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산수의 桂林에 다녀와서

계림의 임프레션

지도에서 '계림'을 찾아보면 숲 속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경주의 鷄林과 계수나무 숲이라는 중국의 桂林이 있다. 두 곳 모두 이름난 관광 코스라는 점에서 서로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경주 관광이 신라시대의 자취를 좇는 과거로의 여행이라면, 중국의 桂林(구이린) 관광은 현재와 미래로의 여행이라 규정할 수 있다.

Landscape in Guilin 2001년 7월 3박 4일로 다녀온 중국 광서성의 桂林은 그만큼 다이나믹하고 모든 게 미래형이었다. 그것은 계림 시가지가 더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하여 완전히 새로 꾸며지고 있다는 점, 계림시를 관통하고 있는 이강(리장)의 뱃길이 우리 상상 속의 경치(觀念山水)를 실제 모습의 풍경(眞景山水)으로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이강 주변의 관음동굴이나 풍어암이 그 기기묘묘한 종유석의 천연조각 뿐만 아니라 스케일 면에서도 한국이나 미국의 어떠한 비교대상을 압도한다는 점, 그리고 아시아나 항공이 취항하면서 한국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한국 돈이 제값(?)을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그러나 현재의 중국이 우리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앞으로 10년이 채 안되어 우리를 크게 앞지를(catch-up)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 경제의 성장력에 전율을 금할 수 없었다. 계림시에서 우리가 투숙한 호텔은 帝園호텔(Royal Garden Hotel)이었다. 계림시의 세느강이라 할 만한 이강변에 있는 특급(四星級) 호텔이었는데 주변에는 부자집과 판자집이 병존해 있었다.

강변에 즐비한 계림의 부자집들은 2·3층으로 외제차 아니면 중대형 승용차가 주차해 있었으나, 판자집들은 세탁도 강변에 나와서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소득이 올라 집집마다 세탁기, 에어컨을 들여놓게 된다면 그 內需시장은 엄청난 규모로 팽창할 것으로 보였다. 이것을 내다보고 외국인들이 해마다 4백억불 이상의 외자를 중국에 쏟아붓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만일 중국의 시스템이 이러한 외자를 낭비하지 않고 생산적으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탄탄한 내수시장과 값싼 인건비를 바탕으로 중국 경제는 8% 이상의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러한 중국 경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시내 곳곳의 건설공사 현장과 건물 벽에 설치된 에어컨이었다. 이강을 중심으로 도시 전역이 파헤쳐져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공사현장과 달리 중장비는 손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고 대부분 인부들이 곡괭이와 삽을 들고나와 일하고 있었다. 그만큼 공사진척도 지지부진하고 교통의 혼잡이 극심하지만 인력동원이나 지역경제의 부가가치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보였다.

또 하나 공공건물, 아파트, 개인주택을 막론하고 벽에 설치되어 있는 에어컨 실외기는 당초 건물을 지을 때 설계도에서 배제하였던 냉방시설이 소득수준의 향상으로 일반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건물주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생활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셈이었다.

리강에서의 선유

인천공항에서 구이린(桂林)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 반 정도의 거리이고 시차도 1시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여행의 불편은 거의 없었다. 다만, 아열대성 기후라 후덥지근하고 몹시 끈적끈적했다.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은 伏破山과 象鼻山에서 이국적인 풍광을 접하고 나서 옵션으로 선택한 발마사지를 받을 때에는 외국 관광지에 온 느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족부의 지압점을 정확히 찾아내 마사지를 해주는 아가씨들이 대부분 베트남 사람 비슷한 소수민족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1시간 이상을 땀 흘려가며 정성껏 해주는 마사지에 우리 일행은 여행의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윗층으로 자리를 옮겨 용봉탕(자라와 닭을 고아만든 탕)을 먹으니 힘이 솟는 듯 했다.

둘째 날은 주장(竹江)에서 관광유람선을 타고 7시간 걸리는 리장 선유를 즐겼다. 도중에 觀音동굴을 둘러보고 선상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코스였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전북에 있는 馬耳山을 4만개나 모아 놓은 듯한 안개 낀 江岸 풍경은 자못 신비스럽기조차 했다. 선실 안은 다국적의 관광객들로 떠들썩하였으므로 2층 갑판 위에 올라가 우산을 받고 양쪽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Landscape in Guilin 낮게 비구름이 깔린 계림의 연봉은 원근에 따라 농담이 달라지는 한 폭의 수묵화 그대로였다. 수초가 많아 청옥 빛을 띤 강물에 반사된 봉우리들, 열대 분위기가 물씬한 대나무 숲과 초가집, 강변의 오리 떼와 물소, 대나무를 엮어 만든 뗏목 배와 그 위에 자리잡은 고기잡이에 쓰이는 가마우지가 어우러진 풍경은 느릿느릿 진행되는 선상유람이 전혀 지루한 줄 모르게 만들었다.

