괴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끼는 처절한 감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좀더 생각해보면, 풍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케이트 윈슬렛과 아름답지는 못해도 강한 개성을 과시하는 주디 덴치가 상반된 배역을 맡은 것처럼,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잔영(殘影)을 극명하게 대비시킴으로써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빛이 바래는 것이 어찌 사람뿐이랴. 시대의 변천에 적응하지 못하는 법과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과학기술의 진보가 눈부신 디지털 시대에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법령은 무기력하고 심지어는 모순 가득한 모습을 보여준다.

Happy Days 2002년 12월은 우리 국민들에게 여러 모로 뜻깊은 시간이다. 5년 전에는 미증유의 국가부도 위기를 당하여 경제문제의 해결에 자신 있다는 새 대통령을 선출한 기억이 새롭다. 5년을 상거한 지금은 온 국민의 기대를 모으고 등장한 대통령이 권위도 권력도 사라져버리고 쓸쓸히 퇴장할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한다.

실제로 존 베일리는 죽은 아내를 위하여 여러 편의 책을 썼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아이리스 머독이 젊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새 대통령을 환호하며 맞이하기 전에 여러 가지 훌륭한 치적과 아름다운 전통을 남기고 퇴장하는 전임 대통령에게도 박수갈채를 보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존 베일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된 아이리스 머독의 모습은 젊은 시절, 시대를 앞서간 정신과 학문적 탐구열로 가득 찬 아름다운 지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영화에서 또한 눈 여겨 볼 대목은 편집의 유려함이다. 오프닝 크레딧에 나오는 물(waters)은 자유분방한 사고를 하는 아이리스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치매에 걸리기 전후의 아이리스와 40여년 전 결혼 전후의 아이리스의 삶을 교차해가며 보여주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고 리드미컬하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등으로 알려진 마틴 월시의 편집이 그만큼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