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익스프레스

1998년 월드컵 한국-네덜란드戰 킥오프 전에 심야 주말영화로 TV에서 방영된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1978년 콜럼비아 영화사 제작)는 킬링 타임용으로 보기에는 주제가 자못 무거웠다. 그도 그럴 것이 록 스타 '핑크 플로이드의 벽', '미시시피 버닝', 최신작 '에비타'를 연출한 알란 파커에다 '플래툰', '7월 4일생', 'J. F. K.' 등의 시나리오 작가, 감독 및 제작자인 올리버 스톤, '플래시 댄스', '탑건' 등의 영화 주제가를 작곡한 조르지오 모로더, 촉망받는 신인배우 브래드 데이비스(1991년 41세때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 등의 리스트만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1978년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서 지명을 받아 각본상과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요컨대 이 영화는 실제로 70년대초에 미국과 터키간의 외교문제가 되었던 해외 여행중인 미국 젊은이에 대한 인권유린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데다 신씨사이저로 연주되는 영화음악이 이색적이어서 70년대말 개봉 당시에는 틀림없는 화제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달라진 20년후의 오늘날에는 새로운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외국에서의 명백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미국 시민이 현지 교도소에서 부당하게 인권이 짓밟혔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미국은 지금도 미국 시민이 관련되지 않은 외국의 인권사태에 대해서까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리들도 한 때 그 소리를 듣고 싶어했지만, 1998년 6월 중국을 방문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 직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9년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중국인들은 자유를 위한 목소리를 냈다. 천안문 사태 무력진압은 잘못됐다. 언론·집회의 자유는 유엔 헌장에도 보장되어 있으며 인권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보호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만약 당시 적절한 조치가 없었다면 우리는 오늘날의 정치적 안정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이 미 대선 운동에 개입했다는 주장은 웃기는 얘기다. 중국은 결코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중앙일보 98.6.28자 1면)

영화의 줄거리

터키에서 여자친구와 여행을 하던 빌리 헤이즈(브래드 데이비스)라는 미국 대학생이 호기심에 하시시(대마초) 2킬로를 몰래 숨겨 가지고 가다가 이스탄불 공항에서 체포된다. 헤이즈는 하시시의 단순소지가 아닌 밀매자로 구속되어 구치소에 수감되는데 첫날부터 감방 안에서 쓸 담요를 훔치다가 교도관에게 죽도록 얻어맞는다.

이 교도소에는 터키의 온갖 범법자는 물론 외국인들도 수용되어 있다. 열악한 수형 환경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석방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최후 수단으로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라는 은어로 불리는 탈옥까지 감행하려 한다.

이스탄불은 파리까지 수개국을 횡단해 가는 '오리엔트 특급열차'(Orient Express)가 출발하는 도시이다. 외국인 수감자들은 특급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듯이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타고자 열망하지만 열차는 그들을 위해 멈추지 않는다.

헤이즈의 아버지가 그를 면회하러 온다. 현지 변호사를 선임하고 보석을 받도록 힘쓰겠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터키간의 정치 외교적인 문제로 이것도 여의치 않고 뒤이어 열린 재판에서 검사는 터키가 세계적인 마약 공급국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피고인 헤이즈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뚱보 변호사는 재판부에 좋은 인상을 주었으니 석방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장담을 한다.

결국 헤이즈는 마약소지죄로 징역 4년 2개월을 선고받는다. 엉터리 변호사는 이것도 승소한 것이라고 떠벌리지만, 마약매매죄로 재판을 받는다면 검사의 무기징역 구형에 10년형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오직 모범수로서 감형 받아 나오는 것이 상책이며, 시설이 좀더 나은 교도소로의 이감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한다.

감옥에 남은 헤이즈는 오직 기차소리의 환청을 들으며 탈옥을 꿈꾼다. 교도소 관리를 돈으로 매수하여 수형 기록을 없애자는 변호사의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묵살한 헤이즈에게 스웨덴인 동료죄수가 탈옥을 제안한다. 헤이즈가 거절하자 그는 지붕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히고 만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헤이즈가 교도소내의 장사꾼을 사기협잡꾼이라며 폭행을 가했으나, 그에게는 간수장의 가혹한 린치와 정신병동 입감이라는 벌이 내린다.

1974년 6월 정신병동에 들어간 헤이즈는 말짱한 정신임에도 여느 정신병자와 똑같이 취급된다. 자신이 '제조공정상의 불량품'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상원의원이 나서 헤이즈 구명운동을 벌이고 가족들도 언론을 동원하는 등 열심히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미국-터키의 외교관계가 냉랭하여 별 성과가 없다.

