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의 괌 여행

태평양의 산호초 바다 PIC 호텔 전경 호텔 구내 워터파크

Prologue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한때 이런 광고가 온 국민을 들뜨게 만든 적이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우리 부부는 설 연휴를 맞아 모셔야 할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것을 기화로 오랫동안 별러온 결혼 20주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한겨울의 혹한을 피해 상하의 섬 괌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이왕 떠나는 것, 큰 맘 먹고 호텔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PIC Gold 패키지 투어를 택했다. 노트북 초화면에 나오는 산호초가 보이는 얕은 남태평양 해변 사진에 끌리던 차에 큰 아이가 학교에서 스쿠버다이빙 활동을 한 것이 괌으로 떠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명절을 앞둔 서울 시내의 거리는 차량들로 메워져 집으로, 공항으로 가는 길은 천리 만리나 되는 것 같았다. 2003년 1월 29일 수요일 우리 식구는 가까스로 인천공항에서 밤 8시 30분에 출발하는 괌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KAL기 안 태평양을 바라보는 큰아들 산호초 모래

이튿날 새벽 1시 40분 4시간 반만에 괌 공항에 도착한 후 장사진을 이룬 관광객들 끝에서 노비자로 입국하였다. 현지 E&P 여행사의 버스 편으로 PIC 호텔로 들어가 여장을 풀고 잠깐이지만 눈을 부치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느즈막이 일어나 호텔 부페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섬 일주 관광에 나섰다. 작년 12월 초에 사상 최악의 태풍이 불어닥쳐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아직도 곳곳에서 복구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처음으로 들른 연인의 절벽(Two Lovers' Point)에서도 두 연인상이 (옛날처럼 절벽에서 떨어져) 쓰러진 채로였다. 그러나 괌은 자연이 베풀어준 천혜의 관광휴양지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푸른 하늘과 산호초의 옅은 해변이 저절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줬다.

Hafa Adai!
하파 아다이!(오른 손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펴고 가볍게 흔들며 하는 괌 원주민들의 "안녕" 인사)
괌은 본래 2-3천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건너온 차모로 족이 살고 있었는데 1521년 세계 일주 항해를 하던 마젤란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로부터 40년 후 스페인의 탐험가인 레가스피가 괌의 스페인 영유를 선언한 이래 333년 동안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다. 이를테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의 시 구절처럼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이 원주민들의 평화로운 섬을 해도(海圖)에 표기한 것을 대가로 자기네 영토로 삼았던 것이다.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 후(1898) 괌을 할양 받았는데 태평양 전쟁 때는 일본군이 석유 수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이 섬을 점령하고 있었다. 1944년 7월 괌 탈환작전 때 미군의 무차별 함포사격과 폭격으로 일본군 수비대는 물론 수많은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1997년 8월 KAL기가 착륙을 시도하다 고도를 너무 낮추어 추락했던 니미츠힐도 그 당시 미군 상륙작전과 일본군의 반자이 반격작전으로 희생된 원혼들이 뭉쳐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코코넛 야자수 괌 전쟁박물관 미군의 상륙작전이 감행된 아산 베이

Money Talks!
둘째 날은 해양 스포츠를 즐겼다. 아산 베이로 가서 우리 식구는 제트 스키와 바나나 보트도 타고 장비를 갖추고 스노클링을 하였다. 바다물 속에서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몰려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에 포인트 관리를 하고 관광객들이 일정한 시각에 먹이를 주기 때문에 고기떼가 몰려든다고 했다.

셋째 날은 호텔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묵은 PIC 호텔은 관광지 호텔이 단지 숙박만 하는 곳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즐기고 놀 수 있는 곳'으로 컨셉을 바꿔놓은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 식구는 하루 세끼를 부페에서 실컷 먹고 마시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호텔 풀장에서 물놀이도 하고 해변에 나가서 돛단배도 탔다. 인라인 스케이트, 미니 골프도 하고 카누 보트도 저었다. 골드 카드만 보여주면 모든 것이 프리 패스였다.
마지막 날 저녁 식사 역시 부페로 하면서 우리 식구는 모두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각자 방에 돌아가 짐을 꾸려놓고 잠시 눈을 부친 다음 2월 2일 일요일 자정이 넘은 시각에 체크 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카누 보트장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 세일링 보트를 타는 삼부자

