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블 - 베어링을 쓰러뜨린 한 젊은이의 무모함

이 영화(감독 제임스 디어든)는 세계 금융시장을 경악케 한 실존인물을 다루고 있다. 바로 유서 깊은 영국의 머천트뱅크 베어링스를 도산으로 몰고 간 니콜라스("닉") 리슨이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는지 사건의 전말을 보여준다.

Rogue Trader 마침 TV에서는 어느 겜블러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린 드라마 "올인"이 인기를 끌고, 매주 온국민은 누가 수십-수백 억원을 거머쥐고 '인생역전'에 성공하는지 '로또'의 결과를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이러한 사정 탓인지 "겜블"(원제는 "Rogue Trader")은 비록 1999년에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지금 보아도 리얼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줄거리

영국의 베어링(Bearings) 사는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 주를 사들일 때 매입자금을 빌려주기도 한 2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머천트 뱅크(우리나라의 종합금융회사에 해당)이다. 분위기부터 귀족적인 이 회사에 입사한 고졸 출신의 닉 리슨(이완 맥그리거)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점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산처럼 쌓인 인도네시아 국채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매우 따분한 일이었지만 리슨은 단시일에 깔끔하게 처리하고 회사에도 상당한 수익을 안겨준다.

리슨은 귀국하지 않고 싱가폴 지점을 자원한다. 동남 아시아는 이제 막 떠오르는 신흥시장(Emerging Market)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었다. 리슨은 층층시하의 런던 본사에서 근무하기보다는 싱가폴에서 증권거래를 하면서 좋은 실적을 올리고 출세하는 꿈을 꾼다. 학벌도 보잘 것 없는 영국의 하층민 출신이 싱가폴에서라도 귀족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리슨이 팀장을 맡은 베어링 사의 선물거래팀은 싱가폴 증권거래소(SIMEX)에서 주가지수선물을 거래한다. 리슨은 현지채용 직원들을 지도해가면서 수익을 올리려 하지만 업무에 미숙한 여직원의 실수로 손실을 내자 지점장은 그녀를 당장 해고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리슨은 부하직원을 감싸주며 에러 어카운트를 하나 개설한다. 재복이 있다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8'자 네 개를 암호로 쓰는 이 계정은 가상 고객과의 거래계좌인 것처럼 해놓고 손실을 결제일까지 잠시 숨겨놓는 데 이용하기로 한다.

회사 동료와 인도네시아 국채를 함께 처리하면서 연애관계로 발전하여 결혼까지 하게 된 리슨은 아내 모르게 불법 거래를 하는 것이 마음 쓰인다. 그러나 조만간 큰 이익을 내어 만회할 생각으로 본사에 선물거래증거금(margin call) 증액을 요청한다. 리슨이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본사의 지원이 잇따르고 큰손 투자자들이 리슨의 단골고객이 된다. 마침내 일본의 닛케이 225 주가지수선물 거래를 한 것이 용케도 닛케이가 폭등하는 바람에 리슨은 은폐해놓은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을 정도의 대박을 터뜨린다. 크리스마스 때 그는 마치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며 파티를 벌인다.

리슨은 일약 SIMEX의 스타가 되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주목대상이 된다. 싱가폴 지점이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두자 1994년 여름 런던 본사에서 감사를 나와 리슨 혼자서 거래와 백오피스의 책임자로 되어 있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의 기자도 리슨의 투자행태에 의문을 품고 인터뷰를 요청하나 리슨은 애써 그를 피한다. 엄청난 물량을 리슨이 시장에 쏟아내고 거두어들이고 하는데 그 고객이 누구인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리슨이 감춰놓은 에러 어카운트의 잔액이 77억8천만엔에 이르고 마진 콜을 채우는 것도 힘에 겹다. 닛케이 지수가 급등하여 그 동안의 손실을 일거에 만회할 수 있기를 고대하지만 좀처럼 그러한 기회는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리슨의 선물거래팀은 본사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리슨은 연차총회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 이른바 정보곡선(information curve)을 이용한 차익거래(arbitrage)로 회사에 많은 수익을 안겨준 데 대하여 경영진의 찬사가 쏟아진다.

그렇지만 증권거래소 측에서 리슨의 규정위반 사례를 지적하고,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여자손님들을 놀래주려고 엉덩이를 보인 것이 싱가폴 당국에 풍속사범으로 걸려 고액의 벌금형을 받는다. 리슨의 부인이 유산한 것은 그의 인생에 큰 전기가 된다. 겉으로는 베어링 그룹 총수익의 1/5을 올리고 보너스를 35만달러나 받게 되었지만 리슨의 속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다행히도 엉덩이 희롱사건은 벌금형으로 끝나고 분명히 베어링 직원으로서 품위를 잃은 행동으나 회사에서는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감사를 담당하는 쿠퍼스 앤 레이브랜드(C&L) 회계사의 눈을 속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고객 중의 하나인 SLK의 서류를 위조하여 거래를 가장한다.

