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스


영화 '슬리퍼스'는 더스틴 호프만, 로버트 드 니로, 브래드 피트 등 헐리우드 일류 스타가 총출연하였음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흥행에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대사에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감미로운 복수"가 자주 나오지만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이나 호쾌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루한 법정장면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주의깊게 살펴보면 '굿모닝 베트남' '레인맨' '폭로' 등을 연출한 베리 레빈슨 감독답게 '법과 정의'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케이스를 예로 들어보자. 97년 5월 2일자 중앙일보에 보도되었던 사건이다. 대구에 사는 회사원 金모씨는 96년 7월 31일 오후 5시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도로상에서 자신의 승용차로 U턴하다가 오토바이와 충돌, 오토바이 운전자 강모씨에게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혔다. 김씨는 사고 수습을 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한 혐의로 대구에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김씨는 경찰·검찰 조사와 법정진술에서 한결같이 오토바이와 충돌한 적이 없다고 항변했다. 대구지법의 吳世律 판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서·진단서 등을 면밀히 검토했으나 진실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吳판사는 서울지법 판사에게 서울에 거주하는 피해자에 대한 신문을 부탁했다. 吳판사가 관련자료를 넘겨 받아 경찰조서와 대조해 보니 여러 가지 차이점이 발견됐다. o 허리 부상↔무릎 상처 o 사고직후 오토바이를 타고 50m 추격↔앞바퀴 충돌로 추격 불가 등 경찰조서와 판사의 신문조서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바뀐 것이 여러 군데서 드러났다. 미심쩍은 吳판사가 피해자의 전과기록을 조회해 보니 자해공갈 경력이 수 차례나 있었고, 더욱이 비슷한 사건의 재판이 서울지법에 계류중이었다. 吳판사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강씨가 사실은 자해 공갈범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吳판사는 김씨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위반(뺑소니) 사건의 판결문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피해자의 진술을 믿기 어렵고 경찰조서는 피해자의 일방적인 진술에 근거한 것으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판사가 진실 규명에 힘을 쏟지 않았으면 자칭 피해자의 조작극에 무고한 시민이 뺑소니 운전자로 처벌을 받을 뻔한 사건이었다. 그만큼 형사사건에서의 실체적 진실의 발견은 중요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영화의 줄거리

무대는 1967년 여름 뉴욕 웨스트사이드의 헬스 키친(Hell's Kitchen). 아일랜드· 이태리·포르투갈·동유럽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몰려사는 가난한 동네이다. 어린이들이 소화전의 열린 물줄기를 가지고 장난하는 장면은 푸에르토 리코에서 갓 이민 온 가정의 젊은이들이 이들에게 텃세를 부리는 이태리계 청소년들과 다투고 사랑하는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연상케 한다. 비록 가난 때문에 범죄적 소질은 다분하다 해도 가톨릭 교회를 구심점으로 주민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가장이 아내를 때려도 이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으며 죄를 지은 다음에는 곧바로 신부를 찾아가 고해를 하는 까닭에 주인공의 한 사람인 나레이터가 설명하듯이 부패가 지배하지만 순수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단짝으로 지내던 네 명의 소년들이 한여름의 더위와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핫도그 노점상을 상대로 한 바탕 장난을 벌인다. 한 사람이 핫도그 값을 안내고 내빼는 사이에 나머지 친구들이 핫도그 수레를 지하철 계단으로 밀어넣을 듯이 수작을 부려 그 주인을 꼼짝 못하게 한다는 작전이다. 그러나 장난이 지나쳐 핫도그 수레가 지하철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때마침 계단을 올라오던 행인에게 중상을 입힌다. 네 소년은 재판을 받고 12∼18개월간 윌킨슨 소년원 (Home for Boys)으로 보내진다.

소년원은 겉보기에는 대학 캠퍼스 같았으나 네 명의 소년들은 동료 비행 청소년들과 교도관들로부터 야만과 공포를 배우게 된다. 14세밖에 안되는 이들 소년들을 두려움과 외로움에 떨게 한 것은 일부 교도관들의 성적 학대였다. 말을 듣지 않으면 폭력을 가하고 지하 독방으로 보내는 바람에 누가 내가 자는 방에 들어오지 않을까 염려하며 밤을 지새우는 슬리퍼스(Sleepers; 학대받는 院生의 은어)가 되고 만다. 이들이 악덕 교도관들을 이긴 것은 소년들과 교도관들이 미식 축구를 할 때 일부러 져주지 않고 승리를 쟁취한 단 한 번뿐이었다. 그리고 1968년 6월 1일 악몽같은 마지막 밤을 보내고 소년원에서 나온다.