마침내 헤이즈의 약혼녀가 그를 면회하고 가족사진 앨범을 전해주면서 마지막 장에 있는 프랭클린 아저씨가 은행에서 도와줄 것이라고 말한다. 100달러 짜리 지폐(벤자민 프랭클린의 초상이 들어 있음)를 여러 장 넣었으니 이 돈을 잘 활용하여 탈출을 꾀하라는 암호 메시지였다. 헤이즈가 간수장에게 돈을 주고 시설이 좀더 나은 요양소로 보내달라고 간청하자 그의 말을 들어줄 듯 하던 간수장은 그를 고문실로 데려간다. 간수장이 바지를 끌러 내리고 한 판 일을 벌이려는 찰나 헤이즈는 혼신의 힘을 다 해 그를 쓰러트리고 교도관으로 변장한 다음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미국의 가치를 기준으로 터키의 인권 문제를 너무 부각시키다보니 터키에 대해 지나치게 왜곡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터키 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빌리 헤이즈는 미국인이라는 것 빼놓고는 엄벌에 처해야 할 마약사범에 불과하다.

법적 측면에서 볼 때 형사피고인측은 터키 사법당국의 처벌이 가혹하다는 것을 은연중 주장하고 있다. 전과도 없고 현지인 상대로 하시시를 매매한 것도 아닌 단순한 반출행위임에도 종신형 내지 30년형을 선고한다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로 규정된 범죄행위를 한 자를 법정형의 범위내에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한 당해 국가의 형벌권에 비추어 당연하다. 이것은 공서양속(public policy)에 속하는 문제로 어느 나라나 이를 존중하게 마련이며, 연전에 싱가폴 당국이 차량훼손 행위를 한 영국 젊은이를 태형에 처했을 때에도 세계적으로 비판여론이 비등했지만 그 이상 외교문제로 비화되지는 않았다.

더욱이 이 영화는 터키 비하나 왜곡의 정도가 지나쳤다. 우선 이스탄불의 교도소를 보자. 명색이 교도소임에도 마치 싸구려 호텔(brothel)인 양 그려 놓았다. 온갖 잡범들이 한 데 모여 있고 어느 재소자는 애완용 고양이까지 키운다. 또 돈을 주고 단도를 입수했다가 자기를 모욕한 죄수의 엉덩이를 찌르기도 한다. 이곳에서는 간수장의 비호를 받는 재소자가 공공연하게 동료 죄수를 상대로 물건을 사고 판다. 더욱 가관인 것은 옛날 할렘에서 외부인의 침입을 경계하는 임무를 맡겼던 공작새를 경비원처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에 묘사된 대로 교도관들이 총이 아닌 몽둥이나 들고 다니며 말썽부리는 재소자들을 툭툭 친다면 그곳은 半은 천국(?)같은 곳이다. 세상에 이런 감옥이 또 있을까. 또 교도소내의 질서위반자를 오로지 새디스틱한 간수장이 도맡아 처벌한다는 것도 현실감이 없다.

그리고 공분을 자아내는 터키인 뚱보 변호사 역시 법적인 대응보다는 막연한 낙관론으로 일관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무리 무능하고 탐욕스런 변호사라 해도 재판부에 대해 오로지 정상참작만을 호소하거나, 교도관을 돈으로 매수하여 재소자의 수형 기록을 없애자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비록 실화를 소재로 했다고는 해도 법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각본을 맡은 올리버 스톤의 선입견과 부정확한 지식으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영화가 되고 말았다. 이점은 그가 대본과 감독을 맡은 'J. F. K.'에서 (뉴올리언즈 개리슨 검사의 手記를 소재로 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음모론을 줄기차게 강조한 것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한 마디로 올리버 스톤이 묘사한 터키의 감옥은 17세기 중반 조선 땅에 표착한 하멜의 한국 인상기를 보는 느낌이다. 당시 하멜은 우리나라에 14년간 체류하는 동안 보고 들은 조선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등에 관하여 표류기를 썼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견문기를 남긴 서양인의 눈에 그것도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었고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신분에서는 모든 것이 이색적이고 괴상망측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올리버 스톤은 터키가 지리적으로는 유럽에 붙어 있기는 해도 역사적으로는 유럽 기독교도들과 대립하였던 회교 국가라는 점에서 이 동방국가의 사법제도를 한껏 희화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스탄불을 탈출해 그리스로 越境하기만 하면 비록 그가 정치범이 아닌 마약밀매범이라 해도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을 왜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터키는 회교국이고, 그리스는 기독교국가라는 대비가 야만국과 문명국의 콘트라스트로 비치는 것이다. 그러나 아카데미 각본상까지 받은 올리버 스톤을 법정에 세울 수는 없고 터키 정부로서도 지중해의 말타 섬에서 촬영된 이 영화를 국내 상영금지 시키는 것 이상의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섬뜩한 생각이 드는 것은 세계화 시대에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데 우리나라의 이른바 '애국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재판이 한국의 법망에 걸렸던 그들의 눈에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하는 점이다. 위에서 소개한 하멜 표류기도 한 예이지만, 서구의 기준으로는 터키나 우리나라나 오십보백보인 처지에 외국인 범법자들이 한국을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묘사할 것인지는 TV 드라마 'M.A.S.H.'(6·25 당시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 육군 이동외과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소재로 한 시리즈물)나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영화 '폴링다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인공처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타는 것(탈옥)이 아니라 세계적 보편규범인 글로벌 스탠더드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전통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닌가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