그러나 1995년 1월 리슨에게 재기 불능의 재앙이 닥친다. 닛케이 주식이 폭등해도 부족한 참에 고베 지진이 발생하여 동경 증시는 마비상태에 빠지고 리슨이 집중적으로 투자한 금융상품은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손해액이 7천8백만 달러에 이르자 리슨은 사태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의 부인이 싱가폴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이사짐을 꾸릴 때 리슨도 도피할 작정을 한다. 그들 부부가 인도네시아의 어느 리조트로 잠적했을 때 유서 깊은 베어링 사는 싱가폴의 깡패 거래원(rogue trader)의 부정거래 때문에 10억 파운드 이상의 손실을 내고 만다. 영국의 중앙은행도, 부르네이 왕도 구제금융을 거절하자 베어링의 최고경영자는 눈물을 머금고 지급불능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베어링 그룹은 네덜란드의 금융보험 그룹 ING사에 단돈 1 파운드에 팔린다. 그리고 전세계에 지명수배된 리슨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는 즉시 독일 경찰에 체포되어 싱가폴로 압송된다. 그는 싱가폴 법원에서 사기, 문서위조, 신탁업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징역 6년6월을 선고받지만 암이 발병하는 바람에 4년 반만에 가석방되어 나온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가 다루는 사건은 1995년 초에 싱가폴에서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먼 옛날 이야기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 사이에 은행의 리스크 관리체계가 대폭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 사람이 거래도 하고 결제도 하는 그런 프리미티브한 조직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감옥에 갇힌 닉 리슨 실제로 리슨은 동경 주가가 일정 범위내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예상 하에 '숏 스트레들'(short straddle)이라는 투자전략을 구사하여 '닛케이 225' 주가지수선물에 집중 투자하였다. 이것은 풋 옵션과 콜 옵션을 동시에 매도하는 파생상품 투자전략이다. 풋 옵션의 매도는 지수를 일정 가격에 사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므로 시장에서 지수가 일정 가격 이상 오르면 매입할 필요가 없어 매도한 만큼 이익을 본다. 반대로 콜 옵션의 매도는 지수를 일정 가격에 팔아야 하는 의무를 지는 것으로 시장에서 지수가 일정 가격 이하로 내리면 매도한 만큼 이익을 얻는다. 이러한 투자는 지수가 예상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매도한 만큼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면 엄청난 손해를 입게 된다. 게다가 리슨은 선물거래 증거금을 7%만 걸어도 되는 것을 기화로 투기적인(high leverage) 거래를 했기 때문에 손실은 14배 이상으로 증폭되었다.

리슨은 1994년 말 닛케이 지수가 1995년 3월말까지 18,500∼19,500의 박스권을 형성할 것으로 보고 지수를 팔 수 있는 풋 옵션과 지수를 살 수 있는 콜 옵션을 동시에 44천 계약(36억 달러 상당)이나 매도하였다. 숏 스트래들 거래를 시작한지 1개월이 지난 1995년 1월 고베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닛케이 지수는 17,000대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리슨은 옵션 매각대금으로 닛케이 지수를 지탱해보려 하였지만 주가하락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결국 베어링 사의 손실은 3월물 선물계약 결제일을 지나면서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로 인해 베어링 그룹은 사실상 파산하고 말았다.

베어링 사의 금융사고는 많은 교훈을 안겨주었다. 비록 파생상품 거래가 '수퍼스타 비즈니스'이기는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각국의 금융당국은 특정인에게 거래와 결제를 맡기지 말고 거래담당자와 결제부서, 위험관리부서를 엄격히 분리하여 내부통제를 강화하도록 했다. 또 거래권한을 명시하고 신용한도, 익스포져 등을 감안하여 거래의 승인권자를 따로 두는 동시에 감독법규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였다. 무엇보다도 경영진이 담당자의 일시적인 성공에 눈이 어두워 위험한 거래를 눈감아주는 일이 없도록 했다.

이 영화는 아무리 동료를 돕고자 한 것이라지만 법규를 어겨가면서까지 투기적인 거래를 한 것은 용납될 수 없음을 웅변으로 가르쳐준다. 겉으로는 엄청난 실적을 올린 주인공이 불안에 떠는 모습은 연민의 정마저 자아낸다. 하지만 세상에는 일을 그르쳤을 때의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레드라인을 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비록 그 동기가 동료애, 가족애, 동족애 등 선한 것에서 출발하였다 하더라도 그가 속한 조직에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한 달도 못되어 끝난 이라크 전쟁도 그렇다. 이슬람의 자존심, 석유주권의 확보를 기치로 내건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미국에 대항하여 끝내 전쟁을 자초하는 레드라인을 넘었다. 결국 사담 후세인은 국민들을 전쟁의 구렁텅이에 쳐 박고 아무런 흔적도 없이 조국을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