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의 明暗

비엔나 국제센터 비엔나 서부역 비엔나-부다페스트 철도연변의 풍경

2003년 7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리는 국제회의 참석 차 유럽에 출장을 간 기회에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찾아갔다.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쌍둥이 수도로서 관광명소가 많을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된 지 10년이 넘어 주민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무척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부다페스트의 노천 온천도 소문대로인지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날씨는 계속 쾌청한 편이었다. 유럽 일대를 엄습한 6월의 폭염에 이어 7월의 날씨는 간혹 흐리기도 하였으나 여행기간 중의 기온은 25℃를 넘지 않았다.

비엔나에는 유럽 각 방면의 행선지 별로 기차역이 있기 때문에 부다페스트 행 열차가 출발하는 서부역에 가서 미리 좌석을 예약했다. 열차는 컴파트먼트식으로 어느 국제열차나 다름이 없었는데 유럽 배낭여행을 하는 중국계 미국 대학생 지미와 대만에서 독일어 강사를 한다는 독일 노신사, 그리고 헝거리에서 승차한 헝가리 여대생 이렇게 일행이 되어 지루하지 않게 약 3시간의 기차여행을 할 수 있었다.

부다 왕궁 전경 다뉴브 강변의 의사당 다뉴브 강과 페스트시 전경

부다페스트行 준비물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체크의 프라하와 함께 동구의 유명한 관광지이다. 역사가 깊어 볼 것이 많고 체제전환국으로서 일반 물가도 싼 편이니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열차가 동부역(Keleti Pu.)에 도착할 때쯤이면 정거장 플랫홈은 설렘을 안고 막 도착한 승객과 손님을 잡으려는 택시기사, 숙박업소 주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여행 안내서를 읽어보면 지붕에 택시 표지를 달고 회사마크와 전화번호가 붙어 있는 회사택시를 잡아타야지 손을 잡아끄는 대로 자가용 택시(unmarked taxi)를 탔다가는 바가지를 쓴다고 주의를 주었다.

헝가리 포린트(Forint)화는 가두의 환전소에서 환전하는 것보다 크레딧 카드로 필요한 금액만큼 현금 서비스를 받는 것이 제일 유리하다. 1유로≒260포린트, 1포린트≒5원으로 계산하면 대강의 예산을 세울 수 있다. 그 다음은 역 구내(9번 플랫홈 옆) 여행안내소에서 부다페스트 카드를 사는 일이다. 이틀, 사흘 체류일정에 따라 3,950 또는 4,950포린트짜리 카드를 사면 시내교통 및 박물관 이용은 모두 공짜이다. 전차 1회 탑승권이 120포린트, 박물관 입장료가 통상 7백포린트하니까 계산이 될 것이다. 부다페스트에서는 표 없이도 자유롭게 전철, 전차, 버스를 탈 수 있지만 불시에 완장을 두른 검표원이 나타나 표를 검사하므로 반드시 티켓을 구입해야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

부다페스트 동부역 부다페스트의 명물 세체니 다리 필자가 투숙한 Art'otel

일반적인 관광 코스
부다페스트를 방문하기 전에는 이 도시가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어 있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다뉴브 강으로 나뉘어 있던 이 두 도시를 연결한 것이 1849년에 영국인 토목기술자(클라크 애덤)에 의해 건설된 세체니(체인) 브리지인 것도 처음 알았다. 이 다리는 주말에는 교통이 통제되어 행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었다.

영국 템즈강의 런던 브리지, 빠리 세느강변의 에펠 타워, 프라하 블타바(몰다우)강의 칼 브리지처럼 세체니교는 브다페스트 관광의 시발점이다. 이어 케이블카(funicular: 부다페스트 카드가 통용되지 않으므로 별도 요금을 지불해야 함)를 타고 부다 성(Buda Castle)으로 올라간다. 페스트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城 지구(Castle District)에서는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국립미술관으로 쓰이는 왕궁을 비롯하여 현대사 박물관, 역사 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과 15세기 후반의 위대한 마차시(Matthias)왕을 기념하는 마차시 교회, 삼위일체(Trinity) 탑, 우리나라의 행주산성 같은 어부의 요새를 차례로 둘러보면 된다.

