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반지 원정대)

9·11 테러 사건은 온통 세상을 뒤바꾸어 놓았다. 두 동의 110층 빌딩이 어느 순간 폭싹 잿더미로 화해버린 현실은 이것을 고상하게 '문명의 충돌'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것은 우리가 정녕 정상과 비정상, 상식과 비상식을 서로 치환할 수 있음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Lord of Rings 게다가 황당무계한 마술 이야기로 치부해버렸던 [해리 포터] 연작소설이 소설과 영화, 게임으로 전세계적인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영국에 엄청난 무역흑자를 안겨주고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었다. 더욱이 팬터지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던 J.R.R. 톨킨(1892∼1973)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이 원작의 스케일 그대로 영화(감독 피터 잭슨, 제작 뉴라인 시네마)로 꾸며진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새로운 기준과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돌아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002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무려 13개 부문에서 후보로 오른 '반지의 제왕'의 독무대가 될 조짐이다.

영화의 줄거리

팬터지 소설에서 리얼리티를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러나 원작 소설이 매우 치밀하게 가상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으므로 최소한의 스토리라인을 찾는 작업은 필요할 것 같다.

타락한 신 사우론(성경에 나오는 사탄)이 어리석은 인간들을 앞세워 다른 신들과의 전쟁에서 패한 후 사우론은 거세되고 인간들은 무력화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중간계(Middle Earth)에서는 힘은 약해졌으나 꾸준한 진화를 보이는 인간들, 단순하지만 노래를 좋아하고 낭만적인 소인족(호비트), 가끔은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 마법사들, 고상한 삶을 영위하는 요정(엘프)들이 서로의 영토를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비트족 빌보는 여행 중에 낡은 반지 하나를 우연히 손에 넣는다. 그 반지를 끼면 갑자기 모습을 사라지게 만드는 요술반지였다. 그러나 이 반지는 사우론이 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이것을 소유하면 절대권력을 얻게 되는 마력을 갖고 있었다. 마법사 갠달프(이안 매컬른)를 통해 이 반지의 유래를 알게 된 빌보는 자신의 111번째 생일을 맞아 스스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반지를 조카 프로도(일라이저 우드의 신장은 165Cm)에게 넘겨준다.

암흑의 제왕 사우론은 이 반지를 차지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자 자신을 섬기는 흑기사들과 타락한 마법사 사루만(크리스토퍼 리)을 내세워 사방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사우론은 중간계의 인간, 엘프, 호비트들을 억압하는 한편 신들과의 전쟁에서 잃어버린 11개의 반지를 끌어 모은다. 그러나 11개의 반지만으로는 부족하고 이것들을 능가하는 최고의 절대반지가 있어야 세상 권세를 휘어잡을 수 있다.

Lord of Rings 갠달프의 설명을 들은 프로도는 세상에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절대반지를 없애기로 하고 호비트족 친구들과 뜻을 같이 하는 인간들, 엘프, 난쟁이들과 원정대를 조직한다. 절대반지를 영원히 없앨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반지가 만들어진 불의 산, 현재 사우론이 은신해 있는 모르도르산의 분화구 속에 그것을 던져넣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정대의 행로는 험난하기만 하다. 무자비한 흑기사들의 추격을 받으며 험한 산길과 지하동굴, 숲속을 헤매고 괴물, 오크족의 무리와 싸워야 한다. 종종 아름다운 요정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인족 프로도의 손에 있는 반지가 인간계 영웅들의 탐심을 자극한다. 만일 원정대에 내분이 생기고 우정(fellowship)이 깨진다면 절대반지가 사우론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위험한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갠달프를 비롯한 유력한 동지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프로도와 그의 호비트 친구 일행은 원정대와 떨어져 불의 산을 찾아간다. 여기까지가 제1부 '반지 원정대'(The Fellowship of the Ring)의 줄거리이다. 제1부와 함께 영화 제작이 끝난 제2부 '두 개의 탑'(The Two Towers), 제3부 '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은 각각 2002년과 2003년의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될 예정이다.

감상의 포인트

팬터지 영화를 감상할 때 줄거리에 집착하는 것은 슬기롭지 못하다. 그것은 우리가 잘 아는 동양권의 팬터지 소설 '서유기'의 줄거리보다도 삼장법사와 손오공(재주 부리는 원숭이), 저팔계(우둔한 말하는 돼지)가 더 유명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보다는 영어문화권에서는 영국의 거장 시인 W.H. 오든이 "밀턴의 '실락원'을 능가하는 작품"이라고 격찬했을 정도로 문학적 향기가 높은 원작이 갖는 영향력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이후 컴퓨터 통신을 통하여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를 비롯한 팬터지 소설이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컴퓨터 게임의 바탕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정치적·법률적 코드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 태생의 옥스퍼드 언어학교수인 톨킨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절대반지를 차지하려고 인간계의 영웅들이 발버둥치면 칠수록 이 세상에는 전쟁과 다툼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산의 분화구 속에 반지를 던져 넣듯이 절대권력을 제거해야 한다. 절대반지로 상징되는 절대권력이 놀기 좋아하고 낭만적인 호비트족-일반 시민들-의 수중에 있을 때 지상에는 오랜 평화가 깃들었다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다.

Lord of Rings 실제 세계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지상에 평화가 이룩된 것은 절대왕정이 끝나고 근대 시민혁명 이후 권력이 분산된 시기였다. 그러다가 자기 나라에서 절대반지를 손에 넣은 독재자가 출현하면 세계대전으로 발전하곤 하였다. 부시 미 대통령이 2002년 對議會 국정연설에서 지적한 악의 축(axis of evil: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이 항전한 독일-이탈리아-일본 등의 추축국을 지칭하는 말)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겐달프가 프로도를 보고 "절대반지를 악한 군주 사우론에게 뺏기지 말고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고 한 임무부여는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게 마련이라는 민주주의와 3권분립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여러 사람이 원정대를 구성(連帶)하듯 힘을 합치라는 방법론으로 이어진다.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팬터지 소설은 황당무계한 우화가 아니라 성경 계시록에 나오는 '적 그리스도'(Anti-Christ)를 경계하는 메시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에서도 전혀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 권력구조하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이 나올 수밖에 없고, 역대 정권의 '최고위층', '로열 패밀리', '실세' 등 권력자의 이너서클을 중심으로 부패가 만연한 것을 수없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은 법전에도 없는 '괘씸죄'를 두려워한다. 용의 목에 있는 이것을 거슬렸다가는 생명이 위태롭다고 하는 '역린(逆鱗)의 고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권력자의 심기를 거슬리면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우리가 프로도 일행이 무사히 문제의 반지를 화산의 분화구 속에 던져넣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그것이 소설의 대미처럼 해피엔드는 못될지라도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과제임을 일깨워준다.

끝으로 부러운 것은 뉴질랜드는 자국 출신의 영화 감독이 뉴질랜드 북섬에서 현지 로케를 한 덕분에 화면에 등장하는 원시적 평원과 깎아지른 협곡, 웅대한 설산을 훌륭한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내놓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의미심장한 이야기도 엔터테인먼트적 요소 없이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반지의 제왕](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한기찬 옮김, 황금가지 펴냄)에 대한 서평 기타 유익한 정보는 교보문고의 PENCIL Review(2001.5 vol.4) 웹사이트 http://pencil.kyobobook.co.kr/pencil/20012002/1sp/0501/bookreview_novel.html 참조.

P.S. 원작소설/영화가 '권력'에 관한 앵글로 색슨의 관념을 잘 보여주는 만큼 이것을 통하여 알기 어려운 영미식 기업지배구조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