능선을 포물선으로 묘사하는 중국의 산수화가 결코 상상화가 아니라는 것을 계림의 연속된 奇峰을 보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수억년 전에는 바다밑 3천∼4천m에 가라앉아 있었으나 2억2천만년 전쯤 석회암과 백운석으로 된 지충이 솟아올라 석회암이 강물과 비바람에 씻겨 침식되면서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의 그랜드 캐년(대협곡)과 생성과정은 비슷해도 드러난 모습이 크게 다른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 탐사되지 않은 종유동굴이 산재해 있으며 廣西省 당국에서는 수십 년에 걸쳐 개발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프로젝트 금융 방식의 외국인투자를 권장하고, 실제로 대만과 싱가포르의 화교자본이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중간 지점에 있는 관음동굴은 진입로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의자형 가마가 여러 대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는데, 비 오는 날 몸도 가냘퍼 보이는 가마꾼을 혹사시켜야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인이었다. 이네들에게 돈을 주고 일거리를 주는 것이 진정한 人道主義일 터이다. 동굴 입구는 동시에 선유에 나섰던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대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몹시 시원했다. 그리고 다양한 모습의 종유석과 엘리베이터, 보트 등의 다채로운 이동방법으로 인해 내가 그동안 보았던 제주도의 만장굴, 금녕사굴, 단양의 고수동굴, 미국 버지니아주의 루레이 캐번과 비교가 되었다.

그러나 인체의 감각기관은 아무리 劇的인 자극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잦아들고 지루해진다. 답답한 생각이 들 즈음 동굴 밖으로 나오니 우리가 타고 온 배가 나룻터를 옮겨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중국식 점심식사가 시작되었다. 작은 민물게와 새우 등 강에서 나오는 산물로 차린 메뉴도 적지 않았다. 비는 멈출 듯 하다가 다시 세차게 내리고 江岸의 풍경은 일반 산천의 풍경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선상유람의 종점인 양슈오(陽朔)에 도달하자 다시 잇달은 奇峰이 나타나고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관음동굴을 보는 것으로 이강 관광을 마친 한국 관광객들이 다음 행선지로 이동하는 것과는 달리 유럽의 관광객들은 지척에서 奇峰을 대할 수 있는 양삭에 오래오래 머물면서 중국의 풍광과 인심을 접한다고 하였다.

양슈오의 나룻터 주변에는 외국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았으나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으므로 우리 일행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리프(莉圃)로 향했다. 우리에게 관광안내를 해주는 김은섭 씨는 본래 패션 사업을 하였던 사업가답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는 地價상승을 노린 부동산 사업은 아예 생각할 수 없다는 점, 최근에 동북부에서 조선족들이 4백여명 내려와 한국인 상대의 관광안내업에 종사하고 계림시에는 관광호텔을 경영하는 한국인들도 생겼다는 점, 마음을 비우고 중국인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생각하다 보면 평생을 바칠 만한 일거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 3백 단어만 잘 구사하면 중국인과의 의사소통에 별 지장이 없다는 점 등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설명해 주었다.

우리의 목적지인 풍어암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로서 일찍이 관광지로 주목을 받았음에도 도로 확장공사를 시작하는 바람에 진입로의 사정이 극히 안 좋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이어진 기봉들과 도로변에 넓게 펼쳐진 들판의 논밭, 양어장, 토란과 蓮밭, 감귤농장은 보는 이의 마음도 넉넉하게 해주었다.

