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건국 이래 수 차례의 계엄령과 군사 쿠데타를 경험한 우리나라로서는 별로 특이할 것도 없지만, 200여년의 역사 속에 남북전쟁과 1,2차 세계대전 정도의 비상사태를 겪었을 뿐인 미국인들로서는 계엄령(martial law, martial rule 또는 etat de siege; 이 영화의 원제인 'The Siege'는 적의 포위공격 상태를 가리킨다)이 선포된 상황을 가상해보는 것도 훌륭한 영화의 소재가 됨직 하다.

The Siege 1998년 에드워드 츠윅 감독(그는 걸프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Courage Under Fire'를 연출했다)의 '비상계엄'은 정치사적 배경이 다른 우리들로서는 매우 시시해 보이지만, 미국인들은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헌법과 법제도 운영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바 크다고 생각된다.

영화의 줄거리

사우디아라비아 다란에 있는 미군 병영에 폭탄 차량이 돌진하여 건물이 대파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클린턴 대통령이 테러 단체에 대한 응징을 천명하는 동안 미군 특수부대는 레바논 남부의 사막지대에서 자동차를 타고 가던 이라크 출신 회교지도자 암드빈 탈랄을 납치한다.

미군 특수부대 사령관 드벌로드 장군(Deverlaude 소장; 브루스 윌리스 분)이 과격 원리주의자 탈랄을 폭탄 테러의 배후 책임자로 지목하고 그를 처벌하려고 붙잡은 것이다. 그러나 그를 불법적으로 납치하였기에 미 당국은 국제적인 비난을 우려하여 이 사실을 공표하지 못한다. 그 사이에 탈랄의 추종자들은 미국의 비겁한 행동을 전세계에 폭로할 계획을 세운다.

아랍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시 브루클린 중심가에서 버스 승객을 인질로 한 폭발물 협박사건이 발생한다. 뉴욕시의 FBI 테러 반장 앤쏘니 허바드(이하 "허브"; 덴젤 워싱턴 분)가 현장에 출동해보니 폭발물은 싱겁게도 청색 잉크 공갈탄인 것으로 밝혀진다. 뭔가 심상찮은 기미를 느낀 FBI 수사본부에 익명의 팩스가 날아온다. "그를 석방하라"(Release Him)는 것이다. 도대체 그가 누구란 말인가. 백악관에 있는 빌 클린턴(?)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가짜 폭탄 테러의 현장에 미모의 여성 기관원이 나타나 FBI 수사관들과 알력을 빚는다. 국가안보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 소속의 CIA 요원 엘리스 크래프트(아랍식 이름은 "샤론"; 아네트 베닝 분)는 베이루트 출신의 아랍 전문 공작원이다. 허브 반장은 CIA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고 수사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손을 떼라고 요구한다.

바로 그 무렵 이중장치가 된 가방에 미화 1만 달러를 숨겨 들여오던 아랍인이 체포된다. 목 둘레에 담배불로 지진 흉터가 있는 이 아랍인은 테러리스트 용의자명단에 올려놓기에 충분하다. 허브 반장은 그의 배후 인물을 캐기 위해 일단 석방한다. 브루클린 아랍인 거주지역에서 그가 날쌔게 도망친 후 그를 은신처에서 발견해 낸 허브 반장은 엘리스 등 CIA가 이에 연루된 사실을 발견한다.

FBI 요원의 사법집행방해 혐의로 엘리스에 수갑을 채우고 본부로 가는 도중 허브 반장 일행은 두 번째 버스 인질 테러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보고에 접한다. 현장에서 인질범은 어린이들을 풀어주는 척 하지만 TV 등 매스컴이 이 사건을 현장중계하는 것을 알게 되자 극적인 순간에 폭발물을 터뜨린다. 25명이 희생 당한 이 사건은 전국적인 관심을 끌어모은다.

