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지오 프라이버시 워크샵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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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지오"라고 하면 "아하, 라스베가스에 있는 '분수 쇼' 하는 카지노 호텔!"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니면 서울 강남이나 지방 도로변의 러브호텔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2006년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이태리에 있는 오리지널 '벨라지오'에 다녀왔다.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카지노 호텔의 분수 쇼 코모 호반에 자리잡은 벨라지오 컨퍼런스 센터 어느 곳에나 펼쳐진 그림엽서 같은 풍경

이태리 밀라노에서 스위스 쪽으로 1시간 정도 달리다 코모로 내려와 코모 호수를 끼고 1시간 정도 달려 당도한 곳이 벨라지오에 있는, 록펠러 재단의 컨퍼런스 센터(Rockefeller Study and Conference Center)였다.
이곳 '세르벨로니 빌라'(Villa Serbelloni)의 내력을 알아보니 로마제정 시대의 유명한 학자, 문필가 플리니(Cecilius Plinius II)와도 관계가 있지만, 16세기의 유명한 법학자이자 나중에는 바오로3세 교황에 의해 성 아나스타시아 추기경으로 임명된 스폰드라티(Francesco Sfondrati)의 요새와도 같은 영지였다.
이곳은 왕년의 호화로운 귀족의 삶을 보여주는, 넓은 정원과 산책로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었다. 이태리 귀족과 결혼한 미국 출신의 귀부인이 1913년 그때 마침 자선사업을 시작한 록펠러 재단에 기부했다고 한다.
지금은 학자, 예술가 등이 짧게는 1주일, 길게는 한두 달 머물면서 회의도 하고 연구, 창작에 몰두할 수 있도록 완벽한 여건을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의 유로화를 갖고 갔지만 왕복 여비에 숙소 및 식사, 음료, 다과가 모두 무상으로 제공되어 거의 쓸 일이 없었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빌라 세르벨로니 뒷산에서 내려다 본 빌라 정원 빌라 앞의 계단식 정원

세상에 이런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식사와 간식이 항상 제공되는 곳
사람들이 우호적이고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며 경쟁이 없는 곳
날씨도 온화하고 조용한 미풍이 불어오는 곳
공기가 시원하고 주변 풍경이 엄청나게 아름다운 곳
거룩하신 분의 임재를 생각한다면 이곳이야말로 정녕 천국일 것

프라티 2층의 TV는 없지만 인터넷이 잘 되는 내 방 포도주와 올리브유가 무제한 제공되는 이태리식 정찬 회의 도중의 쉬는 시간

도착한 첫 날 자기소개 시간에도 밝혔지만 내가 벨라지오에 간 것은 정녕 행운이었다.
호주에서 한국의 개인정보보호 법제와 관련된 졸업논문을 쓰고 있는 한국 유학생의 부탁을 받고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교의 논문을 심사하게 되었는데 호주 그린리프 교수의 천거로 프로젝트 팀에 합류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몇 편의 영어논문이 내가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전문가라는 훌륭한 입증자료가 되었다.
"Privacy@40" 워크샵은 미국과학재단(NSF)과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과 독일, 한국 등 8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제의 연혁과 현황, 주요 이슈를 비교검토하고 향후 전망을 논의하는 관련 전문가들의 모임이었는데 나는 당연히 한국 편을 맡았다.
이러한 주제는 내가 학계로 나온 뒤 매년 수행하는 연구과제와 일치하는 것이었으므로 영문으로 작성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어려울 게 없었다. 여러 차례 12∼16천 단어에 이르는 보고서를 공동편집자인 그린리프 교수에게 보내고 그의 코멘트를 받아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하였다.
2005년 9월 UNESCO 컨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그린리프 교수를 서울에서 만났지만 프로젝트 과제에 대하여 충분한 협의를 하기에는 시간이 크게 부족했다.

워크샵 도중의 열띤 토론 장면 프로젝트를 주도한 제임스 룰 교수와 그린리프 교수 출판문제를 협의하는 룰, 그린리프 교수

2006년 1월 동료교수들과 베트남 하롱베이 여행을 다녀온 뒤 그린리프 교수에게 마지막 수정본을 보내고 이태리로 떠났다.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밀라노로 가는 여정이었는데 그날 중으로 밀라노에 도착해야 했기에 일단 비행기 환승이 가능한 리나테 공항(LIN)으로 가서 말펜사 공항(MPX)으로 이동하여야 했다. 9시가 넘어 리나테 공항에 도착한 후 1시간 가량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는 말에 공포심이 엄습하였다. 심야에 이태리에서 택시를 타본 사람은 이 심정을 알 것이다.
그러나 리나테 공항 안내데스크에 물어보니 두 공항간 셔틀버스가 있다는 게 아닌가!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나 홀로 9유로만 내고 대형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50분이나 걸려 말펜사 공항으로 갔다. 심야에 이렇게 강행한 이유는 이튿날 아침 일찍 벨라지오 회의장으로 가는 미니 밴이 말펜사 공항 앞에서 나를 픽업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터미널을 연결하는 스카이웨이 밀라노 말펜사 공항청사 옛날에는 수도원(Frati Chapel)으로 쓰였다는 벨라지오 컨퍼런스 센터

