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코네 관광기

1999년 3월 도쿄 출장 길에 하루 틈을 내어 하코네(箱根)를 찾아가보기로 했다. 하코네라면 도쿄 주민은 물론 일본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꼭 가보고 싶어하는 유명한 온천 휴양지가 아닌가. 도쿄에 사는 동료직원은 하코네에는 기차를 타고 가서 호수에서 뱃놀이도 하고, 등산 기분도 내고 온천욕도 할 수 있으며, 운 좋으면 후지산까지도 불 수 있다고 자랑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숙소인 시나가와(品川) 프린스 호텔을 나서 지하철 야마노테(山手)선을 타고 신주쿠(新宿)역으로 가 私鐵로 갈아탔다. 오다큐(小田急)의 프리패스(하코네의 각종 교통기관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왕복할인권; 대인 5,500엔, 평일 4,700엔)를 끊어가지고 특급 로맨스카 1등칸에 올랐다.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역 구내에서 도시락과 오차를 사 가지고 탑승하였다.

로맨스카를 타고 하코네로

하코네 관광지도 차창 밖으로는 잔뜩 흐린 하늘 아래로 우중충한 풍경이 이어졌다. 다행히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일본의 농촌은 소득수준이 높다고 하는데도 연변의 주택들이 기차길 옆에 맞닿아 있는 것이 이상했다. 도중에 기모노 차림을 한 한 무리의 중년부인들이 올라타자 갑자기 열차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하코네 어디에선가 무슨 행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오다와라(小田原)에서 등산철도로 갈아타지 않고 1시간 반만에 철도 종점인 하코네유모토(箱根湯本)까지 갔다. 그곳에서 버스로 갈아탄 후 모토하코네(元箱根)의 선착장에서 神社도 구경하고 유람선을 탈 작정이었다. 주말의 아시노코(芦ノ湖) 호반에서는 많은 주민과 관광객들이 낚시와 뱃놀이를 하고 일부 관광객들은 해적선 모양의 유람선을 타고 선유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이 보이는 신사를 찾아갔다. 하늘을 찌를 듯한 스기(杉)나무가 열을 지어있는 가운데 고즈녁한 신사 구내에는 입시철을 맞아 복을 빌러온 사람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일본 사람들은 신사를 찾아와서 종이쪽지 또는 나무판에 자신의 소원을 적어놓고 복을 빈다고 하였다. 종이, 나무판은 돈을 주고 사야 하니 그것이 복채인 셈이다. 구내 도장에서는 일본식 활쏘기 연습을 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선착장에는 마침 해적선 모양의 관광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객중에는 한 무리의 중국 관광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국의 융성하는 국력을 새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를 태운 해적선은 화산활동의 결과 생긴 칼데라 호수 물살을 가르며 건너편 토겐다이(挑源臺)를 향해 갔다. 여기쯤에서 후지산(富士山)이 보일 거라고 하였지만 어느 방향이나 하늘에는 잿빛 구름뿐이었다. 호숫가에는 호텔과 골프장, 그리고 우거진 숲 사이로 과수원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 지역은 봄 벚꽃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3월초라서 벚꽃 핀 풍경은 머리 속에 그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아키라 쿠로사와 감독의 1990년작 영화 "꿈"에 나오는 벚꽃잎이 바람에 떨어지는 장면도 생각이 났다.

오와쿠다니의 유황 연기 배를 타고 40여분만에 도착한 토겐다이 선착장에서는 곧바로 소운잔(早雲山)으로 오르는 로프웨이(케이블카)로 연결되었다. 산으로 점점 올라갈수록 아시노코 호수가 작아 보였다. 제법 높은 산중턱의 오와쿠다니(大涌谷) 계곡에는 유황 냄새 나는 하얀 수증기가 솟아올라 이곳에서 여전히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로프웨이에서 내려 유황천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한 후 이곳 명물인 검은 계란(黑卵)을 사 먹었다.