그 때 드벌로드 장군이 수사본부에 나타난다. 장군은 허브 반장이나 엘리스 크래프트 요원과 구면이다. 그는 FBI와 경찰력으로 대처할 수 없다면 원치 않아도 군사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암시를 준다. 허브 반장의 집요한 수사에 힘입어 테러용 폭발물을 만들고 있던 3인의 아랍인을 총격전 끝에 사살하지만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 또 도심의 초등학교에서 폭탄 테러가 잇달아 발생한다.

사상 유례없는 연쇄 폭탄 테러 사건에 인심이 흉흉해지고 대낮에도 도심 거리가 텅 비는 등 뉴욕 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다. 버스 엔진의 파열음만 들어도 사람들은 길바닥에 엎드릴 정도로 폭탄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정부 당국에서도 외국인 테러 용의자의 입국제한 조치 등을 강구해보지만 폭발물은 계속 터지고 뾰족한 수가 없다.

정부와 의회지도자들이 회동한 자리에서 비로소 병력을 동원하여 테러범을 소탕하자는 방안이 본격적으로 논의된다. 이 자리에서 드벌로드 장군은 대통령이 명령만 내리면 12시간 내에 장갑차(APC), 헬리콥터, 탱크, M16 등으로 무장한 1개 보병사단 병력을 동원하여 뉴욕 일원의 치안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허브 반장은 군대가 동원되면 오히려 테러범들을 지하로 숨게 만들고 대다수 국민의 인권이 침해된다며 반대의견을 피력하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어 있다.

맨해튼 한복판의 연방정부 청사에 자살 폭탄차량이 돌진하여 사상자가 수백 명 이상 속출하고 허브 반장이 아끼는 수사요원들도 다수 희생을 당하고 만 것이다. 군 정보기관이 계엄령 발동 준비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허브 반장은 아랍인들의 입국 보증인 역할을 해 온 아랍어 교수 사미르를 체포하여 배후를 캐고자 한다. 엘리스 요원이 중동 지역에서 훗세인 이라크 대통령 제거 공작을 펼 때 사미르 등 아랍인들을 고용하였지만 이 계획이 무산되면서 이들을 死地에 방치하였던 舊怨의 관계임을 알게 된다. CIA가 지도한 폭탄제조 비법이 거꾸로 미국민의 생명을 노리게 된 것이다.

테러리스트와 전쟁을 벌이라는 여론이 비등하자 대통령은 일부 의원의 반발을 무릅쓰고 남북전쟁 당시 링컨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이래 처음으로 계엄령을 발동한다. 신속하게 브루클린 지역에 진주한 드벌로드 장군은 14세에서 30세에 이르는 미국에 거주한 지 6개월이 못되는 아랍 남자를 영장없이 체포하여 격리 수용하라는 포고령을 내린다. 아랍계 동료수사관의 13세 아들마저 구금 당하자 허브 반장은 자기도취에 빠져 월권을 일삼는 장군을 찾아가지만 자신의 석방 탄원노력이 씨도 먹혀들지 않음을 보고 허탈해 한다.

사미르를 통해 더 이상의 테러를 막아보려 한 허브 반장은 계엄군 정보요원을 따돌리고 마지막 자살 테러 직전 공중목욕탕에서 정결의식을 행하는 사미르가 총책임자임을 알게 된다. 자신이 위험에 빠뜨린 사미르를 구해보려는 엘리스 요원이 사미르의 총에 맞자 허브 반장은 사미르를 처치하고 계엄령의 해제를 위해 뛰어나간다.

감상의 포인트

우리 헌법 제77조 제1항은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통령의 계엄선포권은 긴급명령과 함께 헌법상의 국가긴급권이며,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서 비상사태가 발생한 지역에서 행정·사법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군대의 권력 아래 이관하고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기본권의 일부에 대하여 예외조치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계엄령을 통하여 법률로써도 침해할 수 없는 헌법상의 기본권 규정을 배제하는 사태가 종종 빚어졌던 것이다.