괌.. 푸른 산호바다의 추억 by 큰아들

여행을 떠나기 전
설 연휴를 앞두고 국민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도 그 동안 할머니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미뤄둔 자유로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서울 전체가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를 헤치고 아슬아슬하게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인천 공항으로 가는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창 밖을 보았다. 구정 전 서울의 밤하늘은 달과 별이 아닌 인간이 만든 인공의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가는 곳은 괌. 천연의 자연과 태평양 바다가 있는 곳이다. 우리 가족은 온갖 스트레스와 압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아 떠났다.

괌 첫째 날
새벽 3시가 되어서야 괌 PIC호텔 숙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설레는 마음에 깬 나의 눈 앞에 시원하게 탁 트인 푸른 산호 바다가 펼쳐졌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그다지 덥지도 않은 날씨였다. 체감온도 영하 20°의 서울에서 벌벌 떨고 있을 친구들에게 미안해졌다. 동생과 아침을 먹기 전에 호텔 수영장과 해변가를 거닐어 보았다. 너무나 깨끗한 바닷가에 절로 웃음이 났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난 어느새 해맑은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호텔에서 아침 부페를 먹고 공식적인 괌 관광이 시작되었다.

※ 메모 :
1. 괌에서 머무를 동안 모든 식사는 부페로 해결했다. 최고급수준의 부페였으므로 살이 찔까 두려울 정도로 맛있게 잘 먹었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므로 여행 마지막쯤 되어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그리워졌다.
2. 괌 관광이라고는 하였지만 괌은 사실 관광할 만한 곳은 없다. 그저 멀리서 멋진 바닷가를 구경할 수 있는 정도? 원주민들의 삶은 이미 현대화되어 있었고 괌에는 거대한 밀림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괌은 관광지가 아니라 휴양지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촛불 아래의 부페 식사 선세트 바베큐 우리가 먹은 바베큐 메뉴

'두 연인의 절벽'이란 곳은 디즈니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처럼 챠모로족(괌 원주민) 연인들이 마젤란이 지나간 이후 들어온 서양세력 앞에 어쩔 수 없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뛰어내린 곳이다. 이곳을 찾는 연인들은 절벽 위에 서서, 또 사랑의 종을 치며 그들의 사랑을 재확인한다고 한다. 아직 사랑을 해보지 못한 나이기에 그곳은 그저 산호바다를 좀 더 멋있게 볼 수 있는 곳밖에는 안되었다.
괌은 작년 12월에 있었던 사상 최악의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차가 바람에 날려가고 모든 유리창은 깨지고, 나무는 뽑히고. 그러다 우리 가족이 왔을 즈음에는 많이 복구되어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공사를 하고 있었으며 야자수 나무들은 잎이 별로 없는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태풍으로 쓰러진 두 연인상 괌 해변에서 타이타닉 포즈를 취한 두 모자 괌 지사관저 박물관 계단 위의 둘째

KAL기 괌 참사 일어났던 곳,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터 등을 돌아보았다. 괌 섬의 1/5이 미 공군·해군 기지라고 했다. 아름다운 자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다. 비단 괌뿐이겠는가. 이 세상 하나님이 아름답게 창조하신 자연이 사람들의 이기심, 국가의 이익을 위해 또 인간의 실수로 벌어진 참사들로 더럽혀지고 파괴되고 있다. 이제 환경파괴, 자원고갈 등은 극에 달했다. 인간의 환경오염으로 괌에서의 태풍과 같이 자연재해는 피해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또한 인간은 지구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핵 폭탄을 보유하고 또 개발하고 있다. 안타까웠다.
오후에는 편안히 휴식을 취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저녁 식사 후 DFS갤러리아 백화점에 갔다. 싸고 좋은 명품들이 많이 있어 특히 일본 여성들이 많이 있었다. 한국 백화점과는 달리 지하 1층으로만 구성되어 있었지만 굉장히 넓었다.

