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픽

Traffic 요즘 미국 사회에서는 마약(drugs: 마리화나, 코카인, 헤로인, 크랙 등)이 널리 보급되어 평범하고 모범적으로 보이는 가정에서도 다반사처럼 되었다. 이 점은 미국 사회의 문제되는 단면을 묘사한 영화가 좋은 평판을 받아온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잘 알 수 있다. 2000년에는 이웃집 소년의 마약거래 이야기가 삽입된 "아메리칸 뷰티"가 상을 휩쓸더니, 금년에는 본격적인 마약거래의 실상을 다룬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트래픽"(Traffic)이 4개 부문(감독상, 조연남우상, 각본상, 편집상)에서 상을 받았다.

본래 이 영화는 1989년 영국의 [Film 4]에서 제작한 5부작 미니 시리즈 "트래픽"(Traffik)이 기초가 되었다. 오리지널 TV 영화는 파키스탄의 가난한 농부들이 키운 아편이 유럽을 거쳐 영국의 거리로 흘러가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2명의 마약전담 경찰관, 마약 중독자가 된 고위관료의 딸, 마약상으로 변신한 가정주부의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한다.

금년에 줄리아 로버츠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같은 감독의 영화 "에린브로코비치"에서 보았듯이 실제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데 능한 소더버그 감독은 무대를 파키스탄과 유럽에서 멕시코와 미국으로, 품목은 헤로인에서 코카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미국의 관객들에게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에 있어서는 6천8백만명의 어린이들이 제1차 보호대상이며, 새로운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인내심과 용기, 무엇보다도 가족의 이해와 협조가 절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영화의 줄거리

미국-멕시코 국경지대에서 잠복근무 중인 멕시코의 마약단속 경찰 하비에르(베니시오 델 토로)와 마놀로 앞에 수상한 트럭이 걸려든다. 적재함을 열어보니 엄청난 분량의 코카인이 실려 있다. 범인들을 연행해 가는 동안에 그 지역의 특수군부대가 나타나 범인과 트럭을 통째로 접수해간다. 이 부대의 사령관인 살라자르 중장은 하비에르 형사의 노고를 치하하며, 마약범죄자의 소탕을 위해 협조해줄 것을 당부한다.

한편 오하이오주 대법원의 로버트 웨이크필드 대법관(마이클 더글라스)은 평소 마약범죄에 대하여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큰 농장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심심풀이일 망정 대마초를 재배하였다면, 이는 소유권의 신성불가침을 넘어선 불법이고 정부는 그의 농장을 몰수하여 공매처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소신은 대통령의 관심을 끌어 연방 마약단속청(DEA) 책임자로 임명된다. 그는 '마약의 황제'(Drug Czar)라 불리는 막강한 자리에 오른다. 그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며 전임자인 현역장성은 미국내 마약거래를 단속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음을 술회한다. 로버트는 모르고 있었지만 16세의 외동딸 캐롤라인은 친구들과 어울려 상습적으로 마약을 흡입하고 지내는 중이다.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는 DEA의 비밀요원(돈 치들, 루이스 구즈만)이 마약을 사겠다고 접근하였다가 중간판매상을 체포하고, 사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는 그를 면책(immunity)해주는 대가로 그의 진술을 얻어내 판매총책인 카를로스를 구속한다. 임신 중인 그의 부인 헬레나(캐서린 제타-존스)는 성실한 기업인으로만 알고 있었던 남편이 마약거래상이었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이 사건 이후 그녀와 그녀의 집은 DEA 요원의 집중 감시를 받게 된다.

남편 사업을 잇는 헬레나 이 영화는 하비에르, 로버트, 헬레나 세 사람을 축으로 하여 세 개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하비에르 형사는 살라자르 장군으로부터 전문킬러를 붙잡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를 장군의 부대에 데려가지만 그는 정식으로 심문을 받는 게 아니라 마치 복수를 당하듯 가혹한 린치를 받는다. 장군의 친구를 살해하였다는 혐의이다. 신임 DEA 청장 로버트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연합전선을 펴기 위해 멕시코의 실력자 살라자르 장군을 만나고 싶어한다. 카를로스는 로버트의 딸이 크랙과 헤로인을 힘들지 않고 손에 넣을 수 있게 미국내 유통망을 관리하는 총책이다. 모처럼 대어를 낚은 DEA 요원들은 유력한 증인(중간판매상)을 보호하며 그의 범죄를 입증하는 데 주력한다. 이 영화는 세 개의 이야기가 헝크러지지 않도록 이야기가 바뀔 때마다 푸른 색, 붉은 색 등으로 화면의 색조를 달리 하고 있다.

DEA청장으로 부임한 로버트는 마약 복용 혐의로 유치장에 갇힌 딸의 뒷처리를 부인에게 일임하고 의욕적으로 마약의 반입, 밀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시찰한다. 미국-멕시코 국경의 티후아나 검문소에서는 멕시코에서 마약을 몰래 들여오지 못하도록 하루 4만5천여대의 차량을 철저히 검색하고 50% 이상의 단속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DEA에서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인 마드리갈과 오브레곤이 건재한 이상 단속의 실효가 없음을 깨닫고 멕시코측 살라자르 장군과의 협력을 모색한다.