이 영화는 법적인 관점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허브 반장을 통하여 미국 헌법상의 인신보호 영장(writ of habeas corpus) 제도가 계엄령에 엄연히 우선하는 점을 강조한다.

1861년 남북전쟁 개전 초기 볼티모어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링컨 대통령은 그 주모자에 대한 인신보호 영장상의 특권을 정지시키고 그를 군 부대로 호송하도록 명하였다. 당시 연방 항소법원은 인신보호 특권의 정지는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 의회의 권한이므로 대통령이 군통수권자로서 민간인을 군법회의에 넘기도록 한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Ex parte Merryman Case). 남북전쟁 기간중 민간인에 대한 군사법정(military tribunal)의 재판을 둘러싸고 여러 차례 위헌 시비가 일었지만 연방 대법원의 입장은 전쟁지역 밖에서 사법기능이 정상적으로 수행되는 한 계엄령은 집행될 수 없으며, 어떠한 초긴급 사태에 있어서도 기본권(Bill of Rights)은 정지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Ex parte Milligan Case).

충성된 미국 시민으로서 국가에 봉사해 온 아랍계 프랭크 요원은 불법 구금의 부당성을 폭로한다. 그는 13세의 외아들이 계엄군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가자 10년 이상 봉직했던 FBI에 사표를 내던지고 아들을 찾아 나선다. 군 병력이 젊은 아랍계 주민들을 강제로 수용하는 장면은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공격 직후 군대가 미 서해안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계 주민 12만명을 적성국민("enemy aliens")이라 하여 강제수용소에 억류했던 역사적 사건을 연상케 한다.

1942년 2월 루즈벨트 대통령은 의회 입법이 아닌 행정명령(Executive Order 9066)을 발동하여 미 서해안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계 주민의 축출 및 수용소 억류를 명하였다. 이로써 일본 이민 일세들은 그들의 자녀가 유럽 및 태평양 전선에서 미국을 위해 싸우고 있음에도 포로 아닌 포로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법정 투쟁을 통해 강제수용에 저항하였지만 전시의 법정은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연방 대법원에서도 정부 조치의 합헌성을 인정하였다(Hirabayashi v. U.S. 등).

전황이 미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4년 12월 서해안 지역 일본계 주민의 억류를 중지시키고 이들의 귀향을 허용하였다. 이들 피해자들은 1980년 뒤늦게 '전시 민간인 재배치 및 구금 규명위원회'(CWRIC)를 구성하고 전쟁중 미 정부 조치의 위법성을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1983년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은 CWRIC의 재심 청원을 받아들이고 미 정부의 강제구금 조치가 위법이었음을 인정하였다. 사실 전쟁 중에 일본계 미국인에 의한 간첩행위나 사보타지가 단 한 건도 없었던 만큼 미 정부 당국이 일본인들을 적성국민으로 간주하고 강제수용하기에 이른 군사적인 필요성(military necessity)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1988년 레이건 미 대통령은 민간인자유법(Civil Liberties Act)을 발효시키고 전쟁중 피해를 입은 일본계 시민들에게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표시를 하기에 이르렀다(http://www.clpef.net/history.html 참조). 여기에는 당시 일본의 조야가 막대한 국제수지 흑자를 배경으로 미 정부의 과오를 인정하도록 은근히 압력을 가했던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있는지라 이 영화에서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드벌로드 장군의 위세도 허브 반장이 들이민 인신보호 영장 앞에서는 맥을 못추었다. 계엄군 장병들이 에워싼 가운데 허브 반장과 FBI 수사관들은 불법감금, 특수폭행 및 상해죄 등을 걸어 유유히 계엄사령관을 긴급 구속하였던 것이다. 10.26 사건과 12.12 사태를 되돌아볼 때 미국의 헌정사가 한없이 부러운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