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단동 국제학술회의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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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I 은 필자가 단동에서 귀국한 직후 "젊은 중국 동항 市長의 열정"이라는 제목으로 모 일간지에 기고하였으나 실리지 못한 칼럼입니다.

   

I
중국 동항(東港)은 단동 밑의 항구도시이다. 남북물류포럼(회장: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소 김영윤 소장) 일행이 2005년 6월 16일 중국 단동(丹東)시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를 마치고 동항시를 방문했을 때 영화배우 뺨치게 잘 생긴 젊은 왕리웨이(王力威) 시장은 모든 일을 제쳐놓고 우리 일행을 위해 투자설명회를 열고 성대한 오찬까지 베풀어주었다.

새로운 투자처로 면모를 일신하고 있는 동강시의 상징탑 동강시 물류투자설명회장 영화배우처럼 잘 생긴 동강시장

단동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와 접해 있지만 한국과의 주된 통로는 단동에서 자동차로 40여분 정도 걸리는 동항이라 할 수 있다. 인천-단동(동항) 항로에는 여객선이 주 3회 운행한다. 인구 65만명의 동항시는 현대식으로 개발된 신흥도시로서 로마풍 열주(列柱)가 늘어서 있는 도심의 세기(世紀)광장에서는 수만 명의 집회도 가능해 보였다.

대중집회가 가능한 동강시 세기광장 동강시의 거리 모습 환영오찬 리셉션

동항시에서 열렬히 환대해준 까닭

동항시 공무원들이 투자사절단도 아닌 국제학술회의 참가자들을 의외로 '열렬히' 환영해준 의문은 금새 풀렸다. 황해를 바라보며 압록강 하구에 자리잡은 대동항(大東港)을 찾아갔을 때 크레인이나 콘테이너 야적장이 대부분 놀고 있었고, 한국 기업을 위해 조성한 산업단지에도 아직 빈 땅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직 30대로 보이는 시장과 부시장은 단동과 동항은 물산과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우회적 접근로로서 지정학적인 가치가 크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현지에서 조업 중인 한국 기업인들도 동항시가 아직 개발초기단계라서 외국인투자 유치에 적극적이고, 중국과 한국, 나아가 북한을 동시에 접근할 수 있는 요충지라는 점에 동의했다.

화물을 기다리는 동강항 부두 아직 빈땅이 많은 동항시 산업단지 동항시 한국산업단지 현장 브리핑

그러나 서울에서 건너간 우리 일행들의 눈에는 동항시 공무원들이 우리나라 서해안에 있는 어느 중소도시의 공무원들과 오버랩되었다. 그것이 S프로젝트이든, J프로젝트이든 서해안 개발사업에 외국인 특히 중화권(中華圈)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외국어로 된 투자유치 설명자료는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직접 해외로 다니면서 유력한 투자자들과 접촉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의 젊은 공무원들도 해외로 다니면서 무섭게 변모하고 있는 외국 신흥도시들의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항시의 시장, 부시장은 어찌 보면 중국 변방의 지방정부 간부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마치 수출기업의 CEO인 것처럼 느껴졌다. 일본과 미국에서 해외유학까지 마치고, 호감을 주는 인상에 연설에도 능한 이들이 외자유치 실적을 많이 올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면 조만간 중앙무대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당연해 보였다.

센양공항에서의 환영 환영만찬석상의 방문단과 단동시 간부들 방문단에게 설명하는 동항시 부시장

회의기간 중 우리는 불과 수 년 사이에 압록강변의 유럽풍 도시로 놀랍게 탈바꿈한 단동시를 돌아보면서 무엇이 이 변방도시를 변혁시켰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시 당국이 올바른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국내외의 투자를 적극 유치한 데다 기업인들도 5년 후, 10년 후 이 도시의 미래를 낙관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시 당국은 강변의 슬럼가를 철거하고(그 중에는 북한계 초등학교와 주택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널찍한 강변공원을 조성할 수 있었으며, 압록강을 조망할 수 있는 강변에는 고급상가와 음식점, 고층 아파트 군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북한의 개방에 대비하여 단선(單線)의 압록강 철교를 대체할, 자동차로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압록강 대교 건설을 하류 쪽에 계획하고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그리고 압록강 철교 부근에는 물류, 보세창고, 통관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새로 민자(民資)를 유치하여 개발한 대규모 현대적인 물류(物流)비즈니스센터가 개장을 앞두고 있었다.