13년후 네 명의 소년은 기자와 검사로, 나머지 두 사람은 살인 용의자가 되어 재회한다. 거리의 불량배가 된 존과 토미는 레스토랑에서 다른 손님을 권총으로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피살자가 소년원에서 그들을 가장 악랄하게 괴롭히던 녹스 교도관('1급 살인'에서 죄수역을 맡은 케빈 베이컨)이라는 사실에 마이클(브래드 피트)은 기자가 된 세익스(제임스 패트릭)를 만나 100% 유죄가 확실한 이 사건의 담당검사가 되어 몽테 크리스토 백작이 한 것과 같은 달콤한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들의 젊음과 인생을 앗아가버린 교도관들을 법의 이름으로 하나씩 보복(pay-back)한다는 것이다. 다만 존과 토미 모르게 일을 추진하고 소년원 기록은 7년이면 폐기되므로 그들 네 사람이 성폭행 당한 사실이 법정에 드러나지 않게 한다는 원칙을 세운다.

애송이 검사는 살인 용의자로 몰린 친구들을 위해 주정뱅이 퇴물 변호사(더스틴 호프만)를 선임케 하고, 그가 메모해준 대로 증인을 신문하게 한다. 폐인이 되다시피 한 변호사를 고른 이유는 그는 누군가가 써준 질문서를 읽을 능력밖에 없기 때문이다. 총연출자(mastermind)는 바로 마이클이다. 그는 상대를 1m 앞에서 저격(pinpoint)한 피고인들을 살인자로 몰고 간다. 반면 변호사한테 건넨 쪽지에는 유력한 증인의 증거력을 깎아내리는 질문을 줄줄이 써놓는다. 예컨대 검사로서 살인 현장의 여자 손님을 목격자로 불러내지만, 변호사를 통해 그녀가 술 취한 상태로 공포에 떨며 범인들을 흘끗 본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식으로 몰고 간다. 그녀의 목격담이 과연 믿을만한지 배심원은 당연히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복수를 완성할 수 없다. 마이클은 기자가 된 세익스와 한 동네 여자 친구인 캐롤을 통해 자기네들에게 호의적인 로버트 카릴로 신부(로버트 드 니로)를 찾아가 존과 토미의 알리바이를 입증해 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신부는 "하나님께 맹세하고 나서 거짓 증언을 하란 말이냐"며 거절한다. 할 수 없이 세익스는 캐롤 앞에서 신부에게 성폭행 당하고 고문 받았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는다.

고민을 하던 신부가 잠적해버리자 마이클은 신부가 증언을 해주지 않으면 상황이 어려워진다며 초조해 한다. 한편 전직 교도관들에 대한 복수는 착착 진행된다. 이미 저명인사로 변신한 왕년의 교도관은 증인으로 나와 오랫동안 숨겨놓았던 과거의 비밀을 고백한다. 경찰 간부가 된 다른 교도관은 마약 거래에 관여했다는 익명의 제보로 구속된다.

공판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신부가 법정에 나타나 증언을 한다. 신부는 사건이 일어나던 날 저녁에 피고인들과 함께 농구장에 갔었다는 진술과 함께 입장권까지 보여준다. 가톨릭세가 강한 동네에서 배심원들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터에 이러한 신부의 증언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피고인들은 무죄로 석방되지만 마이클 검사는 이겨야 할 사건에 패소했다는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다. 마이클은 법은 이제 지긋지긋하다며 뉴잉글런드 시골로 잠적하여 목수가 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청소년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나 갱스터 영화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법률의 관점에서는 "누군가가 치밀한 조작을 한다면 형사재판에서 司法的 正義의 구현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검사와 기자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마이클과 세익스는 두 친구를 구해내고 자신들의 우정을 입증해 보인다. 존과 토미는 영문도 모른 채 앉아 있다가 친구들의 활약 덕분에 풀려난다.

그러나 분명히 사람을 총으로 쏘아죽인 악한이 무죄로 풀려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비록 그들은 서른도 못되어 다른 사건으로 죽고 말지만 이것만으로 죄값을 다 치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검사가 되기까지 법과 정의에 관하여 훈련을 받은 마이클이 그의 소신(私感?)에 입각하여 13년전에 원생들을 성폭행하고 고문을 가했던 교도관들을 응징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것이 박수갈채를 받을 만한 일인가? 더욱이 그 배경이 된 사실관계는 철저히 은폐된다. 마치 60년대 당시 미국의 사회가 월남전으로 들끓고 있었음에도 헬스 키친에서는 평화롭게도(?) 악동들의 장난이 판을 치고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여기서 우리를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해 형사소송 절차에 증인선서, 交互신문(cross-examination), 職權조사, 傳聞증거법칙 등 여러가지 제도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마이클과 같은 영악한 매스터마인드가 이 모든 것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첫머리에 소개한 뺑소니 사건의 자칭 피해자는 현명한 법관을 만나 그 정체가 탄로나고 말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음해하고 매장시키고자 온갖 머리를 짜내고 그것이 진실인 양 통용시키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公益을 대변해야 할 주인공 브래드 피트가 私的인 복수를 마친 후 검사직을 떠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그는 시골에 파묻혀 목수일이나 하는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가을의 전설'에서 그의 연기를 본 관객들이 기대하였듯이 부조리한 사회와 제도에 맞서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의 한 불우했던 개인이 그가 배운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법과 정의를 농락한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른 헐리웃 영화와는 달리 보고난 후에도 마음이 후련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