마침내 우리는 풍어암 앞의 온천장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그러나 이미 저녁 7시에 가까워 동굴 구경은 내일로 미루고 온천욕을 즐기기로 했다. 오늘 비가 많이 오고 강물이 불어난 탓에 동굴 안에서 보트를 타는 코스는 단축이 불가피할 것 같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호텔 구내식당에서 다른 한국 관광객들이 떠들썩한 술판을 벌이는 것을 눈살을 찌뿌리고 지켜보며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이틀째 밤을 맞았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니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서 호텔 주변이 물에 잠기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중국식 뷔페로 아침식사로 마치고 우리는 호텔 바로 뒤편의 풍어암 동굴 관광에 나섰다. 풍어(風魚)는 이 곳 동굴에서만 서식하는 작은 물고기의 이름인데 총연장 5.4km인 동굴의 후반부는 타이완 자본을 유치해 동굴안 뱃길과 동굴밖 궤도열차를 운행하고 있다고 했다. 풍어암의 처음 입구는 땅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급한 경사의 계단을 한참 내려갔다. 그러자 이내 장충체육관보다 더 큰 광장이 나타났다. 인간이 땅 속에 이러한 공간을 확보하자면 상당히 머리를 써서 첨단 공학기술을 동원해야 했을 것이다. 동굴에서는 어저께 관음동굴에서 보았던 것과는 색다른 천연의 종유석 조각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천장과 맞닿은 막대기 모양의 神針, 양귀비의 침실, 독서하는 노인 등 인간의 상상력이 어우러진 천연작품이 즐비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동굴 속의 강물이 불어나 보트는 탈 수 없고 동굴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동굴에 들어가 있었던 한 두 시간 사이에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어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버스를 타고 구이린으로 돌아오는 길은 중앙선이 없고 그냥 破線으로 차선만 구분해 놓은 고속화도로였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물론 물소 떼도 다닐 수 있었다. 이곳에도 자동차가 많이 보급되고 관광객들이 늘어나면 도로 정비가 불가피해 보였다. 우리 일행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우호텔 식당에서 오랜만에 한식을 먹고 대학교수들답게 서점에 들러 책도 사고 시내관광을 즐겼다. 서점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으나 책값이 무척 싼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관광의 별미

외국 관광지에서는 쇼핑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중국 관광당국이 필수 코스로 지정한 소수민족 박물관의 玉 갤러리 숍, 茶園의 중국차 매장, 힐러리 여사도 방문한 적이 있다는 南珠회사의 진주 매장(Pearl Shop)에 들렀다. 우선 한국 돈도 받는다는 점에 놀랐고, 진주 매장의 경우 거의 절반으로 깎아서 살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 대부분의 상점이 외국인 관광객한테는 웬만큼 할인해주지 않으므로 중국어를 구사하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숍 매니저와 협상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식사는 중국에 간 김에 중국식 그것도 남방의 중국 음식에 맛을 붙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술도 한국에서 마실 수 있는 고량주보다는 죽엽청주 같은 것이 훨씬 낫다. 그래도 스태미너 식사가 필요하다면 가이드에게 부탁하여 조선족이 특식으로 제공하는 보신탕도 찾을 만하다.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어서 단고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닭고기처럼 먹을 수 있다. 그리고 김치국에 면을 말아서 내놓는 북한식 냉면맛이 일미인 식당 금강산이 있다.

우리가 3박 4일의 일정을 마칠 즈음해서는 과연 우리나라에도 이만한 관광상품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행기로 제주도에 가서 특급호텔에 3박 하는 데만 해도 1백만원 이상 드니 아무리 愛國的으로 생각한다 해도 경쟁력이 없어 보였다. 더욱이 한국에 다녀온 중국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밤에 전깃불이 밝고 질서가 있어 보이는 것 외에는 볼거리, 먹거리가 신통치 않다고 불평한다지 않은가! 사람들이 의식주가 해결되면 관광길에 나서게 마련이니 중국인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한국 관광의 해'에 반드시 유념할 사항이라고 생각되었다.

마침 일본의 유명한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가 최근 들어 중국으로 생산 및 투자가 집중되는 바람에 아시아에는 제2의 경제위기가 닥칠지 모른다고 경고하면서 이를 극복하려면 중국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중앙일보 01.7.13자 37면). 우리나라의 경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달러가 넘도록 경제력을 키우는 한편 상품 기획 및 설계, 경영력 등 소프트한 분야에 주력하고 중국을 생산기지로 이용하는 방안이야말로 탁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림 공항에서 귀국편 항공기 탑승수속을 밟으면서 그동안 온갖 정성을 다해 우리의 여행을 도와준 현지 강산여행사(86-773-381-5851) 대표 金銀燮 사장과 중국인 동업자 영감님, 조선족 안내원과 헤어지는 게 섭섭했다. 김 사장은 감수성이 풍부한 시인답게 중국의 자연과 사회정세를 예리한 안목으로 설명해주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게 마련이라고 하지만 단신으로 급성장하는 중국에 뛰어들어 그들의 사는 모습을 낱낱이 살피게 해주면서 중국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길을 몸으로 보여준 그의 모습에서 바로 한국인의 저력을 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