부다성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풍경 국립미술관으로 사용되는 부다 왕궁 전면 마차시 왕 기마상과 어부의 요새 지붕

국립미술관에는 15∼17세기 투르크 정복 전후의 역사적 사실화와 성화·성물, 인상파 영향을 받은 19세기 회화, 현대화와 조각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다만, 많은 작품이 우수해 보임에도 세계 미술계에 소개되지 못한 것은 작가가 국내에서만 활동하였거나, 폐쇄적이고 이념 중심인 공산체제 탓에 서방에 알려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성 지구에서 순환버스를 타고 모스크바 광장으로 내려오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부다페스트 시내의 지하철(Metro)은 런던 다음으로 일찍 건설되었다고 하는데 1호선은 지표 가까이 있지만, 다뉴브 강 밑을 통과하는 2호선은 땅 속 깊이 건설되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60∼70m를 내려가야 한다. 부다페스트 지하철은 목적지를 놓칠 염려가 없다. 물론 차장의 헝가리 말 안내방송은 알아듣기 힘들지만 역에 도착하기 직전에 전력공급이 잠시 중단되기 때문인지 실내등이 깜박 하고 꺼지기 때문이다.

다뉴브 강을 건너면 헝가리의 '벨벳 혁명'을 이끈 국회의사당이 나오고 성 이쉬트반(스테반) 성당, 주변 건물을 구경하며 보행하기에 좋은 안드라쉬 거리, 오페라 하우스, 영웅광장(발음이 '회색'테르로 들림)을 차례로 둘러본다. 영웅들이 이끌어온 헝가리의 역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건국천년 기념비 뒤편은 보트를 탈 수 있는 호수와 분수, 세체니 온천이 있는 시민공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어린이 대공원과 여의도 공원을 합쳐놓은 듯한 서민들이 휴일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이다.

국립미술관 밖의 조각상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오페라 하우스

안 하면 후회할 일
뭐니뭐니 해도 온천욕과 헝가리 전통음식을 맛보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로마 시대 때부터 시작된 온천욕은 관광객 상대의 호텔 부설 겔레르트 온천(온천탕과 천장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실내풀장, 그리고 인공파도가 이는 야외 풀장이 있음)과 서민 상대의 세체니 온천이 있다. 전자는 1인당 2,900포린트(락커룸 사용료 500포린트는 별도)로 비싼 만큼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으나, 후자는 한 여름철 풀장처럼 부산한 가운데 서민적으로 즐길 수 있다. 어느 경우나 우리나라의 사우나탕을 연상하면 오산이며 수영복은 빌려서라도 입어야 입장할 수 있다. 겔레르트 온천의 경우 수영모자는 샤워캡을 무료 제공한다.

필자는 아침 6시에 개장하여 6시에 문을 닫는 겔레르트 온천에 갔는데 미지근한 물이 영 '아니올시다'(no good)였다. 다른 관광객들이 물놀이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입장할 때 나눠준 샴푸로 샤워하는 것으로 끝내야 했다. 2시간 이내에 나오면 상당한 환급을 해주므로 영수증을 끝까지 챙겨야 한다. 4시간이 넘으면 환급은 없다.

그러나 헝가리 레스토랑의 메뉴는 우리 입맛에도 맞고 값도 저렴한 편이다. 헝가리산 드레허 맥주를 곁들여 굴라쉬(우리나라 육개장 같은 얼큰한 고기국물) 스프, 거위간 요리를 가미한 스테이크 또는 필레미뇽이 5∼6천포린트(팁 포함)이면 해결되었다. 필자는 한 번은 겔레르트 호텔에서, 또 한 번은 서울의 명동과 같은 바치 거리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 정도의 분위기와 미식을 풀코스로 즐기려면 서울에서는 1인당 10만원 가까이 들었을 것이다.

건국천년 기념비와 영웅광장 세체니 공원 세체니 온천입구

여행안내서에 없는 명소
페스트 도심의 교통요지인 아스토리아 광장 부근의 시나고그는 유럽 최대의 유대교 회당이라는 점에서 필수의 관광명소임에 틀림없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전면만 보고 사진을 찍고 돌아간다.

그러나 옆으로 돌아가면 회랑이 있는 중정이 나오는데 이곳은 유럽의 큰 건물 중앙에 자리잡은 여느 정원과는 다르다. 크고 작은 나무가 서 있는 정원은 온통 1945년 홀로코스트 때 죽은 유대인들의 묘비명으로 즐비하다. 로마의 기독교도 지하묘지(catacomb)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조금 더 가면 시나고그 후문이 나오는데 그 후정의 풍경은 자못 충격적이다. 그 한복판에 홀로코스트 희생자 기념비가 서 있는데 이것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버드나무 모양의 기념수인데 버들가지가 온통 스텐레스로 되어 있는 조각물이다. 영원히 변치 않는 유대인들의 소망과 기원을 담고 있는 것일까?

유대인 시나고그 전면 시나고그 중정의 묘비명 홀로코스트 피해자를 기리는 스텐레스 기념수

後 記
시나고그를 마지막으로 보고 동부역을 출발하는 비엔나행 열차에 올랐다. 비엔나 숙소에 도착하여 TV를 켰을 때 마침 스페인 방송에서는 축구경기처럼 투우 장면을 중계하고 있었다.

관중이 스탠드를 가득 메우고 환성을 지르는 가운데 검은 황소가 우리가 열리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뛰쳐나왔다. 사납게 보이는 검은 황소는 4∼5명의 조연 투우사가 분홍색 천을 휘두를 때마다 이리저리 달려나가 뿔을 휘두르며 (그만큼 헛힘을 쓰는) 공격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주연 투우사가 등장하여 한 번에 2개씩 작살을 세 차례 등판에 꽂고 나면 투우사가 접근하여 진짜 붉은 천을 흔들더라도 황소는 몇 걸음 움직여 머리의 뿔만 내지를 뿐 종전과 같은 맹렬한 기세는 없었다.

투우사가 붉은 천을 휘두르는 멋진 동작을 몇 차례 선보이고 나면 황소는 그때그때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보이다가 그만 혀를 빼물고 헐떡이면서 맥없이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그리고 투우사로부터 목의 급소에 칼을 받은 다음 말에 끌려 투우장에서 치워졌다. 그 시간은 20분을 넘지 않았다.

비엔나행 왈츠 열차 TV의 투우 장면 신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성 스테반 성당의 미사 장면

불과 60년 전에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에서, 네덜란드에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이 투우장의 황소와 오버랩되었다. 영화 "글루미 썬데이"에서 유대인 주인공 라즐로 자보는 부다페스트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아름다운 우정과 최상의 서비스를 베풀었지만 독일군 SS장교의 편견과 욕심 앞에서 촛불처럼 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만일 그가 실재 인물이었다면 부다페스트 시나고그의 중정에 그의 묘비명을 남겼을까?
부다페스트는 마차시 같은 위대한 왕의 등장을 보기도 했고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많지만 2백년 이상 투르크 족의 지배를 당했고 20세기에는 연거푸 나치의 박해와 스탈린의 압제를 받았던 어두운 과거를 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이 비엔나는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강제수용소에서 의미요법(Logotherapy)을 발견한 정신과의사 빅터 프랭클이 살았던 곳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 보고 온 스텐레스 기념수의 의미(meaning)가 절로 깨달아졌다. 이들은 지적 능력이나 문화적 소양이 모자라서 희생된 것은 아니었다. 황소 이상의 파워를 갖고 있음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계시(revelation)을 전하기 위해서 제물이 된 것이 아닐까?
TV에서 본 투우장의 황소는 군중들의 찰나적인 오락과 흥분을 위해 동원되었을 뿐이지만 어딘가 하나님의 어린 양과 닮아보였다.

Vienna and Budapest in Engli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