괌 둘째 날
본격적으로 해양스포츠를 즐기는 날이다. 바나나보트, 제트스키, 스킨다이빙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고 하기에 부모님께서 선뜻 적잖은 돈을 지불하셨다. 한국에서는 바나나보트 딱 한 번에 몇 만원, 제트스키는 운전자 등뒤에서. 그러나 해양스포츠의 천국이라는 말답게 괌은 제트스키를 뒤에서 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운전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바나나보트, 제트스키를 제한된 시간 내에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자동차도 한번 운전해 본 적 없는 나였지만 제트스키를 탈 때에는 정말 신이 났다. 깨끗하고 푸른 바다를 최고속력 70km/h로 파도를 헤치며 가는 그 기분이란∼!

제트스키를 탄 큰아들 바나나 보트 위의 우리 가족 스쿠버를 준비하는 큰아들

스킨다이빙(스노클링 장비만 하고 수면에서 열대어 등을 볼 수 있는 다이빙)을 하게 되었다. 전문 스킨스쿠버였다면 구명 조끼를 안 입어도 되었지만, 일반인들은 안전을 위해 구명 조끼를 입어야 했다. 난 좀 더 가까이 에서 열대어를 보고 싶은 마음에 구명 조끼를 벗고 물 속에 마음껏 들어갔다. 비록 오리발이 없어서 들어가긴 힘들었지만. 동해 바다에서 스킨스쿠버를 할 때 솔직히 본 것이라고는 해파리 떼와 우럭 몇 마리, 불가사리 몇 개 정도에 불과했으나 깨끗한 괌은 달랐다. 엄청난 종류와 양의 열대어들이 눈앞에 가득했다. 소세지를 들고 있으니 알아서 소세지 앞으로 모여들었다. 어떤 물고기는 내 손가락을 소세지로 착각해 깨물어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열대어를 잡아서 올라오면 회를 쳐준다는 말에 잡고 싶었지만 역시 인간이 물 속에서 살아 있는 물고기를 잡기란 불가능했다.

괌에서는 해양오염, 특히 산호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관리를 하였다. 괌이란 섬이 산호로 이루어진 곳이었기에 산호를 파헤치면 산호가 죽고, 산호가 죽으면 열대어도 떠나고 그렇게 되면 괌이란 휴양지는 더 이상 관광객들이 찾지 않고 지역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엄격한 관리 덕분에 여전히 깨끗한 바다는 염분이 한국 바다보다 약 2배 정도 높았다. 코로 마시면 비염이 사라지고, 바다물에 몸을 담그면 피부염이 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괌은 자외선으로부터 결코 안전한 곳이 못되어 피부염을 없앤다고 썬 크림도 안 바르고 바닷가로 나갔다간 피부암이 생길 지도 모르는 곳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오후에는 호텔의 부대시설을 마음껏 이용했다. 괌 최고급 호텔이란 말답게 호텔 투숙자는 무료로 수영장과 기타 부대시설을 깨끗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투숙객들의 국적은 일본이 가장 많았고, 한국, 타이완, 중국 사람들도 있었다. 호텔 스텝들은 주로 괌 원주민이나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모두 영어에 능통해 나도 영어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저녁식사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선셋 BBQ에서 했다. 횃불 밑에서 바베큐 파티를 벌였다. 나름대로 운치는 있었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소스가 없어서인지 음식 맛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태평양 물에 발을 적시고 호텔 풀장에서 노는 아이들 엄마는 호텔 풀장의 안전요원

저녁 식사 후 간단한 선물을 구입하러 K-마트에 갔다. 이 가게는 E-마트와 같이 없는 게 없는 거대한 가게인데 현지인들이 쇼핑하러 많이 와있었다. 현지인들을 보면서 깜짝 놀란 게 거대비만인 사람이 매우 많다는 것이었다. 걷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 남자보다도 여자들이 많았다. 한국 여자들과는 달리 외국 여자들은 처녀 때는 아름답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뚱뚱해진다고 하더니, 그것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한국 등 동양의 食생활이 얼마나 건강에 좋은지를 알게 해주었다. 나도 괌에 계속 살았다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이 곳 사람들은 소세지 등을 산처럼 쌓아놓고 먹는다. 나는 기념품을 사려고 갔었는데, 살만한 게 없었다. 그냥 싸구려 열쇠고리, 목걸이 정도밖에? 돈이 아깝단 생각이 들어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별로 사지를 못했다. 관광객이 사고 싶은 기념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호텔 숙소는 특이하게 전체 형광등 없이 전기등불 3개만 있어서 밤이 되면 약간 어두웠다. 가족 여행객보다는 신혼부부들에게 인기 있을 조명이었다. 그러한 조명 아래 잠이 들었다.

