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

실체적 진실발견은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 오늘날 국가 형벌권을 전제로 민완 수사관들이 과학적인 수사기법을 동원하여 범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처음부터 일정한 한계를 긋고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정치권력이나 이데올로기가 개재된 사건인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2001년 신년 벽두에 터져 나온 안기부자금의 정치권 유입설이 단적인 예이다. 현재 검찰이 성역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으나 전직 대통령이나 현 야당총재를 사법처리하는 데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데올로기가 개재된 사건으로는 비록 영화 속이기는 하지만 "공동경비구역 JSA"의 초병살해 사건이 있다. 관객은 다 알게 된 진실이지만 남북 갈등구조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만다.

영화의 줄거리

JSA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 JSA)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측 초소에서 북한군 초병과 장교가 총격을 받아 죽고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용의자인 남한 병사는 다리 위 남북분계선 상에서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된다. JSA내 총격사건을 둘러싸고 북한은 남한측의 기습 테러 공격으로, 남한은 북한측의 납치설로 규정짓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한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남·북한은 스위스와 스웨덴으로 구성된 중립국 감독위원회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합의한다. 이에 따라 스위스 법무장교인 한국계 소피 장(이영애) 소령이 JSA에 파견된다.

남자들만의 얽히고 설킨 사실관계 속에 여성 수사관이 등장하여 진실을 파헤친다(본란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A Few Good Men"의 데미 무어와 흡사하다). 소피 장 소령은 남과 북 관계당국의 비협조와 사건 당사자인 남한의 이수혁(이병헌) 병장과 북한의 오경필(송강호) 중사의 상반된 진술에 당혹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최초의 목격자인 남성식(김태우) 일병의 진술에 의혹을 느끼고 수사를 주변인물로 확대시켜 나간다.

소피 장 소령은 용의주도한 증거물 조사와 시체부검을 통해 현장에서 사라진 총알 하나와 찢어진 사진을 단서로 이데올로기의 알력 속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탐지해낸다. 그러던 중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남성식 일병이 돌연 투신자살을 기도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한측은 소피의 아버지가 과거 한국전에 참전했던 인민군 장교였음을 폭로하여 중립국 감독위원회로 하여금 소피 장을 전격 해임하도록 한다.

이 영화는 미스테리 기법으로 진행된다. 남한의 이수혁 병장은 왜 북한 초병을 쏘았을까? 최초 목격자인 남성식 일병은 왜 자살을 기도했을까? 그리고 북한의 오경필 중사는 무엇을 숨기고 있을까? 이수혁 병장과 오경필 중사의 대질신문에서 오 중사가 분노를 폭발시키고 이 병장에게 폭력을 휘두른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사실이 밝혀진다. JSA 수색작전 중 대인지뢰를 밟은 이 병장을 오 중사가 구해준 것을 계기로 이들은 사이가 가까워져 친구가 된다. 이 병장은 김 일병을 데리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의 북한 초소를 여러 차례 방문하고 초코파이와 카세트 테이프를 선물하고 함께 술을 마시며 탄환을 가지고 공기놀이를 하는 등 노닥거린다. 어느 날 불시에 초소에 순시를 나온 인민군 중위에 현장을 들키자 서로 권총을 들이대고 대치해 있던 상황에서 총격사건이 벌어지고 만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병장의 위장 월북 아니면 침입자(?)인 인민군 중위를 처치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소피 장을 만난 이 병장은 진상이 밝혀지면 오 중사가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돌발적인 행동을 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의 제목인 '공동경비구역 JSA'는 1954년 11월 8일 유엔과 북한간의 협정에 따라 만들어진, 군사분계선 상의 회담장을 중심으로 한 반경 400m의 圓形지대를 말한다. 양측은 당시 남북 4Km의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정전위 본부지역을 설정하면서 그 안에 공동경비구역을 두기로 합의했다. 1976년까지만 해도 군사분계선이 없어 양측 경비병과 기자들이 자유롭게 통행했으나,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 터지자 양측 군인들 사이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표시하고 이를 경계로 양측이 나누어 경비를 서게 되었다. 현재 우리 지역은 유엔 직할 공동경비구역 경비대가, 북한 지역은 인민무력성 직할 경비대가 경비를 맡고 있다.

따라서 양측 병사가 FM(field manual) 대로 행동하였다면 이 영화 같은 상황은 벌어질 수 없다. 소설가 박상연의 원작 "DMZ"를 토대로 박찬욱 감독과 원작자 외에 스텝 작가, 월남 귀순용사(정성산)까지 가담하여 미스테리物로 시나리오를 다듬었다고 하는데, 법(초병수칙)과 원칙(실체적 진실발견)은 동포애 앞에서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밀려나 있다.

이수혁 병장이 오경필 중사에게 전쟁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우리는 서로 쏘지 말자"고 제의하자 오 중사는 우리가 서로 총을 쏘기도 전에 전략폭격기가 이 일대를 초토화해버릴 것이라고 내뱉는다. 남한 병사가 북한 초소를 방문하는 장면이나 이런 식의 영화대사만 가지고 보면 이 영화는 國家保安法이 엄존하는 상황 하에서 누가 主敵인지 혼돈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강제규 감독의 '쉬리'가 세운 기록을 1년여만에 갱신했다 하여 화제가 되었다. 제작비 30억원 등 총 45억원을 개봉 118일째인 2001년 1월 4일 서울에서만 24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한다. 영화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양수리 종합촬영소에 판문점의 오픈세트를 정밀하게 재현하고, 할리우드 대작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수퍼 35mm 사이즈로 제대로 된 시네마스코프(영화 화면의 가로, 세로 비율이 기존 1.85:1 보다 훨씬 넓은 2.35:1)를 보여준 것도 화젯거리였다.

그러나 이 영화에 수많은 관객을 끌어모은 것은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 이슈나 물량공세가 아니라 동포애를 자극하는 원초적 感性이었다. 왜냐하면 판문점이나 전방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도 최전방의 상황은 익히 알고 있고, 요즈음 천문학적 제작비를 투입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트 영화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감동시킨 것은 비록 총부리를 겨누고는 있지만 북한의 병사들도 우리와 말이 통하고 감정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점이다. 북한의 오 중사가 지뢰를 밟은 이수혁 병장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나, 초코파이를 먹으며 즐거워하던 모습, 그리고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한 대사 "['이등병의 편지'를 부른 김]광석이는 왜 이렇게 일찍 죽었나"라고 말한 것은 50년 이상 갈라진 분단의 벽도 쉽게 허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비록 우리끼리의 해석이라 해도, 따라서 이러한 미묘한 정서가 외국의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다른 사람들도 보게 만든 요인은 그러한 우리의 소박한 바램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후반에서 남한의 두 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것도 진실이 밝혀짐으로써 우리와 '한 마음, 한 핏줄'임을 일깨워준 오 중사에게 혹시 위해가 닥칠 것을 두려워한 탓이었다. 남과 북 그리고 주변 국제정세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움직일지 몰라도 남과 북의 젊은이들은 서로를 위해주는 마음으로 진실마저도 자기 몸으로 덮어버리려는 용기를 갖고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실체적 진실발견이란 형사처벌 따위는 물론 자신의 생명마저도 가볍게 여길 무엇인가에 의하여 항상 은폐될 가능성을 안고 있는 매우 취약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