빌라 말펜사 호텔은 옛날 귀족의 영지인 듯 구내에 시간마다 종을 울리는 작은 교회도 있었다.
새벽 2시가 되니 저절로 잠이 깨어 회의자료를 검토하는 등 시간을 보내고 간단한 뷔페식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내려갔다. 그리고 연구책임자인 미국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학교 사회학교수인 제임스 룰 교수를 만나 벨라지오행 미니버스에 탑승하였다.
말로만 듣던 코모 호수는 무척 크고 길었다. 호반의 좁은 길을 굽이굽이 돌 때마다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새로 바뀌었다. 얼마 전 많은 눈이 내린 탓으로 곳곳에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호텔 창밖의 풍경 호텔 빌라 말펜사 호텔 정원

1월 31일 첫 날 오후 워크샵의 모든 참석자가 도착한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나로서는 한국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 학자들하고 며칠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더욱이 나를 위축시킨 것은 참석자들 사이에는 프랑스어가 제2의 공용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나도 유럽에서 1년간 공부를 하였고 미국에서 장기간 근무도 하고 유학한 경험이 있기에 다른 참석자들과 공통점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코모시의 거리 풍경 호수 굽이를 돌 때마다 바뀌는 풍경 벨라지오 부근의 선착장

긴장한 가운데 첫째 날 아침이 밝아왔다. 아니 새벽 2시(서울시간 오전 10시)가 되니 절로 눈이 떠졌다.
인터넷이 연결된 노트북 컴퓨터를 열고 서울발 소식을 점검했다. 오늘 카드대금 결제에 대비하여 내 은행계좌의 잔액을 알아보기도 했다. 심지어는 회의자료를 찾으러 법제처의 현행법령 사이트를 찾기까지 했다.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한 시간과 거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7시가 넘으니 창 밖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호수면에 비친 하늘빛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졌다. 호수 주변이 높은 산에 가려 일출을 보기는 어려웠지만 산봉우리 사이로 햇살이 퍼져나가는 모습이 신비롭게 보였다. 샤워를 하고 8시 30분께 식당(refectory)으로 내려갔다.

동틀녁 해돋이 호수가로 퍼지는 아침햇살

워크샵은 마치 외국의 저명교수가 대학원생들하고 집중적으로 세미나(bloc seminar)를 하는 것 같았다. 첫 날 오전에는 연구책임자인 룰 교수가 프로젝트의 취지 및 워크샵 진행에 대하여 설명하고, 공동편집자인 그린리프 교수가 작업 내용에 대하여 브리핑을 하였다.
호주에 이어 오후부터 국제기구(오슬로 대학교 리 바이브그레이브 교수), 독일(하노버 대학교 볼프강 킬리언 교수), 그 다음날에는 오전에 미국(조지 메이슨 대학교 프리실라 리건 교수)과 한국(경희대학교 박훤일 교수), 오후에는 헝가리(부다페스트 대학교 이반 세케리 교수)와 프랑스(보르도III 대학교 앙드레 비탈리 교수) 순으로 열띤 세미나가 이루어졌다. 발표자가 개요를 설명한 후 다른 참석자들과 질의 응답 시간을 갖고 서로 미진한 점과 수정할 부분을 지적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지막 날은 홍콩(그래함 그린리프 교수)과 캐나다(캐나다 개인정보감독기구 스테파니 페린 국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오후에는 최종적으로 결론(짐 룰 교수) 부분을 검토하였다.

워크샵 참가자 워크샵 쉬는 시간 커피브레이크 중에도 계속되는 토론
(왼편 사진에서 좌에서 우로 Andre, Park, Stephanie, Wolfgang, Ivan, Graham, Jim, Priscilla and Lee)

한국 편을 설명할 때에는 보편적 인식자(universal identifier)로서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는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사진을 올려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리수가 성전환을 허가하는 재판을 받고 새 주민등록증을 받아들고서 좋아하는 모습도 있었다.
이런 사진을 포함한 한국편의 개요를 설명하는 자료를 두 쪽으로 만들고 워크샵에서 거론된 사항을 이렇게 반영하겠다는 내용으로 한국편의 발표를 마쳤다.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여론의 반대에 부딪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ID 카드, 데이터 매칭, 정부에 대한 신뢰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모두들 지난 40여년간 한국에서 일어난 극적인 변화에 놀라는 모습이었다. 불과 한 세대 남짓한 기간 동안에 무장공비의 대통령관저 침투, 기적 같은 경제건설,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피살, 권위적인 정권의 막을 내린 시민들의 민주화운동, OECD 등 국제사회에의 가입, IMF 위기의 극복과 같은 수많은 사건이 불과 40년 동안에 모두 일어났던 것이다.

