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아웃 라우드

리스트러처링의 시대에 발상의 전환은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내는 발명가나 광고문안을 작성하는 카피라이터에게만 필요한 것인가. 아니다. 직장을 찾거나 배우자를 고르는 사람들도 눈높이를 낮춰보라는 충고를 듣곤 한다.

눈높이를 1 센티미터 낮추면 세상이 달라져 보이고 그에 따라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들 말한다. 필자가 1999년 3월 해외여행을 할 때 기내에서 관람하였던 신작영화(국내 미개봉, 리차드 라 그라비니즈 감독 연출 및 시나리오, 워너브로스 배급) "Living Out Loud"(틀에 박힌 '인생에서 벗어나 소리치며 살라'는 의미)는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기내의 좁은 스크린에서는 결혼 20년만에 파경을 맞은 한 중년여인이 눈높이를 낮추는 방식으로 새로운 인생에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본디 좁은 기내 좌석에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영화의 줄거리

맨해탄(센트럴 파크 동편의 Upper East)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주디스(홀리 헌터 분)는 남편(마틴 도노반 분)에 대한 불만이 폭발직전에 이르렀다. 남편이 고명한 신경외과 의사이고 남들이 부러워 하는 풍족한 생활을 하지만 인생이 텅 빈 것처럼 몹시 허전하다. 아이갖기를 싫어하고 부부만의 생활을 고집하던 남편이 젊은 여의사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주디스는 부자동네의 위선적인 삶에 진저리를 친다.

바로 이 고급아파트의 경비원(데니 드비토 분)은 25년의 결혼생활 끝에 부인에게 이혼 당하고 하나 뿐인 딸도 병으로 죽은 이태리계 중년남자이다. 그는 친구들과 카드놀이 하는 것을 즐기지만 항상 빚에 쪼들린다. 술집을 하는 동생 집에 얹혀 살아도 바텐더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홀로 식사를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온 주디스는 매우 처참한 기분이 든다. 남편이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한 데다 고아를 입양하려 해도 마약에 중독된 아기일 것같고, 바람을 쐬러 창문을 열면 자살충동이 일 것만 같다. 남편이 떠나자 친구들도 주변에서 사라지고 마치 정신병자가 된 기분이다.

그녀는 기분전환을 위해 어퍼 이스트의 한 클럽에 들러 술을 마시다가 흑인 여가수(퀸 라티파 분)의 노래에 매료된다. 화장실을 찾아간 그녀는 내실(private)에서 어느 낯선 남자로부터 기습 키스를 당한다. 이 남자는 주디스를 이곳에서 밀회하기로 한 유부녀로 착각한 것이다. 주디스는 용서를 구하는 남자를 박차고 떠나지 못하고 1주일후 다시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마음이 심숭생숭해진 주디스는 엘리베이터로 안내해준 경비원 드비토에게 불면증이 있으니 커피나 한 잔 하자고 초대한다. 가수의 재능을 가진 여고생 딸을 잃은 드비토와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주디스는 서로의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위로한다. 드비토는 주디스에게 남편으로부터 잘 헤어졌다고 말하고 늪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치다 진이 빠진 것이니 새로 일을 시작하면 좋을 것이라고 충고까지 한다. 그리고 한밤중에 직장으로까지 찾아온 빚쟁이한테 돈을 갚으라고 190달러를 빌려준 주디스에게 그는 은근한 호감을 갖게 된다.

그러한 감정은 주디스도 마찬가지이다. 남편에게서는 받지 못했던 편안하고 보호를 받는 느낌을 소중히 여긴다. 드비토는 주디스에게 빌린 돈도 갚을 겸 저녁식사에 초대하려고 동생에게 돈을 타내려다가 신용파탄자라며 오히려 핀잔만 듣는다. 주디스는 드비토에게 포도주를 선물로 받으며 남편과 이혼한 후 안전한 휴식처란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1주일후 그 클럽의 화장실옆 내실로 찾아간 주디스는 문이 잠겨있음을 발견하고 역시 자신이 착각에 빠져 있음을 깨닫는다. 주디스는 화장실에서 흑인 여가수에게 자신의 학업마저 포기하고 남편에게 모든 것을 바친 자신의 인생이 헛것이었다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통곡한다. 남편의 부정을 눈치 채고도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위해 이혼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드비토는 집으로 젊은 마사지사를 부르는 주디스가 매우 못마땅하다. 그리고 서로 호감을 갖고 있는데 저녁식사와 영화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따진다. 이에 대해 주디스는 호감을 갖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다르다고 말한다. 불면증과 혼자 있는 게 싫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눈 것뿐이지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그럼에도 흑인 여가수와 춤을 추러 가기 위해 환각제를 먹은 주디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드비토에게 기습적으로 키스를 한다.

아파트 경비원, 클럽의 여가수와 사귀며 고급 아파트 밖에도 나름대로 가치있는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주디스는 남편과의 위자료 협상에서도 당당하다. 그리고 전원주택 판 돈의 1/2을 내놓기 꺼려하는 전남편의 태도를 보고 그에게 탁자위 컵의 물을 끼얹고 모욕을 준다. 그리고 고급 아파트에서 떠날 생각을 한다. 생활규모를 줄이고 학업을 계속해 소아과 의사가 될 작정이다.