괌 셋째 날
반팔·반바지를 입고 설날을 맞이하였다. 새배는 한국에 돌아가서 하기로 하였다. 호텔 부페에서는 한국 관광객들을 위해 특별히 떡국과 송편, 무지개떡 등을 따로 차려주었다.

오늘은 스킨스쿠버를 하기로 한 날이다. 부모님은 피곤하시다며 그냥 호텔에 계시겠다고 했고 나와 내 동생만 참가하였다. 처음에는 미국 강사한테 어떻게 듣고 할까, 하고 걱정도 했지만 미국 강사는 짧은 한국어 실력으로 우리를 충분히 이해 시켜주었다. 나는 오픈워터 자격증이 있어 강의를 들을 필요는 없었지만 동생과 함께였으므로 같이 듣고 행동하였다. 괌의 바닷가의 특징 중 하나가 50m 정도를 들어가도 바다 깊이는 가슴까지밖에 차 오르지 않는다. 역시 산호 때문이었는데 그 때문에 가까이에서도 열대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건 호텔 해변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바로 5m 정도만 나가도 열대어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만큼 바다가 참 깨끗하다.

열대어보다 상어가 득시글거리는 수족관 스쿠버 다이버의 명소 피티바움 다시 올 날을 기약하며

전날 즐겼던 스킨다이빙 때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열대어를 볼 수 있었다. PITY BOMB이란 곳으로 수심은 약 7∼10m 정도였으며 괌에서 열대어가 가장 많아 수중 수족관이 있는 곳이다. 40여분간의 스쿠버다이빙을 마치고 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바로 코코넛 따기∼! 'Cast Away' 등 영화에서 보았듯이 코코넛 껍질 까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말을 듣고 나도 한번 시도를 해보았는데, 정말 힘들었다. 1시간동안 돌을 붙잡고 껍질을 깨보아도 헛수고였다. 하늘은 노력하는 자를 도와준다는 말이 있던가. 나를 지켜보고 있던 원주민 버스 운전사는 갑자기 다가오더니 코코넛 하나를 가지고 매우 능숙하게 껍질을 까는 게 아닌가∼! 손으로도 뜯고, 입으로도 뜯고(갈갈이가 생각났다). 껍질을 다 까고 정말 먹기 좋게 나에게 다시 주는데, 그 친절에 너무나 감사했다. 가이드 말로는 괌 원주민들이 다 착하고 친절하단다. 두 시간 여 썬 크림을 못 발라 팔과 등이 심하게 탔다. 자외선에 너무 오래 노출된 것이다. 덕분에 나중에 한국에 와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심한 고생을 했다.
이번 오후 역시 호텔 부대시설과 바닷가를 즐겼다. 근처 바다에 폭풍이 불어 괌에도 바람이 심하게 불고 파도가 높아졌다. 괌은 1월부터 7월까지가 건기, 8월부터 12월까지는 우기이다. 적도 부근이기에 스콜이라는 소나기가 몰아칠 때도 있다.

에필로그
밤 12시 반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에 갔다. 새벽 2시 40분에 비행기를 타고 새벽 7시에 인천공항에 내렸다. 거의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해서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괌의 아침이 뜨거운 태양과 선선한 바람이었다면 한국은 떠날 때보다는 덜 했지만 한겨울의 추운 날씨였다. 반팔 티셔츠 위에 두꺼운 잠바를 껴 입고 택시를 타고 집에 오면서 일출을 보았다. 커다랗고 붉은 태양이 피곤한 모습의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괌에서 본 태양과 같은 것이겠지만 느낌은 사뭇 달랐다.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하던 괌의 생활은 어느덧 끝나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괌의 푸른 산호바다와 태평양의 서늘한 미풍, 아름다운 열대어들은 이제 우리 가족이 힘든 세상일을 할 때 가끔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