워크샵 참가자 및 레지던트를 위한 만찬 리셉션 록펠러 재단 책임자의 만찬 축사 빌라 만찬장에 걸려 있는 고가의 미술품

그러나 워크샵도 어디까지나 인간사회의 축소판이었다.
어떠한 토픽이 제시되면 두 여성 참석자(Stephanie and Priscilla)가 수다스러울 정도로 의견을 개진하고 앵글로 색슨계 학자들(Jim, Graham and Lee)이 정리를 하면 독일계 학자들(Wolfgang and Ivan)이 반론을 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가장 젊은 리 바이그레이브 교수는 국제기구의 프라이버시를 담당한 탓도 있지만 각국의 개인정보법제에 대하여 날카로운 질문과 의견을 제시하였다. 호주 출신으로 오슬로 대학 교수를 하고 있었는데, 시드니 대학에 유학온 노르웨이 처녀와 결혼(cradle snatching)하여 처가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라 했다. 나도 결정적인 순간에 몇 가지 코멘트를 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였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조금 전의 치열한 논쟁도 모두 잊어버리고 각자 가져온 포도주를 음미하면서 환담을 나누었다. 마지막 날에는 포도주병의 라벨을 가려놓고 산지를 알아내는 블라인드 테스트 행사도 열었다. 참석자들의 출신지역에 따라 미국과 호주산 레드와인 한 병씩, 그리고 보르도산 와인 두 병이 시험대에 올랐다. 미묘한 맛과 풍미의 차이를 느낄 수는 있었으나 나로서는 "소경 문고리 잡는" 것 같았다.

레드와인의 라벨을 가리고 각자 맛과 향을 음미 드디어 라벨을 확인 와인테스트에서 높은 식견을 자랑한 제임스 룰 교수

이번 워크샵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볼프강 킬리언 교수하고 하노버 대학교의 정보법학연구소(IRI)와 경희대 법학연구소 간의 교류협력에 관하여 구두로 MOU를 맺은 일이다. 그리고 그린리프 교수가 하는 인터넷 법률정보 사업에 한국 대표를 맡아 하기로 약속하였다.
오랜 연구생활을 통하여 내공이 쌓인 사람들이니 척 보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탓이었다. 게다가 돈이 수반되는 일이 아니니까 약정도 쉽게 이루어졌다.

독일 볼프강 킬리언 교수와 함께 호주 그래함 그린리프 교수와 함께 빌라 뒷산의 전망대에서 일행과 함께

마지막 날 만찬 시간에는 인천공항에서 사 갖고 간 김치를 꺼내 놓고, "맛도 좋지만 암과 SARS 예방에 좋다"고 한참 자랑을 하였다. 그랬더니 한국 김치를 좋아하는 호주 교수와 헝가리 교수가 가장 좋아했다. 나도 치즈와 올리브유가 잔뜩 들어간 이태리 음식만 먹다가 며칠만에 먹는 김치가 정말 꿀맛 같았다.
그리고 킬리언 교수의 67회 생신을 맞아 케이크 촛불잔치를 열고, 옆방으로 옮겨 여흥 시간을 가졌다. 나는 "You raise me up"과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는데 내 노래를 계기로 프랑스 교수가 기타 반주로 샹송을 부르고 점차 흥이 고조되었다.
나도 한국에서는 점잖은 축에 들지만 역시 술 마시고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한국 사람의 전형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킬리언 교수를 위한 케이크와 촛불잔치 파티에서 포도주를 양껏 마시고 기타를 치며 샹송을 부르는 앙드레

독일 교수가 "정말로 고맙다"며 독일산 백포도주를 선물로 주었다. 나는 킬리언 교수에게 14년이라는 나이 차이도 적당하니 "앞으로는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간곡히 청하였다.
처음에는 아득해 보이던 길이 어느덧 잘 소통되는 고속도로처럼 신나게 달려온 것처럼 여겨졌다. 4박 5일간의 워크샵 기간 중에 마치 학자생활을 4-5년은 충실히 한 것 같았다.
다시 코모 호반을 휘돌아 나올 때에는 "언제 다시 이런 곳에 오랴" 싶어 오래오래 벨라지오 빌라 쪽을 뒤돌아보았다. (2006. 2. 10)
In the English version

코모 호수의 고요한 아침 풍경 한가로운 빌라 뒷산의 산책로 빌라 뒷산에서 바라본 코모 호수의 저녁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