현장시찰을 마치고 돌아온 로버트에게 그의 부인은 딸의 문제에 아버지로서 좀더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바라지만, 로버트는 "당신도 학교 다닐 때 마약을 했어도 스스로 끊지 않았느냐"며 낙관을 표시한다. 그러나 유치장에서 풀려난 딸은 집에서도 마약을 하고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결국 중독증을 치료하는 요양소로 보내진다.

하비에르는 살라자르 장군이 마약거래를 단속하는 것 같지만 실은 마드리갈파와 한 통속이 되어 오브레곤파를 제거하는 데 앞장서 있음을 알고 고뇌에 빠진다. 하비에르는 미국측 마약단속반원으로부터 정보를 주면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제의를 받고 멕시코 청소년들이 마약에 손을 대지 않도록 야구장에 야간경기 시설을 갖추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한다. 남편 수감후의 사태처리에 매달려 있는 헬레나는 엉뚱하게도 집 앞에 상주하다시피 한 DEA 비밀요원을 찾아와 남편이 수감된 뒤 어떤 남자로부터 3백만달러를 내지 않으면 아이를 해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며 좀더 자기 가족을 철저히 보호해줄 것을 요청한다.

고뇌하는 하비에르 형사 로버트는 멕시코시티로 날아가 살라자르 장군과 마약단속특수부대의 훈련, 인적 교류에 관하여 합의를 하지만 "마약중독자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일"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딸을 생각하며 심난해 한다. 그리고 요양소에 가 있던 딸이 탈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딸을 찾아 나선다. 한편 하비에르는 동료형사 마놀로가 여권을 챙겨 나갔다는 말을 듣고 살라자르에 관한 정보를 미국측에 넘기기도 전에 그가 먼저 살해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헬레나는 남편이 유죄 판결을 받도록 증언을 할 DEA측 증인을 암살하는 계획을 꾸미는 한편 남편 대신 마약거래에 나서 멕시코측 파트너인 오브레곤을 직접 찾아가 담판을 벌인다.

사창가에서 딸을 찾아낸 로버트는 마약 단속업무보다도 딸의 망가진 인생을 되살리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DEA 청장직을 사임한다. 하비에르는 개죽음을 당한 동료 대신 살라자르 장군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미국측에 전달하고, 그의 동네 야구장에는 나이터 시설이 갖춰진다. 헬레나의 책략으로 반대증인은 독살되고 남편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다. 여기까지는 세 주인공이 모두 해피엔딩을 맞은 것 같다. 그러나 DEA 요원이 심술을 부리는 척 하며 헬레나의 집에 들어가 거실 탁자 밑에 도청장치를 설치하였으니 헬레나 부부를 붙잡을 수 있는 증거 포착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2001년도 4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입증되었듯이 세 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몰고 가는 시나리오의 구성이 매우 탄탄하다(시나리오는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를 쓴 스티픈 개그핸이 맡았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마약을 단순 범죄로 다루지 않고 일종의 사회적인 병리현상으로 이해한 秀作이라 할 수 있다. 세 편의 이야기는 다양한 계층에 속한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어떻게 마약에 빠지고 몰락하는지 리얼하게 보여주면서 이 세계에 대한 입체적이고 객관적인 시점을 제공한다.

딸을 타이르는 로버트 하비에르 형사: 마약거래는 돈의 유혹이 너무 강한 범죄지요. 동료를 죽인 실력자에 관한 정보를 외국기관에 제공하는 것은 매국노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좋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청소년들은 마약에 손댈 틈이 없을 것입니다.
캐롤린(로버트의 딸): 부모가 모범적인 사회지도층 인사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범생이 되어야 한다는 데 웬지 반항심이 들었어요.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권해서 처음 시작해보았는데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대학 다닐 때 마약을 했던 엄마의 용인하는 듯한 태도가 자신감을 갖게 했나 봐요.
헬레나: 현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록 마약거래를 통해 번 돈이라도 상관없어요. 수요가 늘어나는데 위험이 따른다고 비즈니스를 못할 바 아닙니다. 모험을 한 만큼, 신기술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만큼 보상이 따릅니다.

그러나 영화가 너무 길고(러닝타임 147분) 결론이 너무 모범적이어서인지, 아니면 마약을 손대기 어려운 우리나라의 관중들에게는 덜 심각하게 느껴져서인지 우리나라에서의 흥행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관객들에게 마약 상습범인 자녀를 둔 아버지가 그 단속기관의 책임자가 된다는 것, 설령 이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더라도 수습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영화의 '玉의 티'(비현실적)라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가 병역기피 자녀를 둔 공직자들이 줄줄이 공직을 사임하고, 이중국적의 자녀를 둔 법무부장관이나 미국 시민권을 갖고 미군병원 의사로 있는 부인을 둔 교육부장관이 취임 직후에 사퇴한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문제를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아닌 인격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는 ― '修身齊家治國平天下'식 유교 윤리에 젖어 있는 ― 우리들에게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제작과정에서부터 화제가 만발했다. 등장인물들이 마약을 하는 장면이 너무 여실하여 감독이나 스탭이 마약을 복용한 전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소더버그 감독은 스탭은 몰라도 자신은 시도는 해봤지만 코카인이나 헤로인을 한 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