여러가지 탈 것과 볼 것 그리고 할 것

소운잔으로 오르는 로프웨이 안에서 소운잔에서는 다시 등산 케이블카(경사면을 케이블로 오르내리는 인클라인 철도)로 갈아 타고 고라(强羅)로 향했다. 여기서는 일로 내리막길이었다. 지명들이 公園上-下인 것처럼 이 지역에는 프랑스풍의 고라 공원, 하코네 미술관 등 이름난 공원과 정원이 많았다. 마침 점심시간을 지나고 있어 시장기를 느꼈으므로 우리 일행은 역 부근의 고라 호텔로 갔다. 점심시간에 제공되는 오찬을 겸한 경제적인 온천욕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주변의 산들이 한 눈에 조망되는 구내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곁들인 도시락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호텔 구내 온천으로 갔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우리나라의 호텔 사우나와는 달리 옷장도, 한증탕도 없이 그저 밋밋한 대욕조 안에서 몸을 담그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목욕을 끝낸 후 찾아간 휴게실(군데군데 상이 놓여 있는 운동장같이 넓은 다다미방)에는 뜨거운 오차가 보온병 안에 담겨 있어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우연찮게도 이 방의 이름은 저녁놀에 불타는 '붉은 후지산'이었다.

조각공원 앞에서 20-30분 가량 눈을 붙인 후 우리는 고라역에서 하코네유모토행 등산전차를 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역인 초고쿠노모리(彫刻の森)역에서 내렸다. 바로 역 앞에 피카소와 헨리 무어의 작품 전시로 유명한 '조각의 숲 미술관'(Hakone Open-Air Museum)이 있었기 때문이다. 산케이(産經) 신문의 사주가 필생의 콜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1969년에 오픈한 이 야외 미술관에는 우리나라 용인의 호암 미술관에도 있는 부르델을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조각과 헨리 무어의 걸작 조각이 주변의 자연경관에 어울리게 전시되어 있었다. 피카소관에는 세계 최초의 사설 피카소 미술관답게 피카소의 정열이 넘치는 회화, 온갖 모양의 도자기, 데빗 던칸이 촬영한 피카소의 만년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오후 5시 마감시간에 쫒겨 미술관에서 걸어 나왔다. 이미 날은 상당히 어두워졌고 하늘은 지금이라도 비가 뿌릴 기세였다. 등산전차는 급경사 철도를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관계로 중간의 신호소에서 앞 뒤로 진행방향이 바뀌었다. 간혹 상행열차와 교행하기도 했는데 가파른 경사면에 철도를 건설한 것이 참 신기했다.

등산전차를 탄 지 50여분만에 우리는 하코네유모토역에 도착했다. 어둠이 깔린 이곳에서 더 지체하기도 뭣하고 하여 예정 출발시간을 한 시간 앞당긴 6시 10분발 기차표로 교환한 후 잠시후 신주쿠행 로맨스카에 피곤한 몸을 실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동료직원의 친절한 배려로 온갖 탈것을 다 타보고 온천목욕까지 한 다음 미술작품을 보며 眼福을 만끽할 수 있었던 다채로운 관광코스였다.

아사쿠사에서의 애프터

이날 도쿄에서의 나이트 라이프도 기억해둘 만하다. 아사쿠사(淺草)를 찾아간 우리 일행은 스트립쇼로 유명한 로쿠지(ヌ-ドシアタ-ロック座) 극장을 찾아갔다. 저녁 9시 가까이 된 시간 홀 안에서는 여인의 아름다운 裸身이 화려한 조명과 감미로운 음악 속에서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같이 간 동료직원은 일본 남자들은 아담한 체구에 가슴이 큰 여자를 제일 섹시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과연 유럽계 팔등신 백인 미녀들을 제치고 이러한 조건을 갖춘 일본산 스트립 댄서들이 관객들로부터 꽃다발 세례를 받고 있었다.