단동시 압록강변공원 단동시 강변맨션 민자를 유치하여 새로 개장한 丹東物流商務中心

중국에 추월 당할 위기

우리나라의 지자체 공무원들도 전통적인 시정(市政) 서비스 외에 새로운 지역경제발전의 임무를 부여받지 못한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압록강 건너편의 북한 신의주는 단동 이상의 지리적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어떠한 변화도 감지되지 않는, 한밤중 같은 모습 그대로였다. 단동과 신의주의 천양지차로 대비되는 모습은 '외자유치를 통한 지역개발'이냐, 아니면 '잘 사는 이웃 도시(나라)를 구경이나 하는 현상유지'냐 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음을 깨달았다. 그만큼 중국의 무섭게 발전하는 모습은 우리 기업이나, 공무원, 국민들이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경제발전 레이스에서 조만간 중국에 추월 당할 수 있음을 생생하게 일깨워주었다.

   

II
중국측의 예상 밖 환대

2005년 6월 15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열린 국제물류학술대회는 "대중국 투자와 동북아 물류 활성화 방안"이라는 주제가 중국측의 과도한 기대를 불러일으킨 탓인지 우리는 칙사 대접을 받았다. 센양 공항에서의 환영행사도 예상 밖이었지만 단동까지 중국 공안차량의 에스코트를 받고 가면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압록강 철교가 내려다보이는 중련호텔 앞의 환영식에는 고적대까지 동원되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가운데 중국 경찰은 우리 일행의 자동차행렬을 위해 교통통제를 마다하지 않았다.

단동시의 명물 은행나무 거리 중련호텔 앞의 환영행사 방문단을 위한 경찰의 교통통제

남북물류포럼 단동 국제학술회의

6월 16일 국제학술회의가 열리는 중련호텔 대회의실은 아침 일찍부터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주최측이 한국에서부터 동시통역 부스와 무선헤드폰을 가져와 국제회의로서 손색이 없었다.
남북물류협회 김영윤 회장의 개회사와 단동시 부시장의 인사말, 박찬숙 의원의 축사에 이어 산업개발연구원 백영훈 박사의 기조연설이 있었다. 일찍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독일 경제발전상을 소개하여 우리나라 개발연대를 열었던 백 박사의 동북아 시대를 고취하는 연설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회의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남북물류포럼의 단동학술회의 참가자 일행 단동 국제물류학술회의 개회식 김영윤 회장과 필자

오전에는 "동북아 역내협력과 단동-신의주 지역의 역할"(오승렬 한국외대 교수), 오후에는 "단동지역 국제물류 기지화 개발 계획 및 전망"(량 평 요동학원 원장), "한국기업의 대중국 진출에 대한 지원체계 수립방안"(박정동 인천대 교수), "동북아 물류 발전을 위한 한 중 협력방안"(안병민 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 등의 주제발표와 토론이 차례차례 진행되었다.

평양식 만찬과 압록강 선유

저녁에는 이번 행사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준 단동한인CBMC(기독실업인회)와 조선족CBMC의 베푼 만찬과 압록강 선유가 있었다. 한인교회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선상연주도 있었다.

단동한인교회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압록강 선상연주 불빛 없는 신의주 풍경 압록강 단교의 야경

호텔 바로 앞에 위치한 평양고려식당에서 평양식 요리와 냉면을 먹으면서 북한에서 왔다는 여자봉사원들의 노래와 춤을 관람했다. 손님에게 음식도 서브하면서 막간에는 노래와 춤까지 공연해야 하는 종업원들이 꽤 힘들어 보였다. 여종업원을 불러 삼삼한 평양 김치가 맛있다고 더 시켰더니 여러 차례 요금이 추가됨을 확인한 다음에야 김치 접시를 내놓았다. 어제 밤에 이곳에 들러 냉면을 시켜 먹은 일행들은 식대가 75위엔 나온 것을 보고 100위엔(12,500원)을 주면서 거스름돈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고단한 외화벌이 사업과 이익분배제, 인센티브제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러나 북한실정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북한 봉사원의 막간 공연 미모가 뛰어난 북한 여성들 단동의 평양고려식당

어스름이 짙어가는 압록강의 강바람은 선선하다 못해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유럽풍으로 정비된 단동 강변공원과 아파트의 불빛은 점점 늘어가고 있었지만 신의주 쪽은 캄캄한 채로였다. 북한령 위화도를 바라보며 회항을 할 때에는 압록강의 끊어진 철교에도 조명이 들어왔다.
일제가 건설한 철교가 한국전쟁 막바지에 폭격으로 무너진 후 복구되지 않은 채로였다. 더욱이 강 한편은 불야성을 이루는 가운데 다른 한편은 암흑천지인 것을 보니 무척 속이 상하였다.
단동은 국경도시로서 활기에 넘쳐 있었다. 센양-단동 고속도로가 개통된 데 이어 다렌(大連)-단동 고속도로도 올 가을에 준공될 예정이라 했다. 단동역은 종착역이지만 시발역이 될 수도 있다. 역 광장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초대형 동상이 서 있어 역에서 내린 손님을 환영하는 것 같았다.