몇 개월후 주디스는 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를 하면서 학업을 계속한다. 전남편과 한 직장에서 일하지만 위축될 게 없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 재능을 발견하게 된 드비토는 클럽 무대에서 가수생활을 시작한다. 각자 틀에 박힌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감상의 포인트 - 발상의 전환과 데닝경에 대한 추모

이 영화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인생의 리스트럭처링을 강요당한 주인공들이 눈높이를 낮춰 새로 인생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눈높이를 낮춘다는 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 영화에서 잘난 남편과 헤어진 여주인공은 다른 주민들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비원과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며 새로운 인생에 눈을 뜨게 된다. 판에 박힌 삶에서 탈피하는 것은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이지만 본인의 감정에 충일을 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례를 답습(stare decisis)하는 법원의 판결이야 말로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것임에 틀림없다. 현재로서는 아무도 이의를 하지 않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판에서는 名判決이 나오기 어렵다. 솔로몬의 재판(열왕기상 3:25)처럼 발상의 전환을 하였을 때 밤하늘을 빛나게 하는 불꽃같은 명판결이 나오는 법이다.

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기내에서 받아든 국내 신문에는 영국 사법계의 거봉 알프레드 톰슨 데닝 남작(Rt. Hon. Lord Denning)이 1999년 3월 5일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는 1단 기사가 실려 있었다. 데닝경은 1982년 은퇴할 때까지 38년 이상을 고등법원과 상원(대법원)에서 봉직하면서 숱한 명판결을 남겼는데, 필자가 미국 로스쿨에서 수학할 때 지도교수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데닝경은 원·피고 뿐만 아니라 방청객들까지 즐겁게 하는(entertaining) 많은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발상의 전환으로 통쾌하게 일반의 상식을 깬 데닝경의 대표적인 판결은 1956년의 수에즈 운하 봉쇄 사건(유제니아호 케이스; Ocean Tramp Tankers Corp. v. V/O Sovfracht, [1964] 1 All E.R. 161)이라 할 것이다.

1956년 러시아 국영무역회사는 리베리아 선적의 유제니아호를 일정 기간 용선하여 흑해 오데사항에서 강철을 싣고 인도로 수출하기로 했다. 당시 오데사에서 인도로 가는 통상적인 항로는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용선자는 선장에게 포트사이드로 24시간내 항해할 수 있는 지점에서 현지 대리인에 전신 연락하도록 했다. 유제니아호는 1956년 10월 30일 포트사이드에 입항했으나, 수에즈 운하 일대는 이집트군이 영국 정찰기를 향해 對空砲를 발사하는 등 명백한 위험지역이었다. 용선계약에 의하면 선주측의 동의를 먼저 얻지 않는 한 선박은 전쟁 등의 사태로 위험에 빠진 지역에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10월 30일 선주측은 용선자의 런던 지사에 대해 선하증권상의 전쟁 조항에 따라 유제니아호를 수에즈 운하에 진입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용선자측은 사태를 낙관하고 오히려 포트사이드 주재원은 유제니아호가 그 다음날 아침 운하로 들어가도록 조치했다. 그 결과 유제니아호는 수에즈 운하에 들어갔다가 영·불 전폭기가 이집트에 대한 공습을 개시하면서 이집트 정부가 운하를 봉쇄하는 바람에 운하 안에 오도가도 못하고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유제니아호는 休戰이 이루어진 한참 뒤인 1957년 1월 8일에야 포트사이드로 회항하여 남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무사히 인도로 갈 수 있었다.

선주측은 일정 기간 용선료를 지급키로 한 용선 계약에 따라 수에즈 운하에 갇혀 있던 기간중에도 정상적인 용선료의 지급을 요구했으나 러시아 무역회사는 戰時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계약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으므로 그 기간중에는 용선료를 지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仲裁人과 1심 법원은 용선자가 용선 계약의 전쟁조항에 위반하였음을 인정하였으나,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사태로 인한 당초 계약목적의 좌절이 있었는지에 관하여는 의견이 엇갈려 결국 영국 고등법원이 이 사건을 다루게 되었다.

이 사건을 심리한 데닝경은 용선 계약이 무슨 사유로 인하여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는지가 문제라고 전제한 후 용선자가 전쟁 조항에 위반하여 수에즈 운하에 들어가 갇힌 것은 自招된 계약목적의 좌절(self-induced frustration)이라고 규정했다. 데닝경은 러시아의 용선자가 운하가 봉쇄되었기 때문에 유제니아호가 희망봉을 돌아가야 했으며, 이는 계약 당시의 사정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므로 계약을 종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하여 이를 불가항력적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데닝경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① 용선된 유제니아호의 항해목적이 제노아에서 출발하여 흑해에서 화물을 싣고 인도로 가서 화물을 인도하는 것이므로, 흑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경유, 인도로 가는 항해일수 26일과 희망봉을 돌아가는 56일을 비교할 게 아니라 제노아에서부터 계산한 108일과 138일을 비교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계약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결정적이라고 할 수 없다. ② 화물이 강철이므로 다소 항해가 지연된다 해도 손상되지 않으며, 早期인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희망봉을 돌아가는 코스를 택하더라도 선박 및 선원에게 전혀 무리가 없었다. ③ 운하봉쇄 당시 화물은 안전하게 적재되어 있었으며 이를 포기할 상황이 아니었다. ④ 희망봉을 돌아가는 항해 코스는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일 뿐 중대한 차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위의 논리를 앞의 영화에 대입하여 본다면 인생이란 남이 부러워하는 고급주택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인생 전체로 보아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모름지기 법률가는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또 신앙심이 두터웠던 데닝경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Sir Alfred Thompson Denning (1899-1999)
1921 옥스포드 대학 졸업, 1923 Barrister 자격 취득, 1938 King's Counsel, 1944 High Court 법관, 1948 Lord Justice of Appeal 법관, 1957 Lord of Appeal in Ordinary 상임 上訴귀족, 1962 Master of Rolls(기록장관) 1982 퇴임
저 서: Freedom Under the Law (1949), The Discipline of Law (1979), The Due Process of Law (1980), What Next in the Law (1982), The Closing Chapter (1983), Leaves from My Library (1986)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