숙소에서 쇼핑가까지 4명이 5위엔을 주고 탄 딸딸이차 보행자천국인 쇼핑가 쇼핑가에서 만난 중국의 청소년들

압록강변에는 유럽풍의 강변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밤이면 시민들이 모여 제기를 차고 태극권 같은 율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심에서는 자전거의 무리와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 인력거가 돌아다니는가 하면, 셀 수도 없이 많은 현지생산된 아우디(Audi) 승용차가 달리고 있었다. 단동에서 가장 번화한 쇼핑가에는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외양으로는 구분이 되지 않는 청소년들이 무리지어 다니고 있었다. 신의주를 비롯한 북한의 국경지역은 단동 및 요녕성과 연계하여 발전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외에는 대안이 없어 보였다.

中朝物流의 중요성

단동은 중국과 북한의 국경도시 가운데 제일 큰 도시로서 물동량도 제일 많다. 중국측의 설명에 의하면 2004년만 해도 화물이 30만톤 이상, 사람과 차량도 20만명, 8.2만대가 압록강을 건넜다고 한다. 2004년 4월 용천역 폭발사고 때 우리의 구호물자가 단동을 거쳐 북한에 공급되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아침에 압록강 철교를 건너는 화물자동차 단동 세관에서 북한 화물자동차의 검역통과 통관절차를 밟고 있는 북한산 TV수상기

단동시에서는 북한과의 물동량이 늘어날 것에 대비하여 압록강 철교 입구에 대단위 물류상무센터를 건설하고 조만간 개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쪽에서는 북한에서 갓 건너온 화물차량들이 간단한 검역검사를 받고 있었다. 중국 당국은 현재의 단선철교만으로는 늘어나는 물동량을 감당할 수 없다고 보고 하류쪽에 자동차전용대교를 건설하기로 북한당국과 구두 합의를 한 상태라고 했다.
우리 일행 중에도 현재 개성-평양간에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있으므로 남한이 평양-신의주 간의 고속도로 건설을 지원해주면 조만간 한반도 관통도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이 있었다. 경의선의 개성-신의주 전구간 철도복구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므로 그것보다는 고속도로 건설이 보다 현실적이고 타당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서독은 동독에 고속도로를 건설해주고 통행료 수입을 동독측에 보장해줌으로써 서독과 동유럽 국가간의 물류가 원활해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속도로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철도 차량 왕래가 뜸한 瀋丹고속도로 고속도로변 풍경

중국으로서도 이미 개통된 센양-단동간 고속도로 외에 금년 가을이면 대련-단동간 고속도로가 완공되므로 단동에서 평양-개성-서울을 거쳐 부산까지 연결되는 한반도 종단(縱斷) 고속도로는 엄청난 물동량의 증가를 몰고 올 것이다. 아직은 중국의 물류산업이 인력에 많이 의존하는 전근대적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중국 동북부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의 물동량만 취급할 수 있어도 상당한 규모의 시장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물류산업의 현대화는, 이번 방문기간 중 중국측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었지만, 물동량의 확보에 따른 외국자본의 투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로 표시가 국제표준과는 달리 곡선형인 도로표지 하역작업을 전부 人力에 의존하는 물류 시스템 지게차나 팔레트를 볼 수 없는 중국의 물류창고

이러한 프로젝트는 결국 北核문제를 포함한 북한 당국의 수용태세가 문제인데, 단동 현지에서 TV를 통해 본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장면은 이것이 신기루 같은 꿈이 아님을 일깨워주었다. 이처럼 동북아 국가간에 물자운송이 원활해진다면 관련 산업의 물류비가 크게 절감됨으로써 관련국 경제가 동반 성장하고 동북아 평화가 정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물류와 사람의 이동 증가

고속도로 망의 연결은 비단 물류에만 그치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람들의 이동도 당연히 늘어날 것임에 틀림없다. 아직은 중국의 고속도로나 휴게소가 한산한 편이지만 점차 여객버스와 화물트럭의 이용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벤시(本溪) 수상 종유동굴을 구경할 때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은 버스를 타고 오는 단체관광객들이 많지만 중국인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어 마이카 붐이 일어나면 이곳의 주차장에도 사람과 자동차가 홍수를 이룰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아직도 삼륜차가 다니는 중국의 지방도로 벤시 종유동굴 관광지의 주차장 배를 타고 구경하는 석회동굴

우리도 고속도로가 처음 생겼을 때에는 어떻게 이용할지 몰랐지만 불과 2-30년만에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계속적인 고속도로의 증설·확장이 불가피한 것을 보면 쉬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425km,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420km이므로 한반도 1일 생활권이 형성될 날도